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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 빙글빙글
    극장에가다 2007. 10. 25. 03:55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 별 기대가 없었어요. 원작소설을 읽었을 때 목 놓아 엉엉 울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 소설을 떠올렸을 때, 이 소설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철 없는 나의 젊은 날과 나로 인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에 나를 울렸다고 확신했거든요.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도쿄타워> 소설에 반해서 릴리 프랭키의 단편집을 읽었는데 기대에 훨씬 못 미쳤거든요. 그래서 영화도 소설의 어머니를 바탕으로 쥐어 짤 신파극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신파극에 오다기리 죠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았지만요. 그래서 영화는 별로일 거라고 생각하고 오다리기 죠나 보자는 생각이였어요. 스틸 사진 속 그의 긴 머리와 분홍빛 스웨터가 너무 예뻐보였거든요.

       <도쿄타워>의 스토리는 단순해요. 부모님은 별거 중이고, 아이는 자라고. 아이는 도쿄로 대학을 진학하게 되고, 이십대를 방황하게 되고. 술과 도박, 여자가 전부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애처로운 목소리로 유흥비를 마련하는 철 없는 시절을 보내고. 아이는 철이 들고, 어른이 되고. 엄마는 쇠약하고 죽음을 앞두게 되는 이야기예요.

       기대치가 낮아서 그랬는지 영화가 꽤 좋았어요. 물론 오다기리 죠의 매 장면마다 바뀌는 범상치 않은 컬러의 의상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지만요. 이 영화는 뭐랄까. 좋은 일본영화들에게서 느껴졌던 깔끔한 매력이 있어요. 엉엉 눈물을 짜내는 신파극이라기보다 마음을 흔들어놓는 영화인 거 같애요. 눈물의 자국을 보이기보다 눈물이 고이는 순간까지만 보여줘요.

       영화는 소설책 읽듯 주로 주인공 오다기리 죠의 나레이션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오다기리 죠의 음성은 낮고 깊이가 있어요. (요새 배우들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요.) 그가 반복해서 읊조리는 '구루구루(빙글빙글)'라는 단어의 촉감도 그렇고 그가 낮게 부르는 탄광요를 듣고 있으면 순간 너무나 구슬퍼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요.

        구루구루. 이 영화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인 거 같아요. 빙글빙글. 영화는 반복을 거듭해요. 인생이 그렇듯이요. 할머니가 죽고, 엄마가 죽어요. 철길 위에서 엄마가 나의 손을 잡아 끌었듯이, 도쿄 위에서 내가 엄마의 손을 잡아 끌구요. 아빠가 도시를 동경했듯, 내가 도시를 동경하고. 엄마가 나를 위해 희생했듯 나도 아빠가 되면 태어날 아이를 위해 희생하겠죠. 구루구루. 빙글빙글 순환하고 닮아 있는 죽음과 삶이예요.

       영화는 순간순간 나의 과거와 마주합니다. 문을 열 때, 사진을 찍을 때, 지금보다 훨씬 전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철이 없어도 상관없었던 순간으로. 힘이 들고 도망치고 싶을 때, 과거의 나는 꼬맹이의 모습을 하고 어른스런 목소리를 내며 말해요. 도망가면 안된다고, 살아나가야 한다고. 그러면 어른의 모습을 한 여전히 꼬맹이인 나는 다시 한번 힘을 내 보는 겁니다. 살아나가자고. 내일은 더 괜찮아질거라고.


       
    달이 뜨네 달이 뜨네
    미이케 탄갱 위에 달이 뜨네
    굴뚝이 하도나 높아서
    달님도 눈이 매울거예요

    당신이 그럴 작정으로 말한다면
    결심을 하지요, 헤어집시다
    원래의 열 여덟 아가씨로 되돌려 준다면 헤어집시다


    영화 속 오다기리 죠가 불렀던 탄광요예요. 도쿄타워 원작소설에 나왔던 부분이예요.
    이 가사가 어떤 멜로디에 붙여질까 궁금했었거든요. 가사도 슬프고 멜로디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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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  제작노트 보고 알았는데 어머니를 연기했던 키키 키린의 실제 딸이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군요. 어쩐지 젊은 시절의 어머니랑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어쩜 저렇게 똑같은 사람을 찾아냈을까 했는데. 모녀지간이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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