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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격
    모퉁이다방 2021. 9. 7. 01:17

     



      계절에도 성격이 있을까. 계절 앞에 '초'라는 글자를 붙이면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그 중 제일은 초여름. '초'라는 글자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런 뜻이다. 어떤 기간의 처음이나 초기. 그러니까 여름의 처음이나 초기를 생각하면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린다.

    포르투갈에 가기로 한 건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때문이었다. 동생과 영화를 본 뒤 배경이 되는 곳을 찾아보니 포르투갈 리스본이었다. 여행 프로그램 리스본 편을 죄다 찾아봤다. 노란 전차가 좁은 골목길을 덜컹거리며 오르내리고 있었다. 근사했다. 오래되었고 낭만적이었다. 그 다음해, 휴가날짜를 결정해야 할 시기에 동생이 말했다. 언니, 우리 포르투갈에 가자. 우리는 초여름에 출발하는 일정으로 예산을 무리해 준비를 했고 어이없게도 동생이 출발 일주일을 앞두고 우연한 사고로 발가락 뼈에 금이 잔뜩 갔다. 동생은 울며 깁스를 했고 나는 내 생애 최초로 혼자 해외여행을 가게됐다. 유럽도 처음이었다.

    혼자 비행기를 타고 혼자 숙소를 찾아가고 혼자 식당에 갔다. 혼자 길을 걷고 혼자 맥주를 마셨다. 2인용 침대에서 혼자 잠들었다. 좋은 풍경을 보는 것도 혼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혼자였다. 여행할 당시에는 참 많이 외롭고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수없이 생각했지만 여행이 끝나고 여럿 속에서 혼자였던 당시를 떠올려보니 참 좋은 시간들이었다. 여행 후 나는 내가 조금 단단해졌음을 느꼈다. 지금 이곳에서, 이전보다 좀더 용기를 내게 되었다.

    계절에도 성격이 있다. 각자가 기억하는 각자의 계절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 초여름은 곧 다가올 열기로 무모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용기로 가득한 계절이다. 어떤 도전을 할 수 있고 어떤 실패도 할 수 있는 계절. 저녁에 부는 선선한 바람으로 그 실패를 위로받을 수 있는 계절. 또다른 용기를 북돋우는 계절. 무엇보다 시원한 맥주가 정말 맛있는 계절이다.

     

     

       6월과 7월이 육체적으로 무척 힘들어서 조금 수월해질 것만 같은 8월에는 뭔가 나를 위해 힘쓰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매일 조금씩. 나는 의지박약이니까 강제성이 있어야 할 것 같아 한달 내 짧은 글을 매일매일 쓰면 그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해주는 곳에 7만원을 쓰기로 했다. 나는 의지박약이니까 강제성이 있어도 강제성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면 되므로 결국 실패를 했다. 몇 편 쓰다 더이상 쓰지 못했다. 아침 8시에 그 날의 키워드가 전달이 되는데 매일 그 키워드에 맞는 글을 생각하고 쓰는 게 쉽지 않았다는 핑계. 그럼 시작하지를 말지. 그래도 몇 편 쓰면서 옛추억들을 곱씹어봤다. 지나고 난 뒤라 그렇겠지만 참 좋은 시절이었다. 지금도 훗날 그렇겠지. 한 권의 책은 물 건너갔고 하나뿐인 블로그에 지금의 이야기들을 많이 남겨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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