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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이현 작가 강연회를 다녀와서
    서재를쌓다 2007. 9. 29. 22:01

       YES24와 롯데시네마에서 주최하는 정이현 작가 강연회에 다녀왔습니다. 저번 황석영 작가 강연회도 정말 가고 싶었는데 다행스럽게 당첨되었고, 이번 정이현 작가의 강연회도 당첨되어서 두번째 작가 강연회였어요. 강연회는 주로 이번에 발간된 <오늘의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였구요. 아직 구입을 못했는데, 다행스럽게 경품추첨으로 <오늘의 거짓말> 책을 받았어요.싸인도 받았구요. :)

       저번 황석영 작가님 강연회처럼 녹음기로 녹음을 해서 나름 옮겨 적어보았는데 정확하게 옮기려고 노력했으나 저의 부실한 청력과 너무나 방대한 양이라 실수가 많을 거예요. 일단 올려봅니다.

       정이현 작가님은 떨린다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초반에는 그런 느낌이였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차분하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맛깔나게 잘 하시더라구요.

       작가님에 대해서 좋은 인상 듬뿍 받고 돌아왔습니다. 미흡한 옮겨쓰기라도 그 자리에 안 계셨던 분들이 읽으시고 그 분위기를 느끼셨으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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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정이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정이현입니다. 제가 극장의 무대 위에 올라오는 일이 평생 있을줄 상상도 못했는데요. 이렇게 올라왔습니다. 보니까 너무 많이들 와주셨어요. 명절 지난지도 얼마 안 됐고, 또 금요일 저녁이 가장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이잖아요. 또 즐겁고 재밌는 곳에서 약속도 많으실텐데 저를 보러 여기까지 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가끔씩 자연인이 아니라 작가 정이현으로 이렇게 무대 비슷한 곳에 올라와야하는 순간들이 있는데요. 그런 순간들마다 굉장히 떨려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상당히 무대공포증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겉으로는 굉장히 멀쩡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막 와들와들 떨고 있거든요. 저는 어색할 때 주로 그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뭔가 개그를 해야할 것 같은 그런 욕망이 들기도 하구요. 아니면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제가 못하는 춤이나 노래라도 보여드려야 되나 (웃음) 아니면 판토마임이라도 한 판 벌어야 되는지. 지금 태연을 가장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의 이런 어색함은 작가는 말이 아니라 글로써 독자들과 소통하는 존재라는 그런 자의식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이미 세상에 내놓은 자기 소설에 대해서 작가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부연설명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변명처럼 들릴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이미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에 이미 그 작품은 저의 것이 아니라 독자 여러분들의 것이고 당연히 불완전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작품들이잖아요. 그래서 언제나 지난 소설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저를 부끄럽게 하고 곤욕스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의 세번째 책이예요.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소설이 7월15일경에 나왔어요. 지금 9월말이니까 두 달 반 정도 얼추 됐는데요. 저의 세번째 책이예요.

        책이 나오면 항상 어떤 일종의 진공상태에 빠지는 거 같애요. 좀 우울해지기도 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곤 하고 그러는데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누가 제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듣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하고 저도 제 소설 <오늘의 거짓말>에 대해서 말하는 자리들을 가능하면 요리조리 피해다니면서 그렇게 온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저의 어떤 조급함때문인 거 같애요. 빨리 지나온 시간들, 지나온 소설들 세계를 좀 벗어버리고 어서 빨리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 그런 제 안의 조급함과 조바심이 있어서 그런 거 같은데요. 그런데 사실 또 생각을 해보면 더 멀리 먼 길을 앞으로 가려면 지난 시간들, 지나온 길들을 차근차근 돌아보는 것도 꼭 필요할 거 같거든요. 차근차근 돌아보고 성찰하는 그런 시간도 필요할 거 같애서요 오늘 저한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여러분들과 함께 <오늘의 거짓말>에 실린 소설들에 대해서 그냥 편안하게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 가져보고 싶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제목에 대해서 말씀 드릴께요.

       먼저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제목에 대해서 말씀 드릴께요. 어떤 작가나 그렇겠지만 저도 이 표제작을 선정하는데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여기 저희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 직원분들도 몇 분 와계신데요. 직원분들이 웃으실수도 있을 거 같애요. 제가 제목 고르기 위해서 너무너무 속을 많이 썩였거든요. 처음에는 이런 제목으로 했다가, 처음엔 '비밀과외'라는 제목을 생각했었고 타인의 고독이라는 제목도 그렇고 굉장히 섹시한 제목으로 하리라, 생각했었는데요. 처음에 '비밀과외'로 하겠다고 다 말씀드려놓고 표지디자인 들어간 거 뻔히 알면서 다음날 또 전화를 걸어서 죄송한데 '타인의 고독'이 좋을 거 같거든요, 하고 말씀드리구요. 또 며칠 지나 전화 걸어서 생각해봤는데 그거 아닌거 같거든요. 그러면 무슨 대안이 있으시냐고 그러면 아직 대안 없거든요, 이렇게 속을 많이 썩였어요.
    유난히 안 잡히더라구요.

