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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노이드 파크 - 아직 준비가 안 된 성장통
    극장에가다 2007. 12. 14. 18:30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거길 준비하고 오는 사람은 없어.

       알렉스에게 친구는 <파라노이드 파크>에 가자고 합니다. 자유롭지만 위험한, 짜릿하지만 불법인 공간.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인 그 곳. 파라노이드 파크. 알렉스는 거기에 가기에는 자신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다고 말합니다. 울퉁불퉁한 그 곳을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점프해대며 누구도 맛 보지 못할 쾌감을 전해주지만 그만큼 다칠 각오를 해야 하는 곳. 파라노이드 파크. 친구가 말합니다. 거길 준비하고 오는 사람은 없어. 알렉스는 그 곳에 뛰어듭니다. 누구도 엄청난 속도를 달리는 나를 잡아줄 사람이 없는 곳, 넘어져도 뼈가 으스려져도 모두 내 잘못인 곳. 왼쪽, 오른쪽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보드를 타다보면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쉽게 멈출 수 없는 곳, 넘어야 할 커다란 벽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곳. 파라노이드 파크.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알렉스는 파라노이드 파크에서 준비 없이 어른이 되어야만 했고,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어떻게 해야하나 절망합니다.

       누구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채로 어른이 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알렉스와 같은 끔찍한 성장통을 겪는 건 아닐 거예요. 어쨌든 알렉스는 살인을 저지른 꼴이 되어버렸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물론 모든 어른이 살인같은 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모든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괜찮은, 반듯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알렉스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해요. 그리고 그것은 먼저 어른이 된 사람들이 도와주어야 할 몫이구요. 그런데 먼저 어른이 된 우리들은 그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도, 그것에 마땅한 벌을 주는 것도 잘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요.


       구스 반 산트 감독 영화는 스토리를 따라가기보다는 이미지를 따라가는, 들려지는 선율들을 따라가는 영화들인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종류의 영화도 예전에 찍긴 했지만요. <엘리펀트>를 생각하면 천천히 학교 복도를 따라 거닐던 학생들이 생각이 나요. 얼마 안 있어 총에 맞아 죽을 아이, 그 총을 쏠 아이가 있었던, 베토벤의 선율이 아름답고 고요하게만 흘러나왔던 장면들이요. 너무나 끔찍한 사건인데 너무나 아름다워서 영화를 보고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지난 총기 난사 사건 소식을 듣고도 자꾸 베토벤의 아름다운 선율이 떠올라서 혼났어요. 이건 실제로 일어난 너무나 끔찍한 사건인데 말이예요. 그리고 <라스트 데이즈>의 마이클 피트의 몽롱한 이미지들.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날들을 담은 이 영화도 오직 이미지와 음악 뿐이였어요. <파라노이드 파크>도 그랬어요. 역시 이미지와 음악이였습니다. 스토리는 영화 보기 전에 잠깐 읽었던 줄거리, 그게 다 였어요. 10대의 한 남자아이가 우연한 사건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이 간단한 한 줄의 스토리를 한 장면을 몇 번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나중의 일을 처음에 보여주기도 하고, 처음의 일을 나중에 보여주기도 하면서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모든 퍼즐이 빈틈없이 쫙쫙 맞춰지게 영화를 만들었어요.

       구스 반 산트 감독 영화에는 슬로우모션 장면이 많이 나오잖아요. 이번 영화에도 그랬어요. 슬로우 모션의 느린 화면에 촉촉한 음악을 깔아주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해보게 해요. 무표정의 얼굴, 이 아이의 주근깨, 눈동자. 너무 비현실적인 장면이라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장면을 보면. 두 사람이 대화를 할 때요. 다른 영화들은 말을 이어나가는 두 사람을 차례차례 번갈아가며 보여주지만, <파라노이드 파크>에서는 내가 바라보는 네가 이야기하는 모습만 비춰줍니다. 마치 내가 알렉스가 된 것처럼. 마치 내가 알렉스의 친구가 된 것처럼요. 실제로 내가 대화를 할 때는 내 친구만 볼 수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건 비현실적인 게 아니라 현실적인 장면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슬로우모션 장면도. 그 사건 전의 알렉스의 관심사는 보드와 여자친구와의 첫 경험 뿐이였는데, 갑자기 일생일대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는 그 첫 경험을 하되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잖아요. 슬로우 모션이 있긴 했지만 그 시간은 굉장히 빨리 지나가요. 이 영화는 딱 알렉스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진 거예요.

