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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법에 걸린 사랑 - '영원히 행복하게'를 믿나요?
    극장에가다 2007. 12. 18. 12:33



       이 영화는 만약이라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만약 맑고 아름다운 동화 속 공주님이 메마르고 삭막한 지금의 시대로 보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영원히 행복하게'의 해피엔딩일까?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공주가 숲 속에 살고 있습니다. 숲 속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바느질을 합니다. 그리고 라라라라- 노래를 흥얼거리며 운명의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려요. 첫 눈에 반할, 내 노래를 듣고 화음을 맞춰줄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의 나의 왕자님이요. 그리고 동화 속에서는 왕자님은 꼭 갑자기, 우연히 나타나잖아요. 왕자님은 공주님의 노래 소리를 듣고 한 걸음에 달려오고 멍청한 괴물을 물리치고 나무 끝에 매달려 있다 떨어진 공주를 무사히 구출하고 사랑한다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는 백년 만년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라고 맹세하는 순간 공주는 사악한 왕자의 계모의 계락에 빠져 '영원히 행복하게'가 결코 될 수 없는 현대사회로 공주를 내보내버립니다. 뉴욕의 맨홀 뚜껑을 열고 이 맑고 밝은 공주님은 더이상 동화 속의 사랑따위는 믿지 않는 지금의 시대로 초고속으로 진입하게 되는 거죠.

       첫 눈에 반하면 데이트 따위는 즐길 필요도 없이 바로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결혼을 맹세하는 곳, 숲 속의 친절한 동물들이 청소, 드레스, 식사도 모두 준비해 주는 그림 같은 곳, 사랑을 속삭일 땐 달콤한 노래를 하루종일 불러 대는 곳, 진정한 사랑과의 키스 한 방이면 의사도 필요없이 독이든 뭐든 다 나을 수 있는 곳, 그 곳에서 온 동화 속 공주님 지젤은 이 곳이 낯설기만 합니다. 결혼 전에 몇 번이고 데이트를 하는 곳,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하지만 언젠가 그 사랑이 끝나면 사람을 버리는 곳, 자신을 도와주는 쥐들과 벌레들을 끔찍히 쫓아내는 곳, 진정한 사랑의 해피엔딩 따위는 없다고 믿는 곳에서 지젤은 헤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공주 지젤이예요. 지젤은 전형적인 동화 속 아름답고 순진무구해서 마녀의 꼬임에 쉽게 넘어가는 순수한 공주님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그녀가 가장 빛이 난 건 현대사회로 넘어오고 난 뒤였어요. 그녀는 맑고, 밝고, 순수하고, 쾌활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우리의 디즈니 공주님이라서 삭막하고, 부정적이고, 다정하지 못하고, 따스하지 못한 뉴욕의 거리와 사람들 속에서 단연 빛나요. 그 순진무구한 모습이 바보스럽지도 않고 유치하지도 않은 거죠. 그저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 없는가를 깨달게 해줘요. 한 떄 우리는 모두들 동화를 읽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렇게 다정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꿈꿨잖아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을 보세요. 너무 삭막해져 버린 거예요.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주위의 아름다운 것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영원한 사랑따위는 꿈꾸지 않는 거죠. 그 속에 지젤이 들어와 환하게 빛내주니 마치 이 지금의 시대가 동화가 된 것 같았죠.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동화 속 해피엔딩이 왠지 이루어질 것같은 믿음이 생기는 거죠. 현대의 왕자님 로버트가 사랑에 빠져 함께 춤을 추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 것처럼요.

       지젤이 더욱 더 매력적이게 느껴진 건 동화 속 전형적인 공주님으로 시작해서 현대의 씩씩한 여성으로 거듭난다는 거예요. 나뭇가지 끝에 대롱대롱 걸려 백마 탄 왕자님에게 떨어지길 기다리는 수동적인 공주의 캐릭터에서 머물지 않고 사랑을 위해서 용감하고 씩씩하게 도전하는 현대의 여성으로 지젤은 거듭납니다. 진정한 사랑의 상대로부터 키스를 받고 독이 든 사과의 마술에서 깨어났지만, 그 사랑을 지키지 위해 비바람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강인한 여성으로 거듭나면서 그 사랑과 함께 현대를 살아가는 거죠. 여전히 맑고 여전히 순수한 채로 말이죠. 기분이 좋을 때나 사랑을 속삭일 때는 라라라라라- 노래를 부르면서요. 동화 속 사악한 계모가 아닌, 함께 쇼핑을 즐기는 현실의 다정한 새엄마로요. 이 현대의 동화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날지 아닐지는 몰라도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거예요. 영원히가 아니면 어때요. 우리의 맑고 아름답고 씩씩하고 긍정적인 공주님은 또 다른 진실한 사랑을 찾아서 노래를 부를 테고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언제고 그 두번째 사랑을 만나게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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