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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주택에 진심입니다
    서재를쌓다 2021. 10. 3. 00:41

     

     

      구도심 주택에 살아보니 집을 '산' 것은 동네를 '사는' 것이란 걸 깨닫는다. 집은 삶 그 자체이고 내 집이 위치한 동네는 브랜드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관계망이다. 구도심 작은 동네의 좁은 관계망이 어떨 땐 불편하기도 하고 어떨 땐 즐겁기도 하다. 불행히도 아파트에 살 때 내게 이웃은 얼굴 없는 층간소음의 장본인일 뿐이었다. 혹여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어색하고 불편한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같은 공간을 사는 이웃이 되었다. 집 앞에 낙엽이 뒹굴면 낙엽을 쓸고 눈이 오면 눈을 같이 치워야 한다. 좋건 싫건 나는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며, 우리 가족만 잘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자연스레 깨닫는다. 

    - 10쪽

     

     

      단독주택은 남편의 소망이 되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불만이 쇄도하는 아파트 주민들, 재활용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지 않는 사람들, 무엇보다 층간소음이 힘들다고 한다. 입주하고 초기에 누가 걷는듯한 큰 소리의 층간소음이 있었다. 누군가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다 들리는 그런 소음이었다. 우리는 메모와 함께 슬리퍼를 윗집 문앞에 놓아두었고 윗집은 과일과 메모를 우리집 앞에 놓아두었다. 윗집은 자기네 소리가 아닐 거라며 집에 언제 주로 계시는지 궁금해서 이야기해보려고 왔는데 아무도 없어 메모를 남긴다고 했다. 윗집이 집에 있는 시간대는 우리와 비슷했다. 그 뒤 소음이 점차 줄어들더니 이제는 거의 나지 않는다. 아이가 크면 우리가 낼 소음도 걱정이다. 조심한다고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소리가 있을 것이다. 내게도 단독주택에 대한 소망이 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은. 지금의 아파트 생활에 큰 불만은 없어 그 소망은 조금 나이가 든 뒤에 이루어져도 좋을 것 같지만. (과연 이루어질 지가 문제지) 

     

      한수희 작가님의 인스타 팬이다. 작가님이 글과 사진을 올리면 찬찬히 읽어본다. 작가님 덕분에 동인천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내가 잘 읽어낸 것이 맞다면 동인천은 오래된 것과 그 오래된 것을 보존하려는 새로운 매력이 뒤섞인 곳 같다. 얼마 전에는 인천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인천맥주공장 사진도 봤다! 홋카이도에서 홋카이도에서만 마실 수 있는 맥주가 있어 얼마나 부러웠는데.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되면 꼭 인천맥주를 마시러 인천에 가봐야지. 작가님은 동인천으로 이사를 한 뒤 그곳의 매력에 푹 빠져 마냥 좋은 산책길, 할머니도 혼자 먹으러 오는 돈까스집 등을 인스타에 올리며 자신이 이 동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한다. 이 책도 작가님이 좋아하는 가게에서 술을 마시며 읽은 책이다. 자신의 산책길에 소박하고 예쁘고 품위있는 집이 있다고. 늘 그 집이 궁금했는데 그 집의 주인이 책을 썼다고. 동인천의 구도심에 오래된 단독주택을 고쳐 사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동인천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읽는 것이다. 멋지다, 생각하며 나도 책을 주문했고 동인천과는 거리가 꽤 있는 군포의 아파트에서 읽었다. 그곳을 상상하며.

     

      내가 사는 동네가 근사해질 수 있는 방법은 내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낡은 것이라 치부되는 것에서 생애 보물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발 디딘 곳의 매력을 발견하고 그 매력에 뿌리를 내리고 물을 적절히 잘 줘 튼튼하게 성장시키는 마음. 그 마음을 두 사람에게서 읽었다. 이 책의 봉봉 작가님과 한수희 작가님. 

     

      내가 사는 동네는 위치가 애매하다. 역과 역 사이에 위치해 있다. 4호선 대야미역과 1호선 의왕역. 역세권이 아니여서 서울로 갈 때 아쉽지만 4호선도 1호선도 탈 수 있다. 크지 않은 자그마한 지구에 아파트가 5단지까지 있는데 예전에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동네가 들어선 거라 상점들이 아직 많이 없다. 최근에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입주를 시작했고 속도는 더디지만 하나하나 상점들이 생기고 있다. 이번에는 어떤 상점이 오픈을 하나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 전에는 분식점이 오픈을 했다. 조그마한 애기들이 엄마들과 함께 가게 앞 파라솔에 앉아 어묵을 먹고 있는 모습을 산책을 하다 봤다. 맛있는 왕겨 참숯 돼지 직화구이집이 있고, 좋아하는 빵집 체인점도 있다. 샌드위치집도 맛있는데 양상추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아이스라떼가 무척 고소해서 산책할 때마다 마시곤 한다. 새로생긴 파스타 집도 맛있다는데 조용하고 자그마한 곳이라 언제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우리 동네의 큰 장점은 바로 우리집. 우리집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숲이다. 산 이름이 구봉산인데 지도에서 찾아보면 145.3m라고 되어 있다. 그 산의 나무들이 고층의 우리집에서 선명하게 보인다. 바람이 많이 불 때는 나뭇잎이 쏴아하고 일제히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봄이 되어가는 속도, 한여름의 출렁거리는 소리, 가을이 여물어가는 빛깔도 보인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이 창밖 풍경 때문에 긴 출퇴근길을 견딜 수 있겠다 생각했었다. 이 집에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는동안 이 집과 이 동네를 많이 좋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이 있다면 그 다음 집도 그랬으면 좋겠고. 욕심보다 애정이 많은 사람으로 나이 들어갈 수 있기를 책의 집과 나의 집을 돌아보며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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