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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지내세요
    모퉁이다방 2021. 8. 12. 16:53

     

     

      산후도우미 관리사 업체는 조리원에서 추천받았다. 조리원 원장님은 자기가 추천해주고 나빴던 사람은 없었다며 혹시라도 이상한 사람이 오면 자기한테 연락을 하라고 했다. 조리원 퇴소가 목요일이라 금요일은 어찌어찌하고 월요일부터 출근하시면 일정이 깔끔하겠다 싶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니 목요일에도 남편이랑 둘이서 멘붕이겠다 싶어 금요일 출근으로 변경을 했다.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안 그랬음 전쟁같은 금토일을 보냈을 거다. 관리사님이 출근 전에 문자로 연락을 해와 연락처를 추가하고 카톡 사진을 염탐했다. 장성한 아들 둘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인상이 좋아보이셨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걱정하는 만큼 관리사님도 걱정스럽겠지. 어떤 산모와 아이를 만날지. 너무 까탈스럽지는 않을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좋은 관리사님이었다. 불편한 것 있으면 바로바로 말해주면 좋겠다고 먼저 얘기해주셨고 살림살이도 별로 물어보지 않으시고 알아서 잘 찾으셨다. 친근하고 깔끔하셨고 어떤 할 선은 끝까지 지키셨다.

     

      관리사님이 계셨던 3주동안 나의 일상은 대체적으로 이랬다. 전날 지안이와 혼을 빼는 밤을 보낸 후 아침이 찾아온다. 정말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어떤 밤을 보내든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침에 아이는 평화롭다. 관리사님은 항상 같은 시간에 출근하셨다. 8시 50분. 정확히 50분에 현관문을 노크하셨다. 늦는 게 싫어 매일 일찍 도착해 차 안에 있다 올라오신다고 했다. 너무 일찍 오는 것도 불편할 수 있겠다 싶어 밑에서 시간을 보내신다고. 관리사님이 오시면 안방의 아기침대를 거실로 뺀다. 옷을 갈아입고 내 아침밥을 준비하신다.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이것저것 꺼내 보기좋게 담아주신다. 내가 밥을 먹으면 밤새 이렇게 얼굴이 또 달라졌냐며 지안이에게 안부를 묻는다. 과일까지 챙겨주시고 지안이가 조용해지면 집안일을 시작하신다. 청소기를 밀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나는 방에 들어와 쉬거나 아침잠을 잤다. 그때는 수유때문에 밤에 몇 번을 일어나야 해서 낮에 수시로 잠이 왔다. 길게 자면 점심 때까지 푹 잤다. 어느 날은 일어나보니 지안이도 관리사님도 안 계셨는데 욕실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목욕하고 몸에 태열이 안 올랐나 봐주셨고 코 때문에 답답해할 때는 면봉으로 솔솔솔 파내주셨다. 점심은 함께 먹었다. 내가 자는 사이 반찬을 하나 두개씩 만들어두셨는데 제일 맛있었던 건 감자전. 너무 맛있다고 하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도 두세번 더 해주셨다. 점심을 먹으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육아 이야기, 관리사님 자식들 이야기, 지안이 이야기, 코로나 이야기, 사는 이야기. 나는 차를 마시고 관리사님께는 커피를 만들어 드리고 지안이를 좀 보다 방에 들어왔다. 책을 조금 읽다 잤다. 관리사님은 또 설거지하고 저녁반찬 만들어두고 빨래 개고 지안이 달래고. 지안이가 수유하다 자버리면 함께 깨워주셨고, 수유가 끝나면 트림을 시켜주셨다. 자고 있다가도 관리사님 퇴근 한 시간 전이 되면 몸이 귀신같이 알고 일어났는데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안이는 침대에 누워 자고 모든 집안일은 끝내있고 주방도 깨끗해져 있는 고요한 시간. 관리사님은 항상 주방 식탁에 앉아 계셨다. 숲이 보이는 창을 마주하고. 

     

       관리사님은 항상 "할 수 있어요", "별 거 아니예요", "잘 크고 있는 거예요" 라는 말을 해주셨다. 그게 육아를 아무 것도 모르는 내게 힘이 되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지라 처음에는 같은 공간에 오랜시간 함께 있는 게 불편했는데 익숙해지니 별의별 말을 다하게 됐다. 어제 남편과 싸운 이야기까지. 지금에와 생각해보면 그 대화들이 산후우울에서 멀리 도망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육아에 서툰 내게 여러 번 말씀해주셨다. 아기는 편안했던 뱃속을 떠나 너무나 낯선 세계로 나온 거라고. 얼마나 혼란스럽겠냐고. 지금 이 낯설고 넓은 세계에 적응하느라 그러는 거라고. 엄마는 어떤 상황이 와도 놀라지 말고 침착하게 아, 내 아이가 지금 세상에 적응하고 있구나, 그래서 그러는 거구나 생각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고 다독여주라고. 그 말을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지안이가 적응하고 있구나, 엄마가 지켜봐줄게, 괜찮아괜찮아 하며 다독이게 된다.   

     

      지난주에 관리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떻게 지내세요? 지안이는 잘 크지요?" 파키라 잎이 무성해 줄기를 하나 잘라드렸는데 거기서 뿌리가 나기 시작했다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다. 나는 함께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애가 침대에서 안 자요, 안겨만 있어요, 밤에 잘 안 자요, 지 아빠 배 위에서만 자요, 이렇게 저렇게 조잘대고 그런데 이제 괜찮아졌어요,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관리사님은 사진을 보내줄 수 있냐고 했다. 나는 최대한 맑은 사진들로 골라 보냈다. 메시지가 왔다. 너무 예쁘게 크고 있어 좋네요. 얼굴이 참 밝아요. 나는 시간 되실 때 놀러오시라고 했고 관리사님은 그럴게요, 라고 답을 보내왔다. 

     

      마지막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관리사님은 8시 50분에 출근하셨고, 내 아침밥을 차려주셨고, 집안일을 하셨다. 점심을 함께 먹었고 커피를 만들어 드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방에 들어가 쉬었고 한 시간 전 쯤에 일어났다. 그 날 관리사님은 이것저것 자신이 지안이를 돌보며 파악한 성향 같은 것들을 말해주셨다. 어떻게 해야 좋아하고, 이런 성향이 있는 것 같고 등등. 관리사님은 덤덤하게 "지안이 잘 키우세요. 지안이는 잘 보채지 않는 귀여운 아이였어요." 라고 말했는데 나는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울어버리면 당황해하실 것 같아 꾹 참았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또 물었다. "제가 내일부터 혼자 잘 할 수 있을까요?" 관리사님은 자신이 처음 왔을 때도 내가 그렇게 물었는데 지금은 자신감이 꽤 생기지 않았냐면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셨다. 누군가 집에 와 3주동안 낮시간을 함께 보낸 건 생애 처음이었다. 걱정했지만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덕분에 푹 쉴 수 있었다. 요즘도 가끔 지안이가 잘 때 집안이 조용해지면 그 때 그 고요했던 오후 시간이 생각이 난다. 그야말로 고-요-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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