        그래서 주변의 지인들한테 문자메세지로 설문조사를 하겠다고 했는데요. 1번 '삼풍백화점', 2번 '타인의 고독', 3번 '비밀과외' 해서 어떤 게 좋냐 그랬더니 압도적인 몰표가 하나 나오면 그쪽으로 가면 될텐데 제가 귀가 무지 얇은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다들 강력하게 1번이야, 역시 타인의 고독이 최고야, 딴 거 하면 절대 망해, 이렇게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너무 강력하게 무슨소리야 '삼풍백화점'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은 무슨 소리야, '비밀과외'가 제일 섹시해. '비밀과외' 아니면 다 망해. 이렇게 너무나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해줬기 때문에 나중에는 배가 산으로 가서 제가 막 혼란상태가 오더라구요. 그리고 결국엔 소설집에 꼭 제목이 필요할까, 정이현 두번째 소설집으로 하면 안 될까, 이런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었어요. 그런데 자포자기 상태로 어딘가 놀러가다가 고속도로 화장실에서 너무나 우연히 정말 거짓말처럼 섬광처럼 스쳐가는 제목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거짓말>이였어요. 그래서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출판사로 전화를 걸어서 이런 제목은 어떠실까요, 라고 했었던 그런 기억이 나는데요.


    지금 이 곳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서 소설을 씁니다

        <오늘의 거짓말>이라고 그런 문장을 만들고 나니까 그 두 단어, '오늘'이라는 단어와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지금 제가 추구하고 있는 어떤 미학적 세계를 어쩌면 조금 적확하게 표현하는 두 단어가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구요. 먼저 '오늘'이라는 걸 말씀을 드리면, 가끔은 당신은 왜 소설을 쓰세요, 이런 아주 원론적인 질문을 마주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당신은 왜 밥을 드세요, 혹은 왜 사세요, 이런 질문을 할 때 황당한 거처럼 저도 왜 소설을 쓰세요, 이러면은 대답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갸웃갸웃거리는데요. 그럴때마다 결국 머리를 쥐어 뜯다가 드리는 대답은 일정한 거 같애요. 지금 이 곳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서 소설을 씁니다, 라는 대답이예요.

       저는 지금 이렇게 무대 위에서 달달 떨면서 얘기하고 있지만, 조금 있다 집에 갈 때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고 또 10월 1일날 세금 마지막 내는 날인데 오늘 9월 28일이더라구요. 금요일인데. 어, 벌금 내겠네, 그런 것때문에 고민하는 정말 평범한 생활인이잖아요. 그런데 어쩌면 우리 일상에서는 선택하고 갈등하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은지. 저 사람이 1차를 샀으니까 내가 지금 여기 2차를 사는게 맞을까, 그런데 2차가 1차보다 훨씬 더 돈이 많이 나올 거 같은데. 이런 수준의 저급한 갈등부터 내가 과연 이 결혼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같은 커다란 것, 혹은 내가 과연 그런 일을 계속할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인생의 좀더 커다란 문제와 직결된 고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정말 숨가쁘게 순간순간 너무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면서 살잖아요.

       그런데 문득 밤이나 저녁시간에 지하철타고 흔들리면서 집에 들어가면 지하철 안의 행인들, 저와 같이 지하철 타고 쭉 집에 가다보면 너무 평화로워보여요. 저의 머리 속은 복작복작 터질 것 같은데 너무나 평화롭게 졸고 술 한잔 하시고 술 냄새 풍기면서 졸고 있는 아저씨도 계시고 또 이어폰 삐져나오라 커다란 음악을 듣는 그런 아가씨도 있고 저들은 인생이 너무 평화로와보이는구나, 부럽다, 이렇게 그들을 관찰하다가 문득 혹시 저들도 스스로만 아는 어떤 문제점에 직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도 모르게 무엇인가 영혼이든 무엇이든 자신만 아는 느낌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걸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어요. 아마 여러분들 다 그런 순간을 느껴보셨을 거 같은데요. 그런 의문이 들 때  문득 그런 분들이 낯선 분들이지만 반갑고 뭔지 모를 친밀감도 느껴지고 그렇죠.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도 결국은 저와 함께 어딘가로 실려가는 분들, 지금 이곳에서, 내일, 우리 너무나 불안한 내일이지만 너무나 불안한, 그래서 어쩌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를거라 기대하게 하는 그런 내일로 실려가는, 저와 같이 이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그런 분들을 위해서, 당신만 흔들리는 거 아닙니다, 저도 흔들리고 있고 사실은 우리 모두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라는 비밀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소설을 쓰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지금 이 곳, 오늘이라는 화두를 마음 속에 담고 있구요.


    소설가는 생리적으로 거짓말쟁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늘 해요. 

        그리고 오늘의 거짓말이니까요, '거짓말'이라는 단어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오! 수정>이라는 영화 많이들 보셨죠? <오! 수정>이 재밌는 영화잖아요. 그런데 보면 반을 나눠서 한 쪽은 여자의 기억, 한 쪽은 남자의 기억, 똑같은 사실을 놓고 재현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요. 너무나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에서 여자는 포크, 숟가락 떨어진 걸 기억하고 있고 남자는 아예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건 자신의 머리속에서 지워져버린 사건이죠. 그리고 어떤 대화를 할 때도 남자는 다른 맥락을 기억하고 있고, 여자는 또 전혀 엉뚱한 걸 기억하고 있고 이렇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똑같이 겪은 사실, 팩트더라도 전혀 다른 기억으로 그렇게 재현되는 거 같습니다.

        소설은 언제나 과거형 시제로 쓰여지잖아요. 제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들을 여러분들이 소설로 옮기신다고 해도 그녀는 말한다가 아니라 제가 말하는 것과 여러분들이 쓰는 시간에는 1초, 혹은 10초의 시간차가 있기때문에 그녀는 말한다,가 아니라 그녀는 말했다,라고 하죠. 이런게 바로 소설의 시제고 그렇다면 소설은 언제나 현재를 쫓는다고 하지만 현재를 그대로 쫓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반 발자국 뒤에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그런 숙명이 있는 것이 소설인 거 같애요. 그렇다면 소설가가 언제나 내가 쓰는 소설은 현실이야, 라고 우겨도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없겠죠.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이 아니라면 거짓말이니까 진실에서 반발자국 떨어진 거짓말일 수 밖에 없는 그런 명시적 운명을 타고 난 거 같구요. 그래서 소설가는 생리적으로 거짓말쟁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늘 해요.