       감독이 뉴스에서 볼 법한 끔찍하고 잔인한 일을, 모두가 피해자 입장에서 보는 사건을, 이 가해자 아이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을 것이다, 또렷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이 아이에게도 사정이 있을 것이고, 결국 어른들 때문에 일어난 일들일 수도 있다, 보호해주지 못해서, 돌봐주지 못해서, 라는 이야기는 실질적으로 하지 않지만 제게는 자꾸만 그렇게 느껴져요. 감독은 그저 이 끔찍한 사건이 굉장히 일상적인 시간들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사건이라는 식으로 만들지만요. <엘리펀트>를 본 뒤, 다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을 보고 그래 가해자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 라고 생각이 들 수 있는 건 순전히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 때문이었죠. 그런데 제 머리 속에는 자꾸만 아름답고 고운 베토벤의 선율에 떠올려졌는데 이것도 순전히 당신 때문이었어요. 이 끔찍한 사건이 영화같이 느껴지면서 비현실적인 베토벤의 선율만 자꾸 떠올리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말이죠. 순전히 당신 영화 때문이예요.


       예전에 <굿 윌 헌팅>에서 멧 데이먼과 로빈 윌리엄스를 만나게 하고 감독은 이제 더 이상 이 두 사람을 만나지 않는 영화들만 찍습니다. 멧 데이먼만 찍어대는 거죠. 로빈 윌리엄스를 만나지 않는 멧 데이먼이요. 멧 데이먼 동네와, 멧 데이먼의 친구들과, 멧 데이먼 자신만을 집요하게 찍어댑니다. 저는 이제 로빈 윌리엄스를 만나는 멧 데이먼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세상이 소통하는 곳이기도 하다는 걸 감독이 보여줬으면도 해요. <파인팅 포레스터>의 소통도 좋았거든요. 로빈 윌리엄스도 숀 코네리도 몸과 마음을 숨긴 채 살아가는 아직 세상과 소통할 준비가 덜 된 어른이였지만요. 우리처럼.    

       알렉스가 자신이 겪은 사건을 누구에게도 아닌 종이에 모두 털어놓고 영화의 마지막에 그것들을 태웁니다. 그것들은 재가 될 테죠. 종이였었는가도 못 알아볼 정도로 흔적은 곧 바람에 날려 사라져버릴 거예요. 바닷가로 날아갈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 알렉스는 어른이 되어 갈까요?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요? 알렉스가 샤워하는 벽의 배경의 소리가 실제로 지저귀기 시작합니다. 샤워기에서 쏟아진 물은 알렉스 몸에 부딪쳐 그 지저귀는 새의 소리와 함께 만들어내는 어떤 소리들. 이제 알렉스는 모든 것을 다 잊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경찰은 알렉스의 잘못을 결국 알아낼까요? 예전에도 그랬든 감독은 이번에도 역시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아무 확신도 주지 않고, 그저 이런 사건이 이런 세상에 있습니다, 라면서 영화를 끝냅니다.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노래는 나이가 많이 든 어른이 부르는 것 같아요. 혀 끝에서 바람소리가 쉬쉬 나는 아주 나이가 많은 어른이요. 알렉스가 살아온 시간만큼 살아갈 날들이 남은 것 같은. 노래 제목과 누가 불렀는지 알고 싶은데, 어디에도 정보가 없네요.


    상세한 OST 리스트를 발견했습니다. :)
    http://blog.naver.com/paranoidpark?Redirect=Log&logNo=80045344433

    마지막 엔딩곡은 Cast King의 Outlaw.
    알렉스가 운전 중에 음악 듣던 장면에도 흘러나왔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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