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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대하지 않은 선물, 후일담 영화
    극장에가다 2007. 11. 11. 21:42

       요즘 EBS 시네마천국이 너무 재밌어요. 예전에는 어쩌다 채널 돌리다 마주치게 되면 보곤 했었는데, 요새는 일요일 낮에 집에 있으면 재방송을 거의 꼬박꼬박 챙겨봐요. '이 영화 이 장면' 코너도 좋아하지만, 특히 변영주, 김태용, 이해영 세 완소감독님의 수다 '당신이 영화에 대해 알고 싶었던, 그러나 차마 묻지 못한 것들' 코너를 제일 좋아해요.

       오늘 방송에서는 '영화와 후일담'이 주제였는데요. 각각의 감독님들께서 좋아하는 후일담 영화를 추천해주셨어요. 여섯 작품 중 반은 본 작품이고 반은 못 봤는데 기억해두려고 끄적거리고 있는 중이예요. 짜짠. 후일담 영화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김태용 감독님께서 추천해주신 후일담 영화. 이야기나 영화 자체가 이어지는 후일담 영화는 아니지만 배우 글렌 한사드로 공통점이 있는 두 영화 <커미트먼트>와 <원스>예요. <커미트먼트>는 못 봤는데, <원스>의 글렌 한사드의 젊은 시절 모습이 나온다고 해요. 역시 음악하는 모습으로요. 아일랜드 공장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지역밴드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해요. 마지막에 글렌 한사드가 거리의 악사가 되어서 친구와 함께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왠지 그로부터 십여년 후 시간은 흐르고 턱수염을 멋지게 기르는 글렌 한사드가 여전히 거리의 악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원스>의 첫 장면과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라고요. 


       변영주 감독님이 추천해주신 후일담 영화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는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 정말 이 영화들은 말이 필요없어요. 두 영화 제목을 듣는 순간부터 짠해져요. 김태용 감독님이 혼자서 <비포 선셋>을 보고 극장문을 나서서 걸었던 그 기분이 아직도 고스란히 기억이 난다고 하셨는데요 저도 그래요. 저도 제가 앉았던 극장 좌석의 위치와 줄리 델피의 모습에서 끝난듯 끝나지 않은, 아쉬운 듯 다행스러운 마지막 장면 뒤로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의 먹먹한 기분을 잊지 못해요.  그리고 김태용 감독님이 실제로 줄리 델피와 나이가 같다면서 같은 세대이기 때문에 <비포 선라이즈>의 20대를 함께 지나왔기 때문에 두 영화가 좋았다고 하셨어요. 그것이 많은 관객들이 느낄 이 영화의 장점일 거라구요. 


       이해영 감독님이 추천해주신 후일담 영화는 <미제국의 몰락>과 <야만적 침략>. 이 두 영화는 저는 제목도 처음 들었어요. 감독님들이 이야기하시는 걸 듣고 있으니깐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4명의 남자와 4명의 여자, 부부들과의 끊임없는 수다가 이어지는데 외설적이기도 하다가 굉장히 수준있는 대화들이 오가고, 그러다 결국 폭로에 이르는 <미제국의 몰락>의 17년 후의 모습이 <야만적 침략>이라구요. 같은 감독에 같은 배우들이 실제 이름 그대로 등장하구요. <야만적 침략>은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다음 세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영화라고 해요. 이해영 감독님은 <미제국의 몰락>만 봤을 때는 감독이 굉장히 잘난척 하는 듯한 느낌때문에 싫었는데, <야만적 침략>까지 보고 나니까 감독이 왜 영화를 찍었는지, 기본적으로 따뜻한 성향의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대요. 그 영화들 보고 싶은데,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번 후일담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재밌어서 수첩에 펜까지 앞에 두고 영화 제목이며 감독님들의 재밌는 말들을 조목조목 적으면서 강의 듣는 것처럼 들었어요. 그래서 남겨진 감독님의 말말말.

    이해영 감독님. '<원스> 보러 갈 때 옷장에서 가죽 자켓을 올 가을, 처음 꺼내 입고 갔는데 영화가 그런 느낌이였다'고. '영화가 끝난 후에 찬바람이 쏴 부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변영주 감독님. <원스> 이야기 중에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이야기도 나왔는데, '음악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만큼 멜로적인 게 있을까'라고.

    누가 말씀하셨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기대하지 않은 선물로 다가오는 것이 후일담 영화'라고.

       마지막에 김태용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여섯 작품 다 지역성이 또렷한 작품이라고. 국내에서 지역성이 뚜렷하고 멜로적인 이야기에 후일담이 궁금한 영화가 딱 하나 있는데 <봄날은 간다>라고 말씀하시니까 변영주 감독님이 구박하시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김태용 감독님이 어리신 거라면서. <봄날은 간다>의 후일담이 뭐가 궁금하냐고. 유지태는 결혼해서 잘 살았을 거라고. 유지태가 그렇게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그걸로 끝인거라고. 그러면서 카메라는 조명 너머로 이동해요. 우리의 감수성 풍부한 김태용 감독님은 대꾸를 막 하세요. 뭔가 있을거라고. 그러면 사운드도 점점 줄어들고, 조명이 비추고 있는 세트도 점점 작아지고 다음 코너인 '이 영화 이 장면'이 시작되요.  

       아, 정말 좋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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