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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클 클레이튼 - 라스트 씬의 조지 클루니
    극장에가다 2007. 11. 29. 13:48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2시간이니까 정확하진 않지만 30여분이 지나면서 두 명의 관객이 일어서서 극장을 나갔습니다. 앞쪽에 앉은 사람들이라 나가는 걸 또렷히 볼 수 있었어요. 그들을 보고 용기를 얻었는지 갑자기 몇 몇의 관객들이 더 일어나 극장문을 열고 유유히 사라졌어요. 아, 이건 시사회였기때문에 가능한 일이였어요. 돈 내고 들어온 관객들이라면 중간에 나갈 일은 없었겠죠. 겨우 30분 보구요.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들을 이해했어요. 처음부터 알 수 없는 고백조의 나래이션으로 시작되서 등장인물의 얼굴도 헷갈리고 배역의 이름도 헷갈리고 있는데 끊임없이 알 수 없는 대사들이 이어지는 거예요. 마이클 클레이튼으로 나오는 조지 클루니의 아들이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뒤에 이어질 사건들의 큰 힌트가 될 것같은 느낌인데도 그 애가 하는 말을 기억하질 못하겠는 겁니다. 점점 영화에 대한 확신도 없어지고, 내가 너무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며, 옆에 있는 친구에게 너도 그러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자책을 한참동안 하고 있을 때쯤 영화가 놀라워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뉴욕 최고 법률회사의 뒷처리 전문 해결사예요. 고위층에 관련된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냄새나는 일들을 처리하는 거죠. 45살의 나이에 이혼을 했고 알콜 중독자인 동생때문에 현재 빈털털이에다가 당장 며칠 내에 없는 돈 8만불을 어떻게든 갚아야 하는 상황이예요. 그러던 가운데 자신의 동료변호사가 회사의 중요한 고객인 U/노스 기업 관련 소송재판 중에 옷을 벗고 스트립쇼를 한 뒤에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뱉는 거예요. 뒷처리 전문 해결사 마이클은 회사와 자신의 돈, 그리고 동료 아서를 위해 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해요. 아서는 자꾸 도망을 가고 진실은 밝혀질 거라는 둥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마이클에게 남긴 몇 시간 후 자신의 아파트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이 됩니다. 자살이라고 판명이 났지만 마이클은 여러가지로 이상하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아서의 아파트에 들어가 증거를 찾던 마이클은 엄청난 사실을 발견해 내는 거죠. 이제 마이클은 정의를 말할 진실이냐, 현실에 굴복할 거짓이냐를 양 손에 쥐고 고민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초반의 지루하고 어지러웠던 안개가 걷어지는 건 중반을 넘어서부터였어요. 중반을 넘어서는 순간 내가 스크린을 통해서 보고 있는 이야기의 전체가 보이고 명확해지더군요. 대기업을 상대로 진실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약하고 조그만 개인. 어디선가 많이 듣고 보았던 이야기지요. 영화뿐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마치 영화처럼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잖아요. <마이클 클레이튼>은 어떤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대기업이 어떻게 선량한 개인들을 위험을 노출시키며 그들을 깜쪽같이 속였는지, 그래서 개인들이 얼마나 끔찍한 피해의 결과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기업을 상대로 싸워서 개인의 권리와 보상을 치열하게 되찾는 식의 휴먼드라마가 아니예요. 그렇다고 10분 뒤의 이야기를 전혀 알수 없는 어두운 반전 스릴러도 아니구요. 뭐랄까. 이 영화를 보면서 집중하게 되는 건 등장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이였던 것 같아요. 사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악인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 U/노스 기업이예요. 새싹로고로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이 보이지 않는 막강 대기업이죠. 그 속에 속해있는 법무팀장 카렌도 어쩔 수 없는 성공과 권력의 욕망으로 갈등하고 초조해하는 개인이였죠. 그녀는 가진 것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였고, 반면 U/노스의 진실을 알게 된 아서는 자신이 알게 된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였죠. 마이클은 이 둘 사이에서 정의나 거짓이냐를 두고 고민했구요.

       어쩌면 낡아빠진 정의이긴 하지만 저같은 약한 개인은 그것이 꼭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거짓으로 덮여져 있는 새빨간 진실은 밝혀지지 않겠냐는 믿음이 있어요. 그걸 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어쩌면 낡은 스토리의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거겠죠.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5분 정도예요. 첫 장면이 마지막에 그대로 반복되면서 다시 시작되는 영화의 마지막 5분 정도는 정말 짜릿합니다. 여기서 가진 것을 지키고자 했던 틸라 스윈튼의 무너지는 표정이 압권이예요. 그리고 조니 클루니가 뒤돌아 카메라 앞으로 뚜벅뚜벅 나오는 큰 걸음걸이도요. 통쾌하다 생각하는 순간, 뭐가 서글퍼지는 건 크레딧이 떠오르기 시작해도 이어지는 택시 안에서의 조지 클루니의 표정 때문이예요. 약 1분동안 아무 말없이 옆으로 스텝들과 배우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오르는데 50달러치를 돌고 있는 그의 표정은 방금의 흥분감이 사라지지 않은 여운과 동료를 잃고 얻은 어떤 진실과 무일푼의 뒷처리 해결사인 자신과 끝나지 않을 세상의 거짓이 뒤섞여 울듯 말듯 미소 지을 듯 말듯 묘한 표정을 만들어내요. 잊지 못할 라스트 씬이지요. 어디선가 조지 클루니가 이제 더이상 사랑영화는 찍지 않겠다는 기사를 봤어요.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말들이 명확해지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헐리웃 배우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에서 정말 멋있었거든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조지 클루니와 같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영화를 한번 더 보면 명확해지겠다고 생각한 건 조지 클루니의 아들이 영화의 초반부에 말한 그 책 내용 설명을 다시 제대로 듣고 싶어서였어요. 나이에 맞지 않게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내던 아들이였는데, 모두들 같은 꿈을 꾸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뭐라고 했는지 도통 생각이 안 나요. 시간이 되면 한번 더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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