        그렇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진실은 뭐고 거짓말은 또 뭘까, 이렇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이게 진실이고, 어떤 사람은 이게 거짓말인데 그냥 이른바 진실이라는 것, 혹은 이른바 거짓말이라는 것만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그 진실이라는 것과 거짓말이라는 것 차이는 아주 작고 사소하고 반짝이는 그냥 조그만 틈새같은 것만 있는 거 아닐까.
    그 틈새를 뭐라고 이름 붙여야 될지 모르겠지만 문학이라면 응당 그 진실이나 거짓말, 그 화려하고 커다란 것이 아니라 진실과 거짓말 사이에 있는 작은 틈 사이에 대해서 주목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역할이고 문학하는 사람이라면 그 작은 틈새를 찾아내고 드러내고 여러분들한테 보여드리는 일, 응시하게 하는 일, 이것이 문학하는 사람의 책임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서 '거짓말'이라는 화두 역시 제 마음에 언제나 들어 있는 거 같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 때 위로가 되주었던 소설이 '타인의 고독'이라 그렇거든요. 

        <오늘의 거짓말> 많이 보셨나요?<오늘의 거짓말> 보시면 첫번째 있는 소설이 '타인의 고독'이라는 소설이예요. '타인의 고독'은 어머니들이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저는 가끔 거짓말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꼭 그런건 아닌 거 같애요. 용돈 많이 주는 자식이 좋고 (웃음) 공부 잘하는 자식이 좀 더 예쁘시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소설가한테 열 편 중에서 어떤 소설이 제일 좋으세요, 참 짓궃은 질문인데요. 저는 아마 망설이다가 '타인의 고독'에 마음이 조금 더 갑니다, 라는 대답을 할 거 같애요. 왜 그러냐면 제가 가장 힘들 때 위로가 되주었던 소설이 '타인의 고독'이라 그렇거든요.

        '타인의 고독'은 2004년 봄호의 문예지에 발표했던 작품이예요. 2004년 봄호면은 2004년 6월 정도에 마감을 했었던, 굉장히 오래됐죠. 3년이 넘은 소설인데요. 그때가 저 개인적으로 어떤 시기였냐면은 2003년 9월에 첫 소설집인 <낭만적 사회와 사랑>가 세상에 나오고 정이현이 누구구나, 정이현이라는 작가가 있구나, 이렇게 세상에 좀 알려지기 시작했었던 그 때예요. <낭만적 사회와 사랑>을 제 생각과는 다르게 많은 분들이 많이 사랑해주시고 많이 읽어주시고 그랬어요. 그런데 작가한테는 당신의 소설이 어떻습니다, 라고 그렇게 호명되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축복이기도 하죠. 누군가가 호명해 준다는 것은. 그렇지만 어떤 선입견이 생긴다는 측면에서는 어떤 일종의 부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낭만적 사회와 사랑> 그 작품들을 꼭 의도해서 여성들의 이야기만 쓴 건 아니였어요. 우연히 묶고 보니까 그때 저의 관심사가 여성이였던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그것들이 나쁜 여자들이라거나, 악녀들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쿨한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이런 이야기들이 저에게 부담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낭만적 사회와 사랑> 다음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이 '타인의 고독'이였는데요. 정말로 소설이 한 줄도 쓰여지지 않았어요. 아까 조바심과 조급함이 마음 속에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서 과연 <낭만적...> 이후에 내가 뭘 보여줘야 되나, 어떤 걸 쓸 수 있을까, 너무 고민을 하다보니 약 열 편 정도의 소설을 한 다섯줄 썼다가 덮어버리고 또 다섯줄 썼다가 덮어버리고 그러다 결국 아, 나 이러다 소설 못 쓰겠다, 영원히 못 쓰는 사람이 될거야, 펑크를 낼 수밖에 없어,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찾아와준 소설이 '타인의 고독'이라 저한테는 정말 고마운 소설이예요.


    우리 정말 외롭잖아, 그런데 우리 외로운 건 왜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을까.

       
    대개 친한 친구가 있어요. 성별은 남성인 저랑 동갑인 친구인데요. 그 친구가 굉장히 체격도 좋고, 제가 혈액형 신봉자거든요. 저는  O형이예요. 그 친구도 전형적인 O형의 너무 사교성도 좋고 싹싹하고 듬직하고 어딜가나 붙임성도 좋고 영업사원에 딱 맞는 체질을 가진 그런 친구예요. 그런데 그 친구가 혼자살고 있는데요. 저는 항상 그 친구는 씩씩하고 뭘 해도 재밌고 즐겁겠거니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그 친구를 만났는데 자기가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대요. 좀 안 어울린다, 고양이는 왜? 그랬더니 자기가 어느 날 혼자 퇴근해서 밤에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는데 그 어둠 속에서 혼자 너무 외롭더래요. 그래서 그 안에 다른 생물체라도 하나 더 있으면 덜 외로울까 싶어서 고양이를 분양해왔다고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대요. 고양이 밥 줘야 되니까 빨리 들어간대요, 그래서 가라고 축하한다고 고양이랑 천년만년 행복하게 살라고 그렇게 얘길 해줬는데요. 그 다음 또 며칠 후에 또 만났어요. 너의 고양이 잘 있니, 그랬더니 그 친구가 저번보다 약 두배정도 쓸쓸한 표정으로 갖다줬어,하더라구요. 왜, 그랬더니 어느 날 또 현관문을 열고 깜깜한 방 안으로 들어갔대요.

