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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스트 32번가 -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마시는 그 곳
    극장에가다 2007. 11. 20. 13:29


        <웨스트 32번가>의 크레딧이 모조리 다 올라가고 나면 'In memory Michael Kang'이라는 자막이 잠깐동안 뜹니다. 그 밑으로 언제부터 언제까지라는 날짜도 함께요. 찾아보니 실제로 거짓 자백을 한 어떤 사건에 영감을 얻어 감독이 이야기를 붙여 만든 영화라고 하네요.

       <웨스트 32번가>는 제목 그대로 웨스트 32번가의 한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예요. 한인타운의 한 룸싸롱의 영업이사인 전진호(정준호 역)가 총에 맞아 살해당하고, 변호사 존 킴(존 조 역)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한 한국계 소년이 연관되어 있는 사건을 맡아 무죄를 입증시키려고 하고, 그 사건이 전진호의 뒤를 이은 마이크(김준성 역)와 연관이 되어 있어요. 존과 마이크는 같은 한국계라는, 그리고 한 사건의 진실에 대해 알아야 하고, 알고 있는 사이로 점점 자주 어울리기 시작해요. 한국식이라며 폭탄주를 나눠 마시고, 미래를 위하여,라고 외쳐대죠. 사건의 진실은 모두 밝혀지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했던 존은 결국 출세를 위해 거짓으로 점철된 마이크의 세계로 너무나 간단히 입성해요.

       영화의 거리는 생생해요. 기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색감이나 화면 자체의 때깔도 좋고 그 속에 펼쳐져 있는 뉴욕의 한인타운의 모습도 살아 있어요. 영화 속 거리들도, 그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도, 그들이 나누는 영어 대사들도 자연스럽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배경은 또 다시 조폭이고, 이런 종류의 스토리는 왠지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식상하고, 결말부분에 존이 갑자기 변심을 하게 되는 행동에 대한 연결이 너무 부족해요. 적어도 초반의 그는 미국 사회에서 정당하게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한국계 변호사였거든요. 출세에 대한 열망이 어떤 나쁜 짓이든 상관없다,가 아니라 내 힘으로 끝까지 정당한 일로 성공하겠다고 느껴졌었거든요. 결국에는 그렇게 되어버린 존의 행동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더 필요했어요.


        카피를 보면 이 영화를 진실과 거짓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선 고민보다는 한국과 미국의 경계에 선 한인사회를 비록 룸싸롱, 갱, 어두운 부분들뿐이지만 그런대로 잘 표현해낸 것 같아요. 변호사인 존은 한국어를 쉬운 말은 알아들을 수 있지만 잘 하지 못해요. 영어만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죠. 존이 맡은 사건, 케빈의 누나 라일라와 마이크, 마이크의 친구들은 모두 영어도 한국어도 둘 다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예요. 그리고 라일라의 엄마와 룸싸롱에서 일하는 숙희는 영어를 거의 못하고 한국어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 라일라와 엄마, 존이 한 식탁에서 한국 음식을 먹는 장면이 있는데, 참 인상적이예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둘과 말이 통하는 한 사람이 한국 음식을 사이에 두고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식사를 해요. 그리고 라일라가 숙희와 존의 통역을 맡아 사건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도 그래요. 숙희와 존은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라일라 혼자 온전히 이해하고 전달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죠. 이 두 언어의 경계에 서 있는, 그래서 어느 쪽에도 진입할 수 없는 위태위태한 미국에 사는 우리 이웃의 모습이 담겨져 있어요.

       영화의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사실 정말로 그것이 현실이잖아요. 굳이 미국으로 배경을 옮기지 않아도 내가 한 단계 더 올라가기 위해 진실이 거짓이 되어버리는 순간들은 우리 주위에도 많아요. 결국 마지막 장면의 권력을 차지하게 된 마이크도 언젠가 전진호처럼 되고 말거예요. 아무도 모르게, 누가 그랬는지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어느 날 살해되어있겠죠. 마이크의 밑에 있는 수많은 그릇된 야망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서요. 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는 사회에는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고, 어느 날 누가 강자인지 어떤 것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워버리는 날들이 찾아오니까요. 그러면 그들이 맥주도 양주도 아닌, 자신들을 닮은 폭탄주를 마시기 전에 외쳤던, 미래따위는 없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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