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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다방

비오는 오후, 끄적끄적

by GoldSoul 2007. 9. 14.

BGM으로 1974 Way Home 깔아주시고.

01.
머리를 했다.
백만년 전에 머리 잘라서 요즘 머리가 지긋지긋했었는데
짧게 자르고, 볶았다.
최대한 저렴하게 하려고 뽀글이 파마를 해서
잘 나올거라고 생각 안 했는데 그래도 제법 잘 나온듯하다.
왜 미용실에는 정가가 붙여져 있지 않는걸까?
기장 추가없이 몇만원, 이라고 커다랗게 붙여놔도
들어가서 머리하기 시작하면 가격이 달라진다.
약은 뭘로 하시겠어요?
몇만원, 몇만원, 몇만원 있는데. (꼭 제일 싼 가격은 제일 끝에 작게 얘기한다.)
머리결 안 상할려면 몇만원정도는 해줘야 되요. 안 그러면 머리 다 상해, 라고 한다.
나랑 머리하는 사람들은 다들 소심해서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도
미용실 안에서는 절대 티를 안 된다.
잘 나왔죠, 물어보면 배시시 웃으면서 네, 그런다.
미용실 바로 나오면 죽을상을 하고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풀어댄다.
그리고 기분 안 좋으니깐 맛있는 거나 먹자, 그러고.
오늘은 나는 맛있는 거 안 먹어도 배 불렀고,
동생은 눈에 불을 켜고 맛있는 집 찾아댕겼다.
결국 맛도 없었고, 밥 먹고 나오니까 비가 오기 시작했다.


02.
헌혈을 했다.
딱 한번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너무 남아서 강변역에서 한 적이 있는데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어서 헌혈하면 우산 준다고 해서 들어갔다.
동생은 빈혈끼가 있어서 헌혈이 안 된다 했고
너무나 건강한 나는 헌혈을 백만번 해도 됩니다, 라고 했다.
신청서에 전에 헌혈을 한 날짜를 기입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강변역에서의 그 날이 몇년도였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작년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2004년도란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거 아닌가, 라고
내 몸에서 호수를 타고 나오는 검무죽죽한 피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도저히 시간의 속도를 따라가질 못하겠다.
언제부턴가 그 녀석은 뛰기 시작했고, 나는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으니까.
 

03.
비가 온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앞 자리에 앉은 젊은 커플이 입을 쪽쪽 맞추고 난리다.
뒤에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다!
이런 꼴 나는 못 보겠단 말이다!
혼자서 광분하고 있는데, 그 커플의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창 밖만 보고 있다.
다들 비 내리는 모양만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누구는 저렇게 열정적인데, 누구는 이렇게 고요하다.
저렇게 열정적일 때가 언제였던가.
가끔 나는 시간을 혼자 멀리 보내놓고, 내 걸어온 길을 가만히 돌아본다.
어떤 날은 이 길을 다시 달려가 되돌아 가고싶을만큼 그립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그냥 이쯤에서 이 길을 추억하는 게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다.


04.
정말 좋다.
몬도 그로소의 1974 Way Home.
1974년 그 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면서 피곤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는 바로 그 순간,
현관에서 맡을 수 있는 우리집만의 느낌, 촉감, 냄새.
그런 것들을 떠올린다.
얼마나 편안한지, 얼마나 따스한지, 얼마나 포근한지.
비 오는 날 들으니까 정말 죽이는구나.
노곤해지면서 잠이 들 것만 같은 이 기분.
이렇게 잠들면 정말 달콤한 꿈을 꿀 것만 같은 느낌.


05.
위시리스트
그랜드민트 페스티벌, 이아립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