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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노스 컨츄리'의 이 장면
    극장에가다 2007. 11. 22. 12:52
       저는 티비 보면서 잠드는 버릇이 있어요. 이상하게 너무 조용하면 잠이 잘 안 와서요. 그래서 꿈도 꼭 틀어놓은 티비나 라디오 내용에 맞게 꾸는 경우도 많아요. 연예인들이 꿈에서 굉장히 친한 사이로 나오기도 하구요. 어제도 잠이 안 와서 채널을 돌리다가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마침 영화가 시작하는 게 있어서 보니까 <노스 컨츄리>였어요. 개봉 때도 볼려다가 못 봤는데 잠도 안 오고 잘 됐다 싶어서 틀어놓고 봤어요. 재밌게 보고 있는데 잠이 솔솔 몰려 오기 시작하는데 차마 자버리지를 못하겠는 거예요. 재밌고 뒷이야기도 궁금하고 해서요. 그래서 눈꺼풀에 힘 주고 끝까지 본 덕분에 잠이 완전히 달아나버렸어요.


       <노스 컨츄리>. 개봉 때도 금방 소리없이 내렸던 것 같은데, 어제 영화를 보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몬스터>에 이어 역시 빛나는 연기를 보여준 샤를리즈 테론. 프란시즈 맥도먼드도 멋졌고, <나인 라이브즈>에서 보았던 어머니 역할의 시시 스페이섹도 짧은 분량이였지만 인상적이였어요. 모델 침대에 기대서 가만히 앉아있는 그 짧은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니까 더 몰입해서 봤던 것 같아요. 몇몇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는데요. 늘 딸을 외면했던 아버지가 여기서 부끄럽지 않은 건 내 딸 하나뿐이라고 말한 장면도 눈물이 찔끔 났구요. 마지막에 법정에서 스르르 일어났던 동료들도 그랬구요. 꼭 <죽은 시인의 사회>의 캡틴, 오 마이 캡틴 장면과 비슷한 것이 한 사람, 한 사람 일어날 때마다 스르르 감동이 1그램씩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였어요.

       제일 감동적이였던 장면은요. 제가 이 장면에서 울다가 잠이 완전히 다 달아나버렸어요. 조시가 소송을 하고 법정에서 소송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던 첫째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냐는 공격을 받고 어렵게 16살때 선생님한테 강간을 당한 사실을 밝혀요. 강간을 한 선생이란 작자는 뻔뻔스럽게 앞에 있고, 유일하게 그것을 목격했지만 도망쳐버렸던 친구 바비는 강간이 아니였다고, 조시가 그걸 즐기고 있었다고 거짓 증언을 해요. 아들은 안 그래도 광산에서 남자 일을 빼앗아서 일하고 있다는 엄마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학교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삐뚤어지고 있었는데, 거기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엄마를 강간범이라는 사실을 들은 거예요. 조시는 재판이고 뭐고 아들에게 달려가고 밤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뒷마당의 계단에 우두커니 앉아 담배를 피면서 기다려요. 그러다 뒤에서 인기척 소리가 나고 조시는 아직 잠들지 않은 딸인 줄 알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빠가 오면 말해줄테니 자라고 하는데, 아들이 돌아온 거였어요. 뒤에서 나즈막히 저예요, 라고 말해요. 그 순간 조시가 뒤도 울기 시작해요. 뒤돌아서 아들을 보지도 않고 그대로 등 지고 앉아서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참을 엉엉 울다가 비로소 마주보고 말해요. 자꾸만 배가 불러오면서 그 날의 끔찍한 일이 생각나서 니가 미웠던 적이 있었다고. 그런데 뱃 속에서 니가 나비처럼 움직이는데, 순간 이 아이는 내 가족이구나. 그 끔찍한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내 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나는 너를 위해서 뭐든 할 수 있다고. 너는 온전한 나의 소중한 아이라고.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없어도 조시가 내뱉는 이 장면의 대사들은 내 아들, 사랑한다, 정말로 널 사랑해,라고 반복해서 속삭이는 듯해요. 샤를리즈 테론이 아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대로 울음을 터뜨리는 그 순간이 정말 찡했어요.


       이 재판으로 인해 여자 광부들은 적당한 보상금을 받고, 회사에서는 성희롱 금지 조항을 만들었고, 미국의 한 광산도시에서 일어난 이 재판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흐뭇한 자막으로 영화는 끝나요. 그리고 저도 따뜻해진 마음으로 티비를 완전히 끄고 깜깜하고 조용한 방 안에서 어떤 꿈도 꾸지 않고 새근새근 잘 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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