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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퉁이다방 2021. 5. 30. 21:38

     

     

     

      늦은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와 다 마른 빨래를 개고 있는데 갑자기 거실에 있는 여인초 큰 잎들이 휘청거렸다. 날씨가 좋아 방 창문들을 다 열어놨는데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했다. 밖을 내다보니 작은 숲의 나무들이 세차게 출렁거린다. 오늘 날씨예보에 갑작스런 비가 있다고 했는데 진짜네. 마치 태풍 직전처럼 쏴아쏴아 바람소리가 들리니 이상하게 가슴이 시원해진다. 내일 수술 때문에 자정부터 물 포함 금식이라 세끼를 아주 기똥차게 먹기로 했는데 늦은 아침 덕분에 늦은 점심이 되고 엄청 늦은 저녁이 될 예정이다. 사실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튀어나온 배도, 배 안에서 꿈틀거리는 태동도, 뒤뚱거리며 걷는 것도 모두 마지막이라는 것이. 오늘 출산 전 마지막 엽서를 쓰다가 영화 <소울> 생각이 났다. <소울>에서 '태어나기 전 세상'에 있던 생명체들이 자신에게 딱 맞는 '불꽃'을 찾은 뒤 지구를 향한 비행을 시작하는 장면. 속도를 높이며 신나고 즐거운 표정으로 지구에 입성하는 장면. 아마도 탕이는 지금씩 마지막 불꽃을 찾았겠지. 엄마아빠를 만나러 즐거운 비행을 시작하겠지. 탕이는 어떤 표정으로 세찬 바람을 가르며 올까. 신나고 즐겁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으면 좋겠는데. 내일 수술 전 무서운 생각이 들 때면 그 표정을 상상해봐야지. 우리의 아이가 마침내 마지막 불꽃을 완성하고 신나게 바람을 가르며 오고 있다 생각해야지.

     

      예정일이 6월 12일 토요일이어서 매주 토요일마다 주수가 바뀌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우리는 늦잠을 잤고 침대에서 최대한 뒤적거리다 앱을 켰다. 앱에는 매주 아기의 주수별 특징이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14주에는 잇몸에 유치가 생겼다고 했고, 19주에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기억한다고 했다. 24주에는 생식기가 발달하고 있다고 했고, 27주에는 눈을 뜰 수 있다고 했다. 30주에는 숨쉬기 연습에 열중이라고 했고, 32주에는 손발톱이 거의 다 자랐다고 했다. 37주에는 피부를 보호하던 태지와 솜털을 벗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38주에는 손가락을 빨고 하품도 미소를 짓거나 얼굴을 찡그릴 수도 있단다. 태어난 아기들이 하는 모든 배냇짓을 하며 엄마 아빠를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단다. 이런 주수별 특징을 침대에 나란히 누워 한 사람이 읽고 한 사람이 들었다. 그러면서 정말? 그걸 이제 할 수 있대? 하며 신기해했다. 전탕이 콩콩콩- 죤탕이죤탕이- 라고 부르며 즐거워했다. 이 토요일 아침시간도 마지막이네.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물음표 투성이다. 내일 당장 아가가 태어난다는 것도 믿어지지가 않는데. 병원에 들어서면 실감이 나겠지. 심장이 마구 떨리기 시작하겠지. 잘 할 수 있다, 잘 할 수 있어,  스스로 되뇌어야겠지. 남편은 하루종일 차태현이 나왔던 <번외수사>에 빠져 드라마 시청 중이고, 아침부터 다정한 사람들이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다. 교촌치킨과 참외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식사를 마무리해야지. 으으- 마흔 둘의 노산 엄마, 화이팅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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