       그런데 불을 딱 켰는데 고양이가 자기를 본척 만척 안 하고 혼자 벽을 보고서 무엇을 하는지 너무나 재미있게 잘 놀고 있더래요. 자기가 혼자 잘 노는 고양이의 등을 보는 순간, 혼자 있었던 순간보다 열 배정도 더 고독과 외로움이 밀려와서 혼자 괴로워하다가 그 날 밤, 잠을 한숨도 못자고 고양이를 갖다줘야겠다, 이러다 내가 폐인이 되겠다, 그러다 다음날 바로 고양이를 갖다 줬다고 하더라구요. 술 한 잔 하면서 그 얘기를 듣고 있는데 정말 저의 너무나 편안한 10년된 친구가 저의 마음을 이렇게 싸-하고 아프게 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저는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다짐을 한 게 하나 있거든요. 나는 죽어도 내 얘기와 내 주변 얘기를 쓰지 않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낭만적 사회와 사랑>에 있는 그 소설들, 다들 모든 사람들이 그 유리가 너지, 이러면서 니 얘기 아니야, 그러는데 그거 제 얘기 아니거든요. 저 얘기 아니구요, 그냥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소설가는 이야기꾼의 한 사람으로 그 이야기를 채록해서 재미있게 윤색해서 세상에 내 보이는 그런 입장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애요. 그런데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아, 이제는 우리의 시대, 우리 세대,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한번 솔직하고 허심탄애하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우리 정말 외롭잖아, 그런데 우리 외로운 건 왜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을까. 집에 오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었던 거 같애요. 그리고 친구가 고양이의 등을 보고 외롭다고 했듯이 저도 술 마시고 있는 친구의 등을 보면서 아, 쟤 등이 저렇게 생겼었구나, 언제나 앞에서 웃고 사람들 즐겁게 해주는 모습만 봤는데 저 친구한테 저런 뒷모습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 그런 것도 대개 궁금해졌어요. 나는 언제나 세상에서 내가 제일 외롭다고 생각하고 제가 제일 우울하다고 생각하고 제 고통이 제일 큰 고통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데 왜 나는 저 친한 친구의 외로움을 몰랐을까. 저 친구는 왜 즐거울거라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왜 늘 자신의 고독만 중요할까. 그런 의미에서 제가 붙여본 '타인의 고독'이라는 제목은 타인의 고독을 통해서 자신의 고독을 역설적으로 한번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자신의 고독, 나의 고독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될 거 같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결국은 1995년의 이야기를 쓸수밖에 없겠구나

         그 다음에 '삼풍백화점'이라는 소설 있잖아요.  '삼풍백화점'은 역시 질문들 많이 하세요, 삼풍백화점과 관련해서. 자전소설이냐는 질문 많이 받고 정말 거기서 살아 나오셨냐는 질문 많이 받는데요. 예, 거기 갇혔었던 건 아니구요. 저 생존자 아니구요. 30분 전에 에어컨이 안 나와서 너무나 더워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렸는데요. 제가 탔던 엘리베이터에 타셨던 분들 있잖아요. 그 분들 얼굴이 아직도 생각이 나요. 엘리베이터걸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타시면서 오늘 왜 이렇게 더워요, 라고 말씀하시니까 엘리베이터걸이 아, 에어컨이 고장이예요. 죄송합니다, 라고 얘기했거든요. 그게 아직도 언뜻언뜻 생각이 나는, 그것이 삼풍백화점입니다.

       자전소설은 맞구요. 이것은 문학동네라는 많이들 아시는 문예지죠? 그 문예지에 젊은 작가 특집이라고 매월 젊은 작가를 선택을 해서 작품들을 싣고 자전소설을 받고 하는 기획이 있거든요. 그 때 제가 2005년이였나요? 그때 젊은 작가 특집을 했을 때 자전소설로 발표했었던 소설입니다. 그런데 문학동네 젊은 작가 특집이라는 것이 제가 문학 공부할 때부터 쭉 봐왔잖아요. 많이 보셨겠지만 보면 자전소설 뿐 아니라 앞에 화보에 어렸을 때 사진도 실리고 그래요. 그래서 문학공부할 때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랑 그래, 우리는 무슨 사진을 실을까, 자전소설은 쓰면 어떤 얘기를 쓸까,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어쩌면 등단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꿈의 지면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그런 것인데요. 가끔은 꿈을 이뤘으니까 행복한 사람이야,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요. 그런데 젊은 작가 특집을 한다고 청탁을 받았으니 얼마나 흥분했겠어요.너무 좋아서 드디어 자전소설을 한번 써 봐야지,라고 했는데 진짜 난감했어요. 무엇을 써야 내 개인과 내 문학을 연결시킬수 있을까, 내가 언제부터 과연 문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을까. 자전소설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제 길지 않은 인생, 긴 인생인가요? (웃음) 인생을 쭉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그런 기회였는데요. 마감이 5월초였다면 생각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4월말까지 한 줄도 쓰지 않았었어요. 일부러 막 다른 소설을 쓰고 머리속에서는 늘 자전소설을 생각하면서 다른 일들만 막 열심히 했었거든요.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결국은 1995년의 이야기를 쓸수밖에 없겠구나, 그런 결심이 섰는데.


