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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크리스마스에도 변함없이 '나홀로 집에' 즐기기
    극장에가다 2007. 12. 25. 19:54

       올해도 어김없이 <나홀로 집에>를 봅니다. 크리스마스에 때마침 감기에 걸려주는 덕분에 밖에 나갈 생각도 못하고 하루종일 방콕했습니다.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자, 오늘은 그냥 지나가는 날들 중 하루일 뿐이라고 애써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뭔가 '크리스마스'스러운 일 하나쯤은 해야한다고 생각을 했고 동생과 함께 TV앞에 앉아 올해도 어김없이 <나홀로 집에>를 봤습니다. 이제는 너무 많이 봐서 장면들을 다 외워버린 이 영화. 저희 집은 이 영화때문에 치즈 피자를 시켜먹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자고로 피자란 토핑이 듬뿍듬뿍 얹어진 피자가 최고,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다같이 <나홀로 집에>를 보다가 우리도 케빈이 저렇게 열광하는 치즈만 달랑 얹어진 피자를 시켜먹어보자,라고 합의를 보고 시켜 먹어봤는데 의외로 그리 느끼하지 않은 것이 정말 맛있더라구요. 치즈만 있으니깐 다른 피자보다도 살짝 담백한 맛도 드는 것이. 그래서 그 뒤로 거의 저희 집은 치즈 피자를 시켜 먹습니다. 케빈처럼 두 손을 뻗어 흔들면서 '피자, 피자'를 외치면서요. 꼭 그런 동작을 하고 먹어야 맛있어요. 오늘도 영화를 보기 전에 피자를 시켰습니다. 아쉽게도 오늘은 치즈 피자는 아니고 동네 콤비네이션 피자로 시켰습니다. 쭉쭉 늘어나는 치즈가 듬뿍 들어있어서 케빈의 피자 못지 않았어요.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케빈의 부유한 집이 비춰지면서 영화를 시작합니다. 어떻게 이 영화는 매년, 아니 1년에도 몇번씩 보아도 이렇게 질리지 않는 걸까, 정말 신기해요. 게다가 오늘은 다른 때보다 케빈이 더욱 더 귀엽게 느껴지는 거예요. 맥컬린 컬킨이 저렇게 깜찍했었구나, 새삼 놀라워 하면서 지금은 그렇게 황폐해져버렸는데, 라며 잠시 씁쓸한 생각이 들었죠. 케빈이 식탁 구석구석 치즈피자를 찾아다니면서 결국 말썽을 일으키는 동안 동생과 저는 킥킥거리면서 치즈를 쭉쭉 늘어뜨리며 맛난 동네 피자를 즐깁니다. 피클 하나도 시큼하게 집어 먹구요.

       피자를 하나 더 집으면서 정말 저렇게 어릴 때는 혼자서 집에 남아서 내 마음대로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곤 했었다는 생각을 새삼 들었어요. 나도 케빈처럼. 어느 날 갑자기 마법처럼 혼자 집에 남아 부모님이 있었을 때는 절대 못 해보는 일들을 과감하게 해 나가는 거죠. 우선 폭신폭신한 침대 위를 과자를 먹으며 마구마구 뛰어주고, 불량 아이스크림을 커다란 숟가락으로 퍽퍽 떠 먹으며 총이 난무하는 무시무시한 영화를 즐겨주시고, 계단을 경사 삼아 신나게 집 안에서 집 밖으로 공간 이동 썰매를 타 주시고, 철저하게 접근 금지시켰던 형의 방에 들어가서 형의 비밀스런 물건들을 마구마구 해집어 주시는 거지요. 이번에 보니깐 케빈이 의외로 참 깔끔하더라구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도 예쁜 그릇에 동그랗게 담아서 먹고, 뭘 먹든지 꼭 식탁 세팅을 끝낸 후에 먹어요. 냉동 마카로니를 먹을 때도 우아한 초와 예쁜 잔은 필수구요. 화장실에서 구석구석 씻으면서 아빠 스킨 바르면서 '어머나' 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요.

