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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브닝 - 너무 달콤하기만 한
    극장에가다 2007. 11. 19. 04:06


       극 중 클레어 데인즈의 딸인 토니 콜레트가 말해요. 물론 클레어 데인즈는 주인공 앤의 젊은 시절로 출연한 거예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딸인 토니 콜레트가 말해요. 그녀는 아이를 가지자는 애인의 프로포즈를 듣고 있는 중이였어요. 정확하게 생각나진 않지만 꽤 고전적이지만 그런대로 근사했던 말들이였던 것 같아요. 토니 콜레트가 말하죠. 아, 너무 달콤해. 그러자 애인이 화를 내요. 그저 달콤하기만 한거냐면서, 너는 늘 이런 식이라면서.

       토니 콜레트의 대사는 영화 <이브닝>을 대신해서 설명해주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문장이예요. 이 영화는 너무 달콤하기만 해요. 제가 이 영화를 얼마나 기대했는지 몰라요. 좋아하는 여자 배우들이 총 등장하고 가을에 사랑이야기라니. 예고편 속 분위기는 정말 근사했거든요. 잔뜩 기대를 하고 시사회에 당첨이 되어서 먼저 보는 행운까지 가졌다면서 좋아라 보러갔는데. 아, 이 영화는 너무나 실망스러워요.

       영화는 현재 임종을 앞둔 앤이 과거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세상을 떠나기 전 앤이 가장 후회하는 일, 몇 십년 전의 얽히고 설킨 사랑이 시작된 친구 라일라의 결혼식 날 일어난 일이죠. 이 복잡한 애정관계에 대해서 말하자면 라일라는 별장 관리인의 아들인 해리스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으나 그 마음은 지우지 못한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라일라의 남동생 버디는 라일라의 친한 친구 앤을 대학시절부터 흠모해왔어요. 그리고 앤은 라일라의 결혼식 날 해리스와 첫눈에 반하고, 역시 해리스도 앤을 좋아하게 되죠. 이 얽히고 설킨 사랑의 화살표 놀이는 결국 결혼식날의 어떤 사고로 인해 모조리 산산조각이 나요. 임종을 앞둔 앤은 그 날을 생각하죠. 자신의 단 하나뿐이였던 사랑, 자신을 단 하나뿐이라고 생각해주었던 사람, 그리고 그의 오래된 가엾은 친구.

       정말 호화스러운 캐스팅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빛나는 건 영화 속 배경이 되는 바다를 앞에 끼고 새파란 하늘과 초록빛이 넘쳐나는, 정말 하루만 지냈으면 소원이 없을 것만 같은 그림같은 별장과 클레어 데인즈의 감미로운 노래 두 곡과, 실제로 사랑에 빠졌다는 클레어 데인즈와 휴 댄시의 외모예요. 영화 속 배경이 되는 그림 같은 별장은 이 영화의 어떤 에피소드들보다 반짝반짝 빛나구요. 클레어 데인즈가 노래도 잘한다는 건 이 영화를 통해서 처음 알았어요. 피로연장에서 부른 'Time after time'은 참 좋았어요. 그리고 왜 버디(휴 댄시)를 놔두고 해리스(패트릭 윌슨)와 사랑에 빠졌는지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휴 댄시는 소심하고 여린 캐릭터였지만 그의 외모는 반짝반짝 빛났어요. 클레어 데인즈도 그렇구요. 두 사람이 왜 사랑에 빠지지 않는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 외에는 이 영화에는 볼 것이 없어요.



       일단 이야기가 탄탄하지가 않아요. 전단지에서 설명해주는, 예고편에서 봤던 스토리가 전부예요. 단 한 발자국도 더 나가지 않아요. 그리고 각각의 캐릭터들에게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아요. 너무나 매력이 없어요. 이기적이예요. 단 하나, 자신의 사랑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캐릭터들이죠. 그래서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을 단 한번의 망설임없이 사랑하게 되고, 평생을 사랑해왔지만 한번도 제대로 고백하지 못하다 자신의 결혼식 전날 고백하고, 누나의 거짓된 사랑도 자신의 오래된 사랑도 술에 취해 헤롱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나약하고, 다시 만난 옛 사랑에게 현재의 아내와 아이를 가까이 두고서 우리의 별을 잊어본 적 없다는 고백을 하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 투성이죠.

        앤의 임종을 앞둔 현재와 회상을 어지럽게 교차해서 보여주는 이유도 모르겠어요. 차라리 임종을 앞둔 앤은 그냥 영화의 앞과 뒤에만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더라구요. 특히 백발이 되어 임종을 앞둔 앤이 마지막 생을 앞에 두고 곱씹은 추억이 단지 그 사람, 그 날들뿐이였을까. 단 하루, 이틀에 끝나버린 사랑의 열정때문에 끙끙 앓기에는 그녀가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생의 마지막에 곱씹어 추억할 대상이 수십년 전 아쉽게 끝나버린 사랑의 열정이라니. 저는 왠지 뭔가 더 깊고 더 넓은 어떤 감정들과 사람들을 추억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거든요. 마지막의 백발의 라일라, 메릴 스트립이 말하는 대사처럼요. 나이가 들면 많은 일을 겪게 되고, 그리고 많은 일들이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되어버린다는. 한 사람의 일생을 관조하는 안타까운 미완성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알겠는데 왠지 이 영화는 그 깊이에 있어서 영 공감이 되지 않네요. 그저 너무 달콤하기만 해요. 별에 대고 맹세하는 사랑이야기는 젊은 날에 끝나버리는 믿음이잖아요. 메릴 스트립이 출연한다는 걸 보고 더 깊은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말이죠.

        아, 이 영화에 메릴 스트립은 백발의 라일라로 잠깐 등장하구요. 어린 라일라로 메릴 스트립의 코를 꼭 닮은 그의 진짜 딸이 등장해서 연기를 해요. 엄마랑 정말 닮았더라구요. 아무튼 여러모로 실망이 깊었던 영화였습니다. 드림시네마 원래도 좋아하지 않는데, 정말 오늘은 최악이였어요. 날씨도 추웠는데 난방이 전혀 안 돼서 그렇게 춥게 영화봤던 건 처음이였어요. 정말 얼어 죽는 줄 알았어요.


    이브닝 홈페이지에 가니 클레어 데인즈의 'Time after time'을 다운받을 수 있게 되어있네요.
    이 영화에서 가장 반짝거리는 장면이 담겨있는 노래예요.
    이 노래는 참 좋아요. 노래를 부르는 클레어 데인즈의 목소리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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