    여러분들 청춘은 어떤 곳에 고이 모셔져 있었으면 좋겠어요

       1995년은 저에게 너무 의미있는 한 해이기 때문에,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너무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 한 해였기 때문에 그 한 해에 대해서 선뜩 펜이 나가지 않더라구요.젊은 작가 특집은 펑크가 나면 책이 안 나오기 때문에 독촉과 애원과 읍소와 이런 것들을 받은 끝에 마지막으로 겨우겨우 힘을 내서 작업실 문을 걸어 잠그고 3일만에 썼던 소설이 '삼풍백화점'입니다. 정신 차려 보니까 하루에 한 끼나 두 끼, 생생우동을 끓여먹으면서 일을 하고 있었구요. 저는 일할 때 먹는 게 굉장히 중요해서 먹을려고 일한다는 생각이 들만큼 일할 때 정말 많이 먹거든요. 그런데 유일하게 '삼풍백화점' 쓸 때만 낮밤 구분이 없이 3일을 정말 꼬박 앉아서 썼구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제가 계속 울고 있더라구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쓰고 있었는데요.

       저는 언제나 소설을 쓸 때, 특히 <낭만적 사회와 사랑> 소설을 쓸 때는 작가와 소설간의 거리는 멀수록 좋다, 작가는 소설 혹은 소설 속 인물에 대해 차가워야 한다, 그런 입장을 쭉 견지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그때 3년차 4년차였으니까. 처음의 입장이라고는 온데간데없이 소설에 푹 빠져서 울고 있었는데요. 제가 눈물을 닦으면서 세상에 누가 자신의 청춘에 대해 쓰는데 울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면서 혼자 자위했어요. 그런데 그 청춘이, 여러분들 청춘이 어떤지 모르겠는데요. 여러분들 청춘은 어떤 곳에 고이 모셔져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저의 청춘은 삼풍백화점과 함께 어쩌면 폭삭 주저앉아버린 청춘같애요. 언제나.삼풍백화점과 함께 폭삭 무너져버렸고, IMF와 함께 거품처럼 빵 터져버린. 저의 20대를 생각하면 늘 그렇거든요. 그래서 웃으면서는 추억할 수 없는, 웃지만 뭔가 씁쓸한 느낌, 쓸쓸한 미소가 남는 그런 시절이 저에게 1995년인 거 같애요.


    사람보다도 이 말하지 못하는 기계가 나를 훨씬 위로해주고 위무해주는구나.
     

       저는 1991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1995년에 졸업을 했거든요.  나이가 다 나오죠. (웃음) 누구나 그렇겠지만 우리나라 교육이 그렇잖아요. 대학만 가면 무조건 다 된다. 일단 10대의 욕망은, 10대가 참 몸이나 마음이나 들끓는데 그 욕망을 잠재우게 하기 위해서 가끔은 사회적 음로로서 대학 입시라는 걸 강요하는 게 아닐까.10대들의 욕망을 고삐 풀듯이 쫙 늘어놓으면 사회가 주저할 수 없는 갈등과 혼란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사회는 대학입학에 매진하는 그런 게 있잖아요. 저도 당연히 모범생은 아니였지만 그나마 그냥 어떻게 어떻게해서 그럭저럭 겨우겨우 대학에 들어갔어요. 이제 장미빛 인생만 펼쳐지리라, 이런 멋진 예감을 품고 딱 학교에 갔어요.

       그런데 아직도 기억 나는데요. 91년 3월 4일 정도 됐을거예요. 입학식하고 처음으로 맞는 수업이죠. 첫 수업인데요. 저는 정치외교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첫 수업이 정치학 개론이였어요. 그런데 그 수업이 아침 10시였거든요. 아침 10시에 딱 갔는데 첫 수업은 오리엔테이션만 하잖아요. 교수님이 본인의 양복 단추를 어긋나게 끼우시면서 너희는 첫단추를 잘못 끼우면 이렇게 된다, 그러니까 첫단추를 잘 끼워라, 이런 말씀을 하시더니, 자, 이제 수업은 끝났다. 10시반인데 다음 시간표를 봤더니 3시예요. 10시반부터 3시까지 도대체 어디를 가라는 건지 선생님이 말을 해줘야 되잖아요.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줘요. 다들 너무나 어색하고 뻘쭘한 사이인 과동기들끼리 서로 어색한 얼굴을 마주보며 우리 어떡하지, 이제 어디로 가야되지, 시간이 5시간이 뜨네, 이러면서 결국 어떻게 보냈냐면은요.
    너무 어색해하는 동기들와 어색하게 학교 식판밥을 먹었어요. 서로 장식적인 미소를 띄우며 너는 뭐 어느 학교 나왔어, 너는 재수했어....요? 이렇게 하면서 아, 예.... 언니, 이렇게 하면서 보내니까 12시정도 됐는데요. 보니까 또 3시간이 뜨잖아요.

       그래서 마치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는 양 학교 앞을 쭉 나와봤어요. 학교 앞을 쭉 나오니까 정말 갈 데 없죠. 그 때 저의 눈길을 유혹하는 간판이 하나 있었는데 지하였구요. 명랑오락실이라는 간판이였어요. 이름도 너무 명랑하잖아요. 명랑오락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그래서 3시간동안 오락하면서 그 때 풍미했던 오락이 헥사와 테트리스였거든요. 헥사와 테트리스와 원더보이를 하면서 100원짜리 동전을 수북하게 쌓아놓고 그 3시간을 아주 알차게 보냈었던 그런 기억이 나는데요. 그 때 느꼈었던 것이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보다도 이 말하지 못하는 기계가 나를 훨씬 위로해주고 위무해주는구나. 나는 기계 앞에서 훨씬 행복해질 수 있는 인간도 아닌 인간이였구나.그리고 결국은 나를 위로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 나는 정녕 혼자 가야하는구나. (웃음) 그런 생각 들었구요.그리고 어쩌면 대학 가면 모든게 해결된다고 말했던 모든 어른들에게 굉장히 호되게 뒤통수를 맞았던 기분이 들었죠. 왜 그런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단 말인가.그게 첫날이였는데요. 91년부터 95년까지 제 대학생활이 그 첫날로 상징될만큼 강의실에서 보낸 것보다 돈암동 바닥과 그 명랑오락실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답니다.


