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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아휴직
    모퉁이다방 2022. 8. 9. 13:52

     

      세탁기에 섬유유연제를 반 컵 넣고 헹굼 버튼을 한 번 누르고 세탁기를 다시 돌린다. 이제 평일 낮에 세탁기 돌리는 일은 힘들어 지겠지 생각하니 세탁기를 돌리는 일도 애틋해진다. 어제 육아휴직이 끝났다. 오늘부터 연차를 8일 소진하고 22일 월요일에 출근을 한다. 16일부터는 지안이 하원 도우미 선생님이 오셔서 함께 적응해 나갈 거다. 그리고 이번주 목요일에 운전면허증을 찾으러 간다. '엄마의 도전'은 성공했지만 (야호!) 아, 모든 과정이 힘들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식음을 전폐하고 우울해지기까지 하는 지경까지 갔더랬다. (남편이 이럴 거면 그냥 따지 말라는 소리까지 했다) 어찌되었든 '간신히 합격'해서 목요일에 또다른 신분증이 생긴다. 이제 학원차의 갑옷을 벗고 진짜 운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또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일단은 이 기쁨을 만끽하기로! 팀장님께 휴가계를 어떻게 제출해야 할지 물으면서 면허 합격 소식을 전했는데 잘 할 줄 알았다고 자신이 아는 나는 뭐든 잘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주셔서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난 1년 3개월 동안 있었던 일이 아득한 꿈 같다. 만삭의 피 비침, 조금 이른 출산 휴가, 나중에 그리워질지 모르고 종일 누워 있어야 해서 힘들었던 시간들, 수술날의 풍경, 수술실에서의 일들, 신생아실에 갈 때마다 매일 잠만 자서 순한 줄 알았던 탕이, 처음 모유수유를 하려고 했을 때의 당혹감, 실은 매일 잠만 자는 게 아니였던, 엄청나게 큰소리로 울어대던 당황했던 조리원 가는 길, 천국인지 모르고 초반에 우울해하면서 지냈던 조리원에서의 날들, 밤낮 없었던 신생아 시절, 매일 거의 안고 있어야 했던 등센서의 날들, 집안의 아무 물건도 건드리지 않고 뒤집고 기기만 했던 지금 생각해보니 평온했던 시간, 이가 생기며 모유수유 중 가슴을 깨물기 시작해 겁이 나던 날들, 마트 앞에서 불현듯 모유수유 중단을 결심했던 날, 너무너무 맛있었던 첫 맥주, 집에서만 시간 보내기 답답해 매일 노을을 보러 유모차를 끌고 나갔던 날들,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하며 걱정했던 일들, 셋이 함께 보낸 첫 크리스마스, 첫 새해, 첫 외식, 첫 여행... 

     

      오늘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지하주차장을 통해 등원을 했다. 어린이집이 같은 동이라 비가 오는 날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등원할 수 있다. 오늘도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담임 선생님이 아니신데도 격하게 맞이해주신다. 언젠가부터 지안이도 선생님이 반가워 잼잼을 하는데 그러면 선생님이 "나도 니가 너무 좋아" 해주신다. 큰 아이 반 선생님이신데 오늘은 지안이에게 언제 커서 우리 반에 올래? 빨리 오면 좋겠다 하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라는 표현도 자주 해주신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감사하다. 뉴스에는 어린이집의 안 좋은 이야기들 뿐이지만 5개월동안 다녀보니 좋은 선생님들이 많다. 예뻐서 주셔서 감사해요 인사하니 아니라고 정말 지안이가 좋은 거라고 지금이 합법적으로 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하며 지안이를 꼭 안아주신다. 곧 담임선생님 품에 보내야 한다며.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극한 경험들을 한 동생은 오늘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모든 실패가 다 경험으로 남는 거 같다고. 계속 도전하고 시도하지 않으면 그냥 평온한 상태 그 자리에만 있게 되는 것 같다고.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거였다고. 지안이도 남편도 나도 이제 새로운 시간을 보내게 될텐데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다짐해본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서로의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좋은 날들이 엄청나게 많을 거라고. 아자아자 화이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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