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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니 다이어리 - 빨간우산을 내려주세요
    극장에가다 2007. 10. 5. 01:17


       사실 스칼렛 요한슨이 그렇게 예쁜지는 모르겠어요. 섹시한지도 모르겠구요. 그녀가 나온 영화 중에서 오히려 평범하고 유난한 외모였던 <스쿠프>나 <인 굿 컴퍼니> 쪽이 섹시함이 강조된 영화보다 더 끌렸던 거 같애요. 제일 좋았던 건 쓸쓸한 도쿄 창가에 홀로 앉아 있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지만요.

       아무튼 <내니 다이어리>를 봤습니다. 보고 싶었어요. 이 영화에서도 스칼렛 요한슨은 섹시하거나 비밀스럽다기보다 평범한 캐릭터예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금융계 면접을 보다가 첫 질문에 대답을 못하게 되면서부터 내니, 아니 애니의 인생이 달라져요. 자신을 소개해 보라는 아주 간단한 질문이였어요. 사실 늘 자신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우리 모두 믿고 있지만, 가장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잖아요. 저부터 그렇거든요. 그리고 애니는 빨간 우산을 타고 상류층 보모 '내니'로 취직을 합니다. 우연이였지만 필연이였는지도 몰라요.

       그러면서 겪게 되는 좌충우돌이야기예요. 아이는 처음에는 말썽을 부리다 어느새 애니를 믿고 의지하게 되고, 상류층의 일 안하는 엄마는 자선파티며 무슨무슨 파티며 해서 언제나 바쁘고, 거만하고 느끼한 아빠는 돈 번다고 얼마나 힘든 줄 아냐고 가족을 외면하고 여자를 가까이 하죠. 상류층의 엄마는 외롭고, 그런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픈 아이도 외로워요. 외로운 사람들 속에 끼여서 애니는 관찰합니다. 애니의 전공은 인류학이였거든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애니는 그리 매력이 없어요. 늘 발만 살짝 담그죠. 아이를 외롭게 하는 엄마에게 한소리 하겠다고 마음만 먹고는 한 쪽 발을, 윗층 부유층 남자를 만나 연애를 시작하지만 아이와 아이 엄마때문에 한 쪽 발만 살짝. 결국 영화의 끝에서 애니가 두 발을 빼는 순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해결되었지만 말이죠. 이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애니가 인류학을 공부했다는 거예요. 영화는 인류의 어떤 부족을 관찰하는 것처럼 상류층을 묘사해요. 그리고 가끔 인류학 이론에 관한 당장 어두운 극장 안에서 수첩을 꺼내 적어두고 싶은 명언들을 내뱉기도 해요. 저는 수첩을 꺼내지 않아서 어렴풋하게만 기억이 나는데. 애정을 가지고 지내다보면 그 부족은 변화될 수 있다, 인류학을 연구하는데 있어 그 부족에 푹 빠져들게되면 그때는 더이상 연구가 불가능하니 중단해야 한다, 뭐 이런 것들이였는데요. 정확하지가 않네요.

       영화는 유쾌합니다. 결말과 이야기는 뻔한 구석이 있지만요. 애니는 상류층에 입성해서 세 그레이어를 만나죠. 정말 애니가 보모를 맡고 있는 그레이어. 윗층에 사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 하버드맨.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에 잦은 유모 교체와 어머니의 부재로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하죠. 그리고 그레이어의 엄마 미세스 X.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어린시절부터 미세스 X가 얼마나 엄마의 사랑을 갈구해왔고 자신의 엄마가 그것을 외면했다는 것을요. 그래서 그녀가 그렇게 자신의 엄마 모습 그대로 어른이 되어버린 지도 몰라요. 영화의 결말에 따르면 그녀는 이제 자신과 똑같은 그레이어를 만들진 않겠죠.  

       애니의 환상 속에 등장하는 빨간 우산이요. 그녀를 상류층의 내니로 데려다주고, 다시 빠져나오게 해준 상상속의 빨간 우산. 그 우산이 내게 오면 그 곳에 가서 죽도록 열심히 부딪치고 깨져보라는 거예요. 그리고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서 열심히 부딪치면 되니까. 아직 젊으니까. 끊임없이 깨져야 하니까. 내게도 빨간 우산이 내려왔을까요? 언제쯤 다음 우산이 올까요? 열심히 부딪쳐야 깨져야하는데 말이죠.


    덧, 영화 속의 로라 리니의 눈빛은 늘 촉촉해 있어요. 신경질적일 때도, 사랑을 받지 못할 때도, 행복해하는 짧은 순간에도 말이죠. 사랑받고 싶은 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의 눈빛이 그럴까요. 로라 리니의 젖어있는 눈빛이 영화 보는 내내 저를 시리게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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