    저는 주로 기계 앞에서 웅크리고 대학생활을 했던 거 같애요.

       저는 주로 기계 앞에서 웅크리고 대학생활을 했던 거 같애요. 명랑오락실 원더보이 앞에서 나중에 너무 잘하게 되서요. 정말로 대학교 4학년쯤 되니까 제가 원더보이를 100원을 딱 넣고 해요, 그러면 정말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20분 정도 지나면 다 제 뒤에 나서 구경을 했어요. 이게 저런 판이 있었나요? 도끼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날아다니기도 하나요? 할 정도로. 나중에는 오락실 주인 아줌마, 아저씨랑 너무 친해졌구요.

       그리고 PC통신 제가 첫 세대거든요. 하이텔과 나우누리. 그때는 집에 컴퓨터가 한대였는데요. 제 동생이 거의 독점을 하고 안 놔줬기 때문에, 동생 역시 게임을 하느라. 저희 집안이 좀 그렇거든요. (웃음) 그래서 어쩔수없이 전화국에 가면 통신만 되는 통신단말기라는 것이 있어요. 웃으시는 분들은 저와 같이 참 (웃음) 힘든 시기를 보낸 분들인데요.지금 보면 아직도 그게 집에 있어요.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아직도 장롱 위에 있어요. 차마 못 버리겠더라구요. 보면 정말 앙증맞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조그맣구요.오직 아무 것도 안되고 PC통신에 접속만 할 수 있어요. 그런 기곈데요. 다 아시는군요. 그런 기계에 혼자 웅크리고서 어머니가 들어오시면 레포트 써요, 이렇게 말할 만발의 준비를 하고 채팅방에 들어가서 채팅을 하구요. 그 다음에 동호회에 글 올리고 동호회 모임은 나간 모임도 있었지만 대부분 나가지 않았어요. 나가지 않고 대학로 KFC 모임이다 그러면 앞까지만 한번 가봤어요. 앞까지만 한번 가서 서로 뻘쭘하고 어색하게 인사 하는 걸 보면서 인사 할까말까 내가 누구라고, 아이디가 마이셀프였거든요. 내가 마이셀프라고 말을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또 그런 숫기가 없거든요. 조용히 돌아오곤 하는 그런 힘든 세월을 보냈답니다. (웃음)


    사소하고 자잘한 방황들을 하다보니 1995년이 닥치더라구요.

       그렇게 보내고 나니까 정말 4년이 뚝딱 갔어요. 한거 방황밖에 없는데요. 정말 제대로 된 방황, 뭐 어디가서 마약이라도 했거나 뭐 그런거나 했으면 소설을 쓸 거나 있지 그런 방황도 아닌 소설로 쓸 수 없는 사소하고 자잘한 방황들을 하다보니 1995년이 닥치더라구요. 그런데 그때는 거품시대였기때문에 다들 취직도 굉장히 잘됐어요. 어찌나 주위 사람들이 취직도 잘하는지. 그런데 취직이 안되더라구요. 참 이력서도 열심히 쓰고 서울에서 증명사진 가장 잘 찍는다는 사진관 찾아가서 증명사진 찍기도 했는데요. 정말정말 취직이 안됐어요. 안되고 오라는 데도 없고, 정말 갈 데도 없고 그래서 삼풍백화점과 서초도서관을 내 집처럼 왔다갔다 했던 그런 시간 95년 상반기예요. 실은 이거는 비밀인데요. 녹화되서 그러니까 말을 안 해야 되나

    (작가님이 소설로 쓸 '영업비밀'이라는 걸 강조하셔서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갈께요.
    다음에 작품으로 쓰신다고 하셨으니깐 소설로 만나보면 될 거 같애요. ^^)


    왜 아무도 그 추억들,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까.