       마음대로 할만큼 하고나니 이제 슬슬 지겨워지는 거죠. 가족이 있을 때는 때 되면 엄마가 뚝딱 밥 차려주고, 크리스마스 트리도 아빠가 쓱싹 베어와 주고, 늘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누나, 형들이 이쯤이면 나타나 주셔서 괴로힘을 당해주셨는데 지금은 나홀로 집에 있을 뿐이니까요. 그러던 차에 때마침 우리의 멍청한 도둑님들이 나타나 주시는 겁니다. 도둑님들은 케빈을 너무 얕잡아 본거죠. 이제 본격적인 <나홀로 집에>의 재미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두 도둑님들의 몸 개그가 얼마나 끝내주는지요. 사실 해리와 마브는 처음 케빈의 덫에 걸려들었을 때 병원행이였어야 할 상태였어요. 그렇게 커다란 못을 발바닥에 떡하니 박혔는데도, 찌찍- 소리와 함께 김이 날 정도로 손바닥이 데였으면서도 커다란 리액션을 한번 해 주시고 씩씩거리면서 이 꼬마 두고 보자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몇 번을 죽다 살아나는 거죠. 우리의 도둑님은. 마브는 키가 더 커서 몸 개그가 더욱더 역동적이고, 해리는 그 익살맞은 표정때문에 웃지 않을 수가 없어요. 아, 정말 무한도전만큼이나 큰 웃음을 제공해주시는 도둑님들. 그리고 케빈은 뭐 자리 깔고 나가야 해요. 어떻게 그렇게 도둑님들의 1초 뒤 행동까지 기가 막히게 알아맞추는지요.


       <나홀로 집에 3>가 재미가 없어진 건, 물론 우리의 케빈과 도둑님들이 출연해주지 않으신 것도 있지만 3의 주인공 알렉스는 모두 집 안에서 해결하잖아요. 첨단 기기로. <나홀로 집에>의 매력은 그게 아니거든요. 직접 뛰어주시고, 눈 앞에서 메롱거리며 약 올려주는 거거든요. 아무튼 생각보다 싱겁게 케빈이 도둑님들에게 잡혀주고 나면 우리의 소금 할아버지께서 나타나주시면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시는 겁니다. 저는 2편의 비둘기 할머니보다 1편의 소금 할아버지가 더 좋았어요. 비둘기 할머니는 실제로 좀 으시시했거든요. 도둑님들이 경찰서에 잡혀가 주시고, 케빈은 새빨간 침대 시트 위에서 아침에 깨어나면 가족들이 돌아오는 마법이 펼쳐지기를 바라면서 잠에 듭니다. 사실 도둑님들이 잡혀가고 난 다음부터 케빈은 잠들기 전까지 지독하게 청소를 했다는 사실을 아세요? 그래서 쿨쿨 단잠에 빠질 수 있었다는 것을. 다음 날 보면 도둑님들과의 혈투로 인한 찌거기들이 남김없이 사라지고, 깨끗하고 안락한 중산층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집 안으로 탈바꿈되어 있거든요. 예쁘게 가족들 양말도 벽난로 위에 걸어놓아주시구요. 케빈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갑니다. 그 깃털에 끈적끈적한 풀들. 캬아. 정말 의외로 케빈은 깔끔쟁이라니까요. 너무 힘든 나머지 형의 방은 제대로 해놓지 못하고 콜콜 잠에 들게 됩니다. 마지막에 형이 난리를 치잖아요. 아, 어쩌면 청소는 했는데 무너진 책장은 원상복구 못 한 걸 수도 있겠네요. 그건 어린 케빈의 능력밖이니까요.

        아무튼 올해도 <나홀로 집에>를 봤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정말 한 장면도 질리지가 않았어요. 내년에도 또 볼테죠. 그때도 아마 하나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요. 연말이 되기 전에는 <나홀로 집에2>도 볼 거예요. 뉴욕의 1등급 호텔에서 호위호식하는 케빈을 또 올해가 가기전에 보아주면서 즐거워해 주어야죠. 여전히, 변함없이 말썽을 피워주고 귀여운 모습 그대로인 케빈이 있어주어서 참 고마워요. 크리스마스 때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게 해 주어서, 어김없이 내게 소중한 가족을 떠올리게 해주어서, 하하하 소리내어서 웃게 해 주어서요. 맥컬린 컬킨은 아마도 계속해서 케빈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인기와 돈을 얻게 되어서 자라나면서 그렇게 황폐해져버렸잖아요. 컬킨은 말썽쟁이 케빈으로 남고 싶었던 거죠. 항상 따스했던 가족이 자신을 보듬어주길 기다리면서요. 마약을 하고 온갖 잘못을 해도 케빈처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거라 오랫동안 바랬는지도 모르겠어요. 마약과 이른 결혼 뒤로는 소식을 듣지를 못해서 인간 컬킨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언젠가 정말 괜찮은 배우 컬킨으로 돌아와주어서 이제 정말 컬킨은 케빈이 아니구나, 라고 느끼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힘들었겠지만 멋진 어른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이 들 수 있게요. 케빈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으니까요. 그를 두 팔 벌려 환영할 사람들이 아마 꽤 많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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