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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서재를쌓다 2021. 12. 2. 16:05

     

        어느 후기 때문에 샴푸를 샀다. 로즈마리 샴푸인데 머리를 감을 때마다 숲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는 거다. 재활용할 수 있는 투명한 용기에 연두빛 샴푸액이 담겨 있었다. 사실 향 만으로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대신 샴푸를 쓸 때마다 그 후기글이 떠오른다. 매일 아침 혹은 저녁 머리를 감으면서 숲에 가 있다는 분. 그 후기를 생각하며 머리를 감으면 나도 슬쩍 숲에 한 발 내딛는 것 같다.

     

       김남희 작가님의 새 산문을 읽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시대의 여행작가 글이다. 여행을 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걱정,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겪게 된 경제적인 어려움, 십 년 넘게 산 부암동 집을 떠나는 이야기, 새로 이사한 집에서 시작하는 에어비앤비 이야기, 새집에서는 숲이 무척 가깝다는 이야기, 매일매일 숲을 산책하는 이야기, 그렇게 꾸리게 된 방과후 산책단 이야기, 그 속에서 위로받고 위안이 되어주는 이야기, 경제적으로 어려운 작가를 배려해 세심하고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그의 든든한 가족 이야기. 작가는 여행이 빠진 글을 쓰는 게 걱정된다고 했지만 나는 여행이 빠진 글이 더 좋았다. 일상을 걱정하고 서로 배려하고 힘이 되어주는 이야기가 가득했기에. 인상적이다 생각한 것은 앞으로의 일을 상상하는 부분이 많았고, 그 미래들이 대부분 희망적이고 따스했다는 것이다. 여행이 작가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 그동안 무게를 잡아주기도 흔들기도 했다며, 열려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중심에 단단하게 자리잡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구절에는 허리를 단단히 세우고 배에 힘을 주고 나의 중심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어제는 강풍을 맞으며 좋아하는 동네꽃집에 가 곧 생일인 친구의 선물을 샀다. 잔뜩 골라 유모차 짐칸에 놓고 또 강풍을 맞으며 돌아오는데 아기는 새근새근 잠들었고 좋아할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가는 여행 뒤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보내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걸 두고 이렇게 썼다. "미루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고마움을 매 순간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자 애쓰게 되었다." 공감. 완전 공감이다. 책을 읽으면서 샴푸 후기처럼 작가와 작가의 지인들이 만들어가는 따스한 기운 속에 한 발 내딛는 느낌이 들었다. 따스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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