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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행복'을 보고 투덜거리다
    극장에가다 2007. 9. 21. 01:46

    허진호 감독님께.

       감독님. 오늘 <행복> 시사회를 보고 나왔는데 맥주 생각이 간절했어요. 영화를 보면 술, 담배하면 몸 다 망친다는 교훈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술이 땡기던지요. 같이 간 친구랑 좋아하는 술집에 가서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냥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맥주 두 병을 샀습니다. 그리고 영화 생각을 하면서 한 병 마셨어요. 친구도 집에 들어가서 한 잔 한다고 했으니 어쩌면 장소만 다르지 우리는 함께 술 한잔 하는건지도 모르겠어요.

       감독님 영화를 처음 본 건 진주의 극장이었어요. 친구가 소개해준 남자아이와 함께 봤는데, 영화가 그 아이만큼이나 심드렁했어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 사실 그때 졸았는지도 모르겠어요. 지루하다는 느낌만 남아있거든요.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다시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완전 딴판인거예요. 너무나 좋았어요. 이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로 꼽는 사람이 지인 중에 있는데요. 매번 이 영화를 말할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어요.

       그리고 두번째 영화는 서울의 스타식스였어요. 아직도 생생해요. 감독님 작품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유지태가 나오는 영화여서 첫날 첫회로 봤어요. 개봉날이 추석즈음이었고 집에 내려가려고 버스를 예매해놓은 날이었는데도 꼭 첫날 첫회의 부지런한 관객이 되고 싶어서 그날 영화보고 엄청 뛰어서 터미널로 갔어요. 그때 같이 본 사람은, 흠... 갑자기 마음이 아파오네요. 패스.

        그리고 세번째 영화. <행복>을 같이 본 친구와 봤었는데요. 그 친구가 저만큼이나 감독님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거든요. 무지 기대를 하고 봤었는데 친구는 이 영화가 별로였다고 했어요. 저는 뭐 첫번째, 두번째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좋았어요. 욘사마가 너무 부담스럽긴 했지만 저는 이 영화의 설정 자체가 매력적이였거든요. 그리고 제게는 손예진의 재발견이었어요.

       흠. 첫번째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요. 그 장면이 참 좋았어요. 한석규와 심은하가 놀이동산에 놀러가잖아요. 심은하가 놀이기구때문에 멀미하는 한석규를 위해 파워에이드랑 아이스크림이랑 둘 다 양손 가득 사 가지고 와서 캔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잖아요. 그 장면. 미소와 눈물이 함께 떠오르는 장면이었어요. 짝짝짝. 그 장면은 술 한 잔하고 보면 정말 눈물이 나요.

       그리고 두번째 <봄날은 간다>. 이 영화의 명장면은 너무 많은데, 저는 그 장면이 그렇게 좋았어요. 유지태가 술 마시다가 이영애 보러 친구 택시 타고 강릉까지 갔던 장면. 새파란 새벽에 술에 얼큰하게 취한 유지태와 기다리고 서 있던 이영애가 껴안던 장면. 나란히 서 있던 가로등까지도 연기를 해대던. 꺄. 정말 좋았어요.

       세번째 <외출>은요. 두 사람이 회 먹던 장면. 손예진이 그런 대사 하잖아요. 우리 확 사귈까요? 두 사람 기절하게... 그 장면에서 손예진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깨물어주고 싶었어요. 정말 술이 얼큰하게 오른 거 같았어요. 이번에 인터뷰에서 보니까 허진호 감독님이 회를 엄청 좋아하신다면서요? 저도 좋아하는데. 언제 한번 회 한 접시 하고파요. 소주랑 함께. 흐흐


       그런데요. 감독님. 이번 영화 <행복>에서는요. 모르겠어요. 저는 영화가 종반부에 치달을수록 절망했어요. 전작들에서 느껴지던 주인공을 향한 감정이입이 전혀 되질 않았거든요. 특히 황정민, 영수 캐릭터요. 제가 처음 <봄날은 간다>를 봤을 때 이영애 캐릭터를 얼마나 욕했는지 몰라요. 천하에 나쁜 엑스라고 해가면서. 그런데 두번째로 영화를 보니까 이해가 되더라구요. 그 때는 유지태 캐릭터가 너무 어리게 느껴졌거든요. 아무튼. 영수는 정말 아니예요, 감독님. 도저히 공감이 가질 않아요. 영수는 정말 나쁜놈일 뿐이예요. 비겁하고 나약하고. 영수가 이제는 너 없으면 못 살겠다고 말할 때도 그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냥 말만 그렇게 하는 거 같아요. 사랑할 땐 마음과 말이 함께여야 하는 거잖아요. 비록 그게 금방 무너지더라두요. 그런데 영수는 다 거짓말 같아요. 새빨간.

       영수는 너무 나약하고 약았고 은희는 너무 강하고 순수해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두 사람의 만남이예요. 너무나 극적인 캐릭터에 감독님 영화들 중에서 가장 극적인 스토리, 저는 조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그냥 영화였으면 모르겠는데, 이건 감독님 영화니까요.

       아무튼. 이번 영화 만드시느라 수고하셨어요. <행복>은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감독님의 느낌이 구석구석 묻어나는 영화였어요. 저는 계속 감독님 영화라면 기대할 거랍니다. 누가 말해듯이 저는 감독님의 빠순이거든요. 흐흐. 저도 좋은 감성으로 읽었던 김훈의 '화장'을 다음 작품으로 만드신다는 기사를 봤어요. 정말 기대돼요. 감독님 영화 중에서 중년의 남성이 주인공이 되는 첫 영화가 되겠어요. 캐스팅도, 그 짧은 단편이 두 시간 남짓 스크린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정말 기대되요. 부탁이 있는데요. 감독님, 영화 좀 많이많이 빨리빨리 만들어주세요. 네? 감독님 장편이 이제 겨우 네 편이라니요. :)

       그럼 감독님. 저는 이제 마지막 한 병을 마시고 잘께요. 감독님도 굿나잇하세요. (행복 속 신신애처럼) 하이파이브! 그나저나. 임수정씨 영화 속에서 너무 예쁘게 나오시는 거 아니예요? 정말 여자인 제가 쏙 반해버렸다구요. 너무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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