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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책
    모퉁이다방 2021. 10. 13. 12:13

     

      어제는 아이가 계속 짜증을 부리며 울길래 산책을 나갔다. 하늘도 흐리고 바람도 쌀쌀해 산책은 생략하려고 했는데 부랴부랴 챙겨 나갔다. 긴팔 바디수트에 이번에 산 민트색 레깅스를 입혔다. 양말도 신기고 모자도 씌웠다. 혹시 유모차에서 울까봐 노란색 튤립 사운드북도 챙겼다. 튤립 사운드북이 여러 개 있는데 노란색 노래들이 경괘해서 그런지 유독 이 튤립을 좋아한다. 나가보니 맞은편 동네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어둑어둑한 것이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았는데 우리 동네 구름은 많기는 하지만 색이 괜찮아서 근처만 조금만 걷다 오자며 나섰다. 그리고 근사한 구름을 만났다. 유모차를 멈추고 말했다. 지안아, 진-짜 예쁜 노을이다. 그치? 다행이다. 집에만 있었으면 저 예쁜 노을을 못 봤을텐데. 보고 있는건지 그냥 밖에 나와서 좋은건지, 어쨌든 산책 내내 울지도 않고 엄마가 따뜻한 커피를 살 때도 맛나보이는 무화과 케잌을 추가주문할 때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가을의 시작. 어제는 딱 이 표현이 어울렸다. 막 추워지기 시작했으니. 가을이 시작되는 온도에 마음이 들떠 잠든 아이를 밀며 좀더 걸었다. 하늘에 자잘한 구름들이 가득했다. 군데군데 노을빛 하늘이 보였다. 저 멀리 반만 찬 달도 보였다. 가만히 걷고 있는데 그동안 남편이 내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남편은 자기가 애 쓰고 있는 게 보이지 않냐고 했다. 왜 내 생각만 하냐고 했다. 이상하다. 싸울 때는 잘 보이지 않던 남편의 애씀이 이렇게 아이와 함께 혼자 산책을 하고 있으니 뚜렷하게 보였다.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얼마나 힘이 들지. 셋이 잘 살아보자고 각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나만 다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생각하고 생각했다. 오늘 지안이는 136일. 세상에 나온지 4개월 14일째. 우리가 부모가 된지도 4개월 14일째. 여전히 서툰 초보엄마아빠. 이렇게 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이때를 뒤돌아보면 우리 그때 진짜 힘들었는데 잘 해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매일 집에 들어오면서 내 기분이 어떤지 눈치를 보게 된다던 남편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 오늘은 기분이 무척 좋으니 안심하라고 미리 알려주려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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