    . . . 그럴 때 거짓말처럼 무너져버린 것이 삼풍백화점이였어요. 삼풍백화점은 저한테 너무너무 일상의 공간이였거든요. 집이 근처였기 때문에 삼풍백화점은 저희 어머니가 저녁 준비하시다가 두부 떨어졌다 사와라, 이러면 삼풍백화점 슈퍼에서 샀구요. 어버이날인데 그냥 술 먹고 집에 들어가다가 어버이날이였네, 하면서 카네이션 한 송이 사서 들어갔구요. 친구들 만나서 지하 스넥코너 떡볶이 집이 맛있잖아요. 떡볶이랑 아이스크림도 정말 많이 먹었고. 그냥 그런 제가 늘 많이 다니는 학교나 교회나 교회 다니진 않지만, 극장이나 뭐 그런 저의 너무나 일상의 공간이였어요. 그런데 그 공간이 무너지고 무너진건 둘째치고 무너지고 나서 텔레비전에 매일 그 분홍색 건물이 나오는데 그 분홍색 건물은 제가 알던 저의 일상의 공간이 아닌 너무나 엉뚱하게 둔갑되서 명명이 되고 있더라구요. 사치와 향락의 강남의 백화점이라든가 한국 건축 부실 산업의 모든 걸 보여주는 사건이라든가. 그런데 저는 그 개인적인 공간과 갑자기 사회적인 어떤 것으로 탈바꿈한 그 삼풍백화점 사이에서 한동안 너무 낯설고 너무 곤혹스럽고 참 힘들었어요. 그리고 어쩌면 처음으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일수도 있구나. 사람들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백화점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무너진 곳에서의 추억이 있는데 왜 아무도 그 추억들,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까. 내가 언젠가 그것이 어떤 형식이 되든 소설이든 영화든 무엇이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된다면 꼭 삼풍백화점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하리라, 그런 다짐을 저도 모르게 10년동안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던 거 같애요. 그리고 그런 결과가 3일동안 생생우동을 먹으면서 전무후무한 일이예요. (웃음) 제 소설 역사상. 그 다음부터는 왜 이렇게 안 써질까. 한 줄 쓰고 30분 놀고, 두 줄 쓰고 1시간 놀고 이러면서 쓰는데요. '삼풍백화점'의 작업 경험은 저에게 정말 많은 얘기를 해주는 그런 기억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 상상해보는 일이 재미있어요.

       그리고 표제작인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소설도 있죠.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소설은 원래는 문예지에 '1979년생'이라는 원제로 발표가 됐었던 작품이예요. 전직 대통령 나오는 이야기죠. 사람들 만나면 몇년생인지가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저보다 나이가 많나 적나 서열을 따지려고 하는 것도 약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구요. 그 사람이 몇년생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어떤 궤적을 따라서 성장해왔을까 하는 과정이 보이잖아요. 그 사람이 초등학교를 나왔는지 국민학교를 나왔는지. 그리고 수능을 봤는지 아니면 학력고사를 봤는지. 아니면 선지원후시험인지 선시험후지원인지, 그거 엄청나게 다르거든요. (웃음) 그 사람이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 상상해보는 일이 재미있어요. 그래서 몇년생인지가 참 궁금한 거 같은데요.

       얼마전에 모 대학에 갔더니 대학교 1학년 분들이 88년생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저 너무 놀랬어요. 88년생. 저는 88학번이랑 미팅은 많이 해봤는데. (웃음)88학번이 저랑 세살차이니까. 88학번들이 자기들 꿈나무 88이라면서. 91학번이세요? 72년에도 사람이 태어났나요? 이런 거를 당하다가 88년생이라고 하니깐 화들짝 놀랐어요. 왜냐면 88년에는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였거든요. 그래서 체조경기장 가서 동원돼서 응원했던 생각도 나구요. 제가 용산에 남산에 있는 학교를 나왔는데 몰래 숙대 앞에 나름 번화가였거든요. 동시상영 극장에 가서 몰래 영화 봤던 생각도 나구요. 이름도 생각나네. 파라솔이라는 카페에서 몰래, 저 미팅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웃음) 다른 학교 축제 다니고 이랬던 기억도 나구요. 저 중학교 때 너무 짝사랑했던 선생님이 전교조때문에 해직당하셨다는 얘기 듣고 울면서 찾아가고 했던 기억도 나구요.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애요.

       이렇게 한 사람안에 어떤 연도, 시간의 기억이 굉장히 개인적인 경험과 사회적인 경험 이것이 꼭 개인적이다, 사회적이다 나눌 수 없는 그런 혼재된 경험들이 한 사람 안에는 꼭 들어있는 거 같애요. 제 안에도 72년의 기억은 물론 없죠. (웃음) 76년의 기억이 첫 기억인데요. 76년의 기억. 79년의 기억. 88년의 기억. 91년, 95년의 기억. 또 어제의 기억까지 한 사람 안에도 여러가지 기억들이 막 섞여있잖아요. 그래서 그 주인공을 1979년생으로 명명을 하고, 1979년생이 지금 29살인가요? 스물 여덟, 스물 아홉, 이 세대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 같애요. 어떤 분들은 그 소설 읽으시고 이게 무슨 정치적 알레고리냐 너의 정치적 입장이 박정희를 옹호하는거냐,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 사람이 박정희가 맞느냐 그러시는데요. 사실은 저는 그 소설 쓰면서 그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 없었구요. 그것이 그런 식으로 읽힌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구요.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애요.

       스물 여덟,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 예전에는 참 어른인 줄 알았어요. 스물 여덟, 스물 아홉이. 그런데 지금 이 나이 생각하면 참 애죠. 죄송합니다. (웃음) 애인거 같애요. 지금 스물 여덟, 스물 아홉으로 돌아가면 정말 좋을 거 같은데요. (웃음)언제나 참 괴리가 있는 거 같애요. 어렸을 때 생각하는 나이와 막상 그 나이를 통과해보고 나면 나이가 참. 스물 여덟, 아홉 저도 지나왔지만 그 나이, 예전에는 다들 어른이라고 생각했었을까요? 저희 어머니 세대에서는?모르겠는데 제가 그 나이 통과하고 있을 때 저는 제가 어른이라고 생각 못했어요. 남들이 나를 어른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내가 어른답지 않을까. 나는 왜 아무것도 책임지기 싫고 책임지는 게 두렵고 앞날이 두렵기만 할까. 나는 나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세상이 여태까지 가라는 데로만 가서 여기에 도착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할까, 그런 게 옳은 일일까. 그런 혼란에 막 부딪쳤었던 그런 날과 스물 여덟, 스물 아홉이었고 지금 79년생 나이를 통과하고 계시는 그런 분들도 혹시 그렇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소설에도 나오는데, 마지막 문장에 있는데요. 주인공 생일이 1979년 7월 7일생이예요. 1979년 7월 7일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고 그런 얘기를 해요.


