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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사랑 온천 - 차가운 몸을 녹이는 순간
    서재를쌓다 2007. 8. 16. 16:18

    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Media2.0


       일본 노천 온천에 대한 환상이 있다. 코 끝에 닿는 바람이 지독하게 차가운 겨울 날, 산이 있고 나무들이 보이는 노천 온천으로 들어가 차가운 몸을 따뜻한 물에 녹이는 순간. 아, 이 순간 정말 행복하다, 라고 느끼는 순간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거다. 아니면 초저녁, 밤하늘의 별이 하나 둘씩 반짝이기 시작해도 좋을 거 같다. 생각만해도 행복해지는 그 기분.

       <첫사랑 온천>이 보고 싶었던 이유는 순전히 이 일본 노천 온천에 대한 환상때문이었다. 물론 요시다 슈이치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했고. 아직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일요일들>밖에 읽지 못했는데, 그의 사소하고 스쳐가는 듯한, 고요하고 가끔은 서글픈, 덤덤한 공기의 이야기들이 좋다. 어제 거리에서 나를 스쳐간 사람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이른 새벽, 나와 마찬가지로 잠들지 못하는 이 도시 어딘가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인 것도 같은 그런 글들.

       <첫사랑 온천>도 좋았다. 덤덤하고 고요하지만 무언가 마음 속에 행복하거나 쓸쓸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첫사랑 온천'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곧 떠나보내야 하는 외로운 사람이, '흰 눈 온천'에는 사랑이 고요하게 지속되고 있는 연인의 마음이, '망설임의 온천'에는 배우자 몰래 애인을 가지고 있는 불안한 사람들이, '바람이 불어오는 온천'에는 인생을 한참 달려와 뒤돌아보니 낙엽이 부스러지는 소리만 남은 쓸쓸한 남자가, '순정온천'에는 사람들이 없는 우리들만의 벽이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온천이여도 좋다. 벚꽃이 내리는 봄의 온천이든, 여름이 시작되는 싱그러운 온천이든, 낙엽이 바그락거리는 가을의 쓸쓸한 온천이든, 새하얀 눈이 희망을 품게 하는 겨울의 온천이든. 그 곳의 따스함에 내 차가운 몸을 녹이는 순간, 현실의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은 배가 된다.

       언젠가 별이 총총한, 눈이 스르르 내리는 노천 온천에 앉아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혼자여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여도 좋을 테지. 상상만으로 행복한 이 느낌. 이번 겨울 즈음에 한번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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