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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레이브 원 - 뉴욕을 걷는 여자
    극장에가다 2007. 10. 8. 10:30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는 조디 포스터가 뉴욕의 거리를 마이크를 잡고 걸으면서 시작합니다. 여러 뉴욕의 소리들을 녹음하고 그 위에 자신의 목소리를 집어넣습니다. 조디 포스터는 뉴욕을 걷는 여자예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지요. <브레이브 원>을 보면서 조디 포스터 목소리가 이렇게 좋은지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 자신을 많이 닮아있어요. 낮고 강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어요.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해요. 결혼을 앞둔 너무나 행복한 에리카(조디 포스터)가 애인과 함께 산책을 가다가 갱들을 만나 애인은 죽고, 에리카는 죽다 살아나요. 그 뒤로부터 에리카는 거리를 걷는 것이 무서워지고 불편해져요. 합법적으로는 범인들을 잡아 넣지 못할 정도로 경찰은 무능하고, 에리카는 '살아 나가기 위해' 불법으로 총을 구입하고 폭력에 맞서요. 에리카가 처음부터 작정한 건 아니였지만 총을 쥔 그녀는 용감해졌고 경찰이 집어넣지 못하는 이 땅의, 이 거리의 비겁하고 개념 없는 폭력 앞에 총부리를 겨루게 되요.

       사실 스토리는 간단하고 너무나 영화적이예요. 법이 집행하지 못하는 악당들을 찾아 내가 심판을 하겠노라, 이런 식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스토리 라인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건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갈등이예요. 에리카는 어느 날 형사 머서에게 이렇게 물어보죠. 사람을 죽여봤나요? 총을 쏠 때 손이 떨리지 않나요? 머서는 떨리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실 에리카가 나쁜 악당들을 향해 총을 쏘아될 때 전혀 손이 떨리지가 않거든요. 거기서 에리카는 초조해져요. 물론 그녀가 작정하고 총을 쏘아 된 것도 아니었고 대부분 우연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였어요. 그렇게 사람을 죽여간다는 것에도 자책하고 괴로워지는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순간,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손이 하나도 떨리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녀가 그것을 즐기는 것도 아니였는데 말이죠. 영화의 마지막에 그녀는 손을 한번 떨어요. 방아쇠를 당길 때 말이죠. 그건 그 총에 맞을 사람이 선한 사람이였기 때문에, 총을 맞을 정도로 악하지 않기 때문이였죠.

       이 영화에서 눈물이 날뻔한 장면이 있었는데요. 바로 에리카의 나즈막한 목소리 때문이였어요. 이 장면에서 정말 조디 포스터의 음성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구나, 생각을 했는데요. 끔찍한 일을 당하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모두들 조금 더 쉬라고 했을 때 그녀가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 그 첫 방송에서였어요. 뉴욕거리의 이중적인 모습과 폭력을 당한 약자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원고 읽기를 이어나가지 못해 방송사고가 날 뻔했던 찰라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요. 뉴욕 거리가 무섭다는 사람들을 이해 못했죠. 뉴욕 거리를 걷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이해 못했죠, 라면서 한 때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뉴욕의 거리가 이제 끔찍한 공포로 다가왔다고, 사람들이 어떻게 뉴욕의 밤거리를 걸어다니는지 모르겠다면서. 실제로 그녀는 거리에서 누가 스쳐 지나만 가도 두려움에 몸서리를 쳐요. 그냥 그 사람은 지나가는 건데. 폭력은 사람을 거리로부터 격리시키게 만들어요. 사람들에게서두요.


       에리카와 머서의 심리 묘사요. 너무 좋았어요. 두 사람이 함께 나오는 씬들은 다 어찌나 근사하게 느껴지던 지요. 두 사람 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예요. 에리카와 머서는 처음부터, 서로를 처음 봤을 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눈빛을 지어요. 나누는 대화의 내용도 처음부터 그랬어요. 굉장히 중의적이고 이중적인 표현들로 가득해요. 예를 들어 머서가 티비를 보며 자기가 얼마나 저 사람을 잡아 넣고 싶은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를 에리카에게 말해주는 말들은 마치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알아요. 저 사람을 제발 죽여줘요.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죠.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신뢰해요. 이 더럽고 야비하고 폭력적인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당신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눈빛들과 미소들을 주고 받아요. 그 표정들이 너무 좋았죠.

       에리카는 이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내가 총부리를 당기는 그 대상이 더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쏩니다. 합법적인 경찰들은 이런 사람들 죽이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고민해요. 왜 나를 누군가 막아주지 않는 거지? 나는 분명히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는데. 시민들은 더 좋아하죠. 나쁜 놈들을 죽여줘서 고마워요. 더 죽여줘요. 머서는 거의 처음부터 에리카가 범인인 걸 알고 있었던 듯 해요. 아니, 확실히 알고 있었던 거 같애요. 그런데 에리카를 잡지 못해요. 자신이 합법적으로 하고 싶으나, 결코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다 해주고 있거든요. 에리카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경찰인 그는 그녀를 잡기가 싫어요. 이런 고민들이 조디 포스터와 테렌스 하워드의 눈빛과 몸짓 위에 입혀지면서 영화가 아파와요.

        조디 포스터는 나이가 많이 들어서 큰 스크린 위에 그녀의 자그마한 주름살들이 여기저기 너무나 많이 보이지만, 이런 역할에 여전히,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배우예요. 그녀가 아니면 누가 이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겠어요? 당신의 주름살이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인 걸 영화를 보는 누군들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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