    어쩌면 세상에는 더 거대하고 더 큰 거짓말로 둘러싸여 있을지 모른다는 거.
     

       우리는 사실은 본인의 근원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늘 내가 거짓말을 하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늘 내가 드러내고 싶은 것만 드러내고, 감추고 싶은 것은 감추고,
    작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세상에는 더 거대하고 더 큰 거짓말로 둘러싸여 있을지 모른다는 거. 그리고 세상이 그렇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과 인식하지 못하는 것 차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진짜 비밀의 공포는 진짜 비밀과 마주하는 것은 참으로 두렵고 공포스러운 일이지만 언젠가는 진짜 비밀의 공포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게 스물 아홉이든 서른 아홉이든. 그 때는 정말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이야기들을 '1979년생'이라는 소설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말씀드리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질문은 시간이 없어서 딱 한 분만 받았어요.)

    질문 : 안녕하세요. 80년생 누구입니다. 일단 만나뵙게 되서 반갑구요 소설 잘 읽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궁금한 건 두 가진데요. 하나는 소설을 읽다보면 삼십대 초반의 여성이라든지 삼십대 중반의 남자 같은 그런 사람들의 일상이라든지 감정선 같은 것이 상당히 디테일 하다고 느꼈거든요. 공감도 많이 가구요. 그런 경험해보지 않은 많은 디테일들을 어떻게 얻어내시는지 궁금하구요. 두번째는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많은 분들을 위해 조언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정이현 : 80년생 반갑습니다. (웃음) 30대 초반 일상을 제가 왜 경험하지 않았겠어요. 30대 초반을 지나서 중반이라고 팍팍 우기는 나이까지 왔는데요. 저 정말 일상사는 생활인이라니까요. 정말 저 평범하게 살아요. 요새 사람들이 뭐하세요, 라고 많이 물어보면 드릴 말씀이 없을만큼 백수로 편안하게 살고 있거든요. 그냥 그런 감정선 같은 것들은 제가 그렇게 느끼는 제 주변 사람들, 제 주변에는 굉장히 평범한 친구들이 많아요. 직업 얘기하면 자영업과 회사원, 주부로 요약이 되는데요. 어찌나 요새는 자영업들을 많이 하시고 사장님들이신지. 쇼핑몰 사장님들 어찌나 돈들 잘 버시는지 부러운데요. 그런 친구들하고 수다 많이 떨구요. 서로 상담도 많이 해주고 그냥 정말 일상적으로 그런 시간들 많이 가져요. 그런 것들이 소설에 도움이 되나는 잘 모르겠구요. 그리고 사실은 사람들 관찰을 좀 많이 하는 거 같기는 해요. 커피숍 같은 데서도 저의 일행들 대화보다는 저희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를 더 주의깊게 듣고 있구요. 가끔은 옆자리 분들이 그 영화 뭐지? 그러면 제가 너무 얘기해주고 싶어가지고. (웃음) 그게 뭐거든요. 8월의 크리스마스거든요. 이렇게 막 참견한 적도 있고 그래요. 주위 관찰하고 상상하는 습관들 같은 데 좀 있긴 해요. 어떤 사람 행인이 있으면 저 사람은 어떤 데서 와서 뭐하는 사람일까, 상상을 하고 가끔 상상하다 오버를 하기도 하죠. 그런 버릇이 있는 거 같구요.

      
    그 다음에 소설 쓰실 분들 위해서 제가 감히 뭐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습작하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은 딱 한가진데요. 그냥 정말 열심히 쓰시라는 거 (웃음) 이거 너무 당연한 말인데 열심히 쓰시라는 거 말고는 정말 드릴 말씀이 없구요. 열심히라는 말 안에는 참 많은 것들이 들어가 있는 거 같애요. 무작정 벽만 보고 열심히 쓰라는 말은 아닐 수도 있구요. 본인한테 가장 어울리는 것이 뭔지 스스로는 잘 알거든요. 가끔 습작하시는 분들 보면 유행처럼 어떤 것들을 따라하곤 하세요. 제가 한창 공부했을 때는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그럴 때였는데요. 그럴 때는 하성란 선배님이나 묘사 많이 하는, 친구들의 소설을 보면 다들 마이크로 묘사로 소설이 이루어져 있었어요. 바람이 분다가 아니라 커튼과 방 안의 풍경을 묘사하느라고 몇 페이지를 확확 넘어가고 그랬는데요. 어쩌면 그것이 꼭 자신만의 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그런 생각 한번 해보시고 정말 자신의 스타일이 뭔지를 한번 스스로 자기에게 가장 맞는 스타일이 뭔지 그러나 스타일은 곧 주제가 나온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스타일이 뭔지를 고민한다는 것은 내가 과연 이 세상에 무슨 말을 던지고 싶은가, 나는 왜 소설을 쓰고 싶은가하는 근본적인 고민에 맞출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나는 무슨 이야기를 세상에 걸고 싶고 그런 이야기는 무슨 형식에 가장 어울린다는 고민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본인만의 무엇인가가 완성되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아직 할 얘기 굉장히 많구요. 저는 질문 많이 하시면 대답해 드릴려고 말 많이 아꼈었는데. 아쉽습니다. (웃음) 나중에 또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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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인에는 '오늘보다 즐거운 내일을'이라고 써 주셨어요.
    작가님도 오늘보다 즐거운 내일이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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