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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명화의 시그널 송을 아세요?
    티비를보다 2007. 11. 4. 13:10
       어젯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늘 새벽 28년의 길을 걸어온 토요명화의 마지막 영화가 방영되었습니다. 그러고보면 토요명화가 방영된 해의 숫자와 저의 나이가 같아요. 제가 자라면서 걸음마를 시작하고 옹알이를 시작했을 때의 토요일 주말이면 어김없이 토요명화가 방영되었다는 것이네요. 그 유명한 시그널송과 함께요. 아무튼 어제 영화 <리딕>을 마지막으로 토요명화라는 타이틀의 방송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KBS 프리미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세계 각국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탈바꿈한다고 하네요. 앞으로 새로운 좋은 영화를 만나겠지만 왠지 토요명화이라는 구수하고 익숙한 타이틀이 내려간다니 아쉬워요.

       결국은 시청률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언젠가부터 토요명화의 시간이 점점 늦어졌어요. 주말에 개봉때 아쉽게 못 봤는데 보고 싶었던 영화가 TV에서 방영된다는 걸 알고 10시 넘어서부터 리모컨을 붙잡고 기다리고 있으면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칠때쯤 자정이 넘어서 방영을 하더라구요. 제 기억으로는 예전에는 이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였는데 말이죠. 예전에는 온 가족이 모여서 옹기종기 볼 수 있는 시간대였었던 거 같아요. 더빙방송도 여러 연령층을 소화하기 위해 원본을 해치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던 거잖아요. 요즘은 영화를 꼭 토요명화나 일요명화가 아니더라도 케이블이며 DVD, 웹상의 VOD로도 쉽게 구해서 볼 수 있으니 토요명화류의 지상파방송 영화 방영 프로그램의 인기가 떨어진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점점 보질 않으니 시청률은 떨어지고 방송사에서는 밤늦은 시간대로 계속 옮기게 되는거죠. 그러면 더욱더 보질 않게 되는 거고. 최근에는 예전과 달리 꽤 최신 영화들도 많이 상영하더라구요. 예전에는 개봉영화를  TV에서 보는 건 몇년 후에야 가능한 일이였거든요.

       아무튼 토요명화의 마지막은 초라했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영화로 추억으로 안내해 주었어요. 저 같은 경우도 개봉했었을 때 본 영화를 몇년이 지난 후에 TV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 그 때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해 주었거든요. 그 때 함께 봤던 사람도 생각이 나고, 함께 영화를 본 후에 영화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들도 생각이 나고, 그 극장과 거리의 풍경들도 생각이 나구요. 토요명화에는 그런 매력이 있었어요.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는.

       이제 시작될 'KBS 프리미어'는 추억보다는 새로운 영화에 대한 발견과 늘 우리가 접하는 헐리웃 영화가 아닌 세계 각국의 다양한 나라의 영화를 방영해 준다고 하니 그 나라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주겠죠. 그리고 익숙한 토요명화의 시그널 송 '아랑훼즈 협주곡'이 아닌 다른 선율로 또 다른 추억의 시작을 함께 할 거라 믿어요. 수고했어요. 토요명화. 한때는 불평불만도 많았지만 익숙해지고 보니 더빙의 매력도 있는 것 같구요. 무엇보다 많은 영화들을 함께 하면서 여러 꿈도 키워주었어요. 사실 마지막 영화가 <리딕>이라는 건 용납하기가 힘들긴 했지만요. 뭔가 아주 예전의 토요명화만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그런 영화였으면 했거든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뭐 <리딕>의 배경이 미래사회인 것처럼 과거에 안녕을 고하고 더 새롭고 신비로운 영화들을 앞으로 소개하겠단 취지로 받아들일께요.

       토요명화의 시그널 송 '아랑훼즈 협주곡'은 스페인 맹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의 작품이래요. 어릴 때 병으로 실명해 오랜시간 어둠 속에서 보낸 그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어준 것이 음악이라고 해요. 이 곡은 로드리고가 스페인의 수도 마그리드에서 남쪽으로 50킬로 떨어진 아랑훼즈라는 옛 도시의 10세기 경에 세워진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어느 국왕의 별궁에 거주하는 집시들의 생활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곡한 곡이라고 해요. 사연을 알고나니 이 영화가 토요명화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한때 국왕의 별궁으로 아름다웠던 정원을 조용히 거니는 느낌이랄까요. 옛 명성은 사라졌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집시들이 지키고 있는 옛 시간들에 대한 추억이랄까요.

       80년에 시작된 토요명화의 추억을 온전히 함께한 제가 있듯이 또 이번에 시작되는 프리미어 영화들과 함께하는 2007년생들이 있을테죠. 프리미어 영화들도 20년 넘게 명성을 유지하면서 좋은 영화와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늘 비슷비슷한 할리웃 영화를 많이 접해왔던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영화 세계로의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 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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