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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 도둑
    모퉁이다방 2007. 10. 9. 01:45

    자전거를 도둑 맞고 난 후에 알았다.
    자전거를 산 그 날부터 나는 자전거를 이리도 쉽게 이리도 빨리 도둑 맞을 것을 알았다는 걸.
    그래서 매일 끙끙거리며 2층 집까지 꾸역꾸역, 삐질삐질 들고 올라왔고
    그때문에 자전거를 한번 타기까지 결심하게 되는 시간이 길어졌다.
    점점 자전거 체인을 정성들여 닦지 않게 되었고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어느 날 갑자기 무슨 결심이라고 한 듯
    복잡한 현관꼴을 보아줄 수 없어 자전거를 마당으로 내렸다.
    삼일을 마당에 두었다.
    왠지 1층 아줌마가 너는 왜 거기 서 있어서 귀찮게 하냐며 자전거에게 눈치를 주는 것 같아
    자전거를 끌고 역 앞 자전거 보관대에 세워놓았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자전거가 무사함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날 같은 곳을 지나가면서도 나는 자전거의 존재를 잊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곳을 지나면서 나의 자전거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울시에서 너무나 나약하게 만들어 놓은 자전거 보관대는
    밤새 땀 한방울의 노력도 없이 쉽게 절단기에 부서졌겠지.
    그렇게 나의 자전거는 나를 떠났다.
    내가 자전거를 떠나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이 자전거를 언제까지 탈 수 있게 될지 불안했었으니까.
    얼추 세어보니 나는 나의 고귀하고 사랑스러웠던 자전거를 스무번 남짓밖에 타질 못했구나.

    장난으로 자전거 훔쳐가는 도둑X XX. 잡히면 가만 안 둔다.
    내가 몇일 밤을 고민해가면서 고른 건데.
    없는 돈에 살까말까 얼마나 고민하면서 살건데.
    현관에만 두니깐 옮기기 힘들어서 본격적으로 타고 다녀볼라고 밑에 내려놓은건데.
    옆에 비닐도 안 베낀 새 자전거도 많더만.
    내 안전장치가 그렇게 만만했냐고.
    자전거 보관대 자물쇠 채울 때 꼭 바퀴 올려놓는 밑 받침대랑 연결해서 채워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내 곁을 떠난 자전거야.
    너를 훔쳐 간 주인에게 헌신하지 말고 무작정, 바로, 초스피드로 너를 망가뜨리렴.
    그게 너를 아끼고 사랑했던 본 주인을 위한 거란다.

    열쇠꾸러미에서 자물쇠 열쇠를 빼어내며.
    안녕.
    너를 잊지는 못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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