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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오는 오후, 끄적끄적
    모퉁이다방 2007. 9. 14. 17:53

    BGM으로 1974 Way Home 깔아주시고.

    01.
    머리를 했다.
    백만년 전에 머리 잘라서 요즘 머리가 지긋지긋했었는데
    짧게 자르고, 볶았다.
    최대한 저렴하게 하려고 뽀글이 파마를 해서
    잘 나올거라고 생각 안 했는데 그래도 제법 잘 나온듯하다.
    왜 미용실에는 정가가 붙여져 있지 않는걸까?
    기장 추가없이 몇만원, 이라고 커다랗게 붙여놔도
    들어가서 머리하기 시작하면 가격이 달라진다.
    약은 뭘로 하시겠어요?
    몇만원, 몇만원, 몇만원 있는데. (꼭 제일 싼 가격은 제일 끝에 작게 얘기한다.)
    머리결 안 상할려면 몇만원정도는 해줘야 되요. 안 그러면 머리 다 상해, 라고 한다.
    나랑 머리하는 사람들은 다들 소심해서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도
    미용실 안에서는 절대 티를 안 된다.
    잘 나왔죠, 물어보면 배시시 웃으면서 네, 그런다.
    미용실 바로 나오면 죽을상을 하고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풀어댄다.
    그리고 기분 안 좋으니깐 맛있는 거나 먹자, 그러고.
    오늘은 나는 맛있는 거 안 먹어도 배 불렀고,
    동생은 눈에 불을 켜고 맛있는 집 찾아댕겼다.
    결국 맛도 없었고, 밥 먹고 나오니까 비가 오기 시작했다.


    02.
    헌혈을 했다.
    딱 한번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너무 남아서 강변역에서 한 적이 있는데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어서 헌혈하면 우산 준다고 해서 들어갔다.
    동생은 빈혈끼가 있어서 헌혈이 안 된다 했고
    너무나 건강한 나는 헌혈을 백만번 해도 됩니다, 라고 했다.
    신청서에 전에 헌혈을 한 날짜를 기입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강변역에서의 그 날이 몇년도였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작년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2004년도란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거 아닌가, 라고
    내 몸에서 호수를 타고 나오는 검무죽죽한 피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도저히 시간의 속도를 따라가질 못하겠다.
    언제부턴가 그 녀석은 뛰기 시작했고, 나는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으니까.
     

    03.
    비가 온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앞 자리에 앉은 젊은 커플이 입을 쪽쪽 맞추고 난리다.
    뒤에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다!
    이런 꼴 나는 못 보겠단 말이다!
    혼자서 광분하고 있는데, 그 커플의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창 밖만 보고 있다.
    다들 비 내리는 모양만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누구는 저렇게 열정적인데, 누구는 이렇게 고요하다.
    저렇게 열정적일 때가 언제였던가.
    가끔 나는 시간을 혼자 멀리 보내놓고, 내 걸어온 길을 가만히 돌아본다.
    어떤 날은 이 길을 다시 달려가 되돌아 가고싶을만큼 그립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그냥 이쯤에서 이 길을 추억하는 게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다.


    04.
    정말 좋다.
    몬도 그로소의 1974 Way Home.
    1974년 그 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면서 피곤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는 바로 그 순간,
    현관에서 맡을 수 있는 우리집만의 느낌, 촉감, 냄새.
    그런 것들을 떠올린다.
    얼마나 편안한지, 얼마나 따스한지, 얼마나 포근한지.
    비 오는 날 들으니까 정말 죽이는구나.
    노곤해지면서 잠이 들 것만 같은 이 기분.
    이렇게 잠들면 정말 달콤한 꿈을 꿀 것만 같은 느낌.


    05.
    위시리스트
    그랜드민트 페스티벌, 이아립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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