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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발진
    서재를쌓다 2022. 6. 23. 12:02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다. 금요일부터 가지 못했으니 금, 월, 화, 수. 주말 이틀을 제외하면 4일을 단 둘이서 낮시간을 보냈다. 금요일은 다음 날이 주말이니 괜찮다 했고, 월요일에는 아이가 열이 다시 오를까 전전긍긍했다. 두 번째 낮잠은 내가 쓰러질 것 같아 부러 재웠다. 화요일은 내일은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힘이 났고, 수요일에는 아침잠을 너무 오래 자서 아무래도 오늘도 안되겠구나 했다. 힘이 많이 들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름 괜찮았다. 아이 컨디션이 괜찮아 많이 보채지 않았다. 주말에는 셋 다 힘들었다. 아이 열이 39도를 넘었고 밤에 자주 깨서 울었다. 생전 처음 이렇게 몸이 아픈거니 많이 놀랬을 거다. 열이 계속 오르니 힘도 없고 입맛도 없고. 그래도 잘 지나갔다. 금요일에 아니 지금 코로나? 하며 병원에 갔는데 신속항원검사 하기도 전에 의사선생님이 돌발진 같아요 하셨다. 열이 나고 잘 먹던 애가 갑자기 밥을 안 먹는다고 하니. 열이 39도까지 올라가도 탈수만 되지 않으면 괜찮다며 콧물약과 해열제를 처방해주셨다. 주말 지나니 아이 컨디션이 괜찮아지며 얼굴과 몸에 열꽃이 피었다. 1년 전에 아이에게 두차례 돌발진이 왔던 남편 지인 부부가 열꽃이 피면 끝난 거라고 며칠 지나면 싹 없어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갑자기 기침을 해서 병원을 한 번 더 갔는데 의사선생님도 열꽃이 피었어요? 그럼 이제 괜찮은 거예요, 하셨다.

     

       신기하게 아이는 앓는 동안 쑤욱 컸다. 오늘 어린이집 등원할 때 선생님도 그러셨다. 지안이가 왜 이렇게 컸지? 하시면서. 매일 부수고 던지는 놀이만 했는데 구멍 사이로 모형을 모양에 맞춰 넣어보려고 한다. 걸음마 보조기도 앞부분에 버튼만 눌러대며 놀았는데 이제 손잡이를 잡고 일어나 밀며 걷기 시작한다. 뽀로로와 친구들을 던지기만 해서 먼 곳에 치워뒀던, 자석판 위에서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장난감도 이제 뽀로로를 친구들을 세워 보려고 한다. 저녁밥 달라고 난리치던 표정도 달라졌고. 소파 위에 앉혀 놓으면 싱긋싱긋 웃는다. 조심조심 내려가야지 잡아주면 조심조심 내려간다. 나가고 싶을 때는 양말을 내민다. 자기가 양말을 신고 엄마가 마스크를 쓰고 찍찍이 소리를 내며 힙시트를 허리에 매면 나가는 줄 안다. 등원할 때 선생님 품에 안긴 아이에게 두 손을 있는 힘껏 아주아주 크게 힘들며 지안아, 재미나게 놀아. 재미나게 놀고 있어, 반복하니 선생님이 소리내어 웃으신다. 네, 선생님. 힘들었어요. 또르르; 지안이도 속으로 앗싸 어린이집이다! 집이랑 다른 장난감! 하며 환호성을 지르는지 품에 안겨 웃고 있다. 안심하고 어린이집 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밭에 가서 수염이 나오기 시작하는 키카 큰 옥수수, 줄기 여기저기서 새잎이 돋기 시작하는 레몬나무, 제법 줄기가 올라온 모닝글로리, 궁채를 보고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단디 단 흑임자 라떼를 주문했다. 음료가 만들어지는 동안 손님이 아무도 없는 카페에 앉아 바깥의 풍경을 가만히 보았다. 조용하고 고요했다. 집에 가서 반신욕 해야지. 향이 좋은 오일 풀고 오래 앉아 있어야지 생각했다. 

     

       그동안 오지은의 새 책을 읽었다. 이런 문장을 지나며 아이가 훌쩍 큰 것이다. 

     

     

       에세이는 삶을 직시하지 않으면 쓰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삶이든, 타인의 삶이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든, 괴로워도 바라봐야 한다. 도망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글로 만들려면 아주 오래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에세이는 용감한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에 따라 '생각이 가는 대로 써 내려간 글'을 뭐라고 부르든, 그것이 산문이든 수필이든 에세이든, 글에 담긴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에세이라는 장르의 팬으로서 그렇게 생각한다. 

    - 10쪽

     

    (...) 언제까지고 잘 지낼 순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기간을 최대한 늘리고 싶다. 이것이 현재 나의 가장 큰 목표이자 소원이다. 

    - 84쪽

     

       록 음악계에는 '27세 클럽'이라는 말이 있다.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커트 코베인,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만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실제로 음악을 하는 친구들끼리 만 27세, 한국 나이 29세가 되었을 때 "어 우리 이제 만 27세 넘는 거네. 천재는 아닌가 봐?" 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나는 웃었지만 그때도, 지금도 27세 클럽이라는 말은 잔인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스물일곱에 죽었지?" 하고 눈을 빛내면서 얘기하는 사람을 보면 더욱 그렇다. 천재의 요절은 간단히 미화되고 소비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27세를 넘겼든 아니든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한 행복하게. 

    - 91쪽

     

    (...) 여럿이 모이면 마음이 강해진다. 어쩌면 팀 스포츠여서 용기를 내기 조금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테니스는 개인 종목이기에 오사카 나오미는 코트 위에서 철저히 혼자였다. 그는 출전한 경기에서 전부 이겼다. 그래서 준비했던 일곱 개의, 각각 다른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마스크를 전부 쓸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21세기의 영웅의 모습은 이렇다. 흔들리고, 고민하고, 때때로 무너져도, 계속 달려가는 사람.

    - 142~143쪽

     

     

       창문을 다 열어놓고 장마 전 바람을 맞으며 정밀아 음악을 듣고 있다. 아이 방으로 만드려고 서재 방 책상을 빼 안방에 두었다. 그저 구석에 큰 스피커가 있는 긴 티비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안방에서 티비 볼 일은 없다) 의자를 가져와 앉으니 노트북 책상이 되었다. 이것대로 좋네. (늘 결심 뿐이지만, 정말로) 일기를 자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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