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

from 모퉁이다방 2019. 11. 7. 17:16




  막내의 결혼식이 있던 시월의 일요일에 보경이가 놀러오기로 했다. 영종도에서 군포까지. 네이버 지도앱으로 검색해보니 대중교통만 이용했을 경우 두시간 남짓이었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냐고 하니 여행하는 기분으로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온다고 했다. 고맙고 미안했다. 산본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고 했다. 친구가 집들이 선물로 전자레인지 겸 오븐을 선물해줬는데 오븐 덕분에 삶의 질이 1도 정도 높아졌다. 갓 지은 밥을 냉동실에 얼려놓고 금방 해동할 수 있게 되었으며, 생선도 냄새 걱정 없이 구울 수 있게 되었다. 고구마도 적당히 구워 단맛이 한껏 오른채 버터를 살짝 녹여 맛나게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베이킹. 오븐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해보자는 생각에 베이킹에까지 이르렀다. 보경이는 케이크도 구워 판매한 실력자. 마들렌을 같이 구워봐줄 수 있냐고 하니, 남은 베이킹 도구들을 가져온다고 했다.


  우리는 두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여기저기 기스가 난 원목식탁에 앉아 자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보경이는 새집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언니, 풍경이 좋다. 책장도 잘 샀네. 딱 좋다, 는 말을 여러 번 해줬다. 점심을 먹고난 뒤 마주 앉아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식 이야기, 신혼여행 이야기. 신혼여행 갈 때 보경이는 튜브를 빌려준다며 부러 공항에 나와 우리를 배웅해줬다. 신혼여행에서 옆사람이 그 튜브를 탄 이야기,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생리가 터져 물에는 발만 담근 이야기, 긴 출퇴근길 이야기, 직접 본 적 없지만 친숙한 서로의 친구들 이야기, 최근에 읽은 책 이야기까지. 그리고 더 늦기 전에 해야겠다며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왜 마들렌을 만들어보자고 했을까. 마들렌이 내가 아는, 작은 크기의 빵 중에 가장 간단해보이면서도 고급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빵집에서 꽤 비싸게 팔고.


  버터와 달걀은 실온에 미리 꺼내놓았다. 저울도 꺼냈다. 이럴 때 쓸지는 몰랐는데 이제보니 베이킹용인 커다란 스텐볼도 꺼냈다. 보경이가 적당한 크기의 거품기와 반죽을 알뜰하게 긁어모을 수 있는 주걱, 완성된 빵을 식힐 수 있는 판을 가져다줬다. 나는 마들렌 틀과 박력분, 베이킹파우더, 짤주머니를 사뒀다. 모든 가루는 체에 두번씩 걸러 주었고, 저울에 정확하게 용량을 단 뒤 섞었다. 설탕이나 달걀을 넣을 때는 한 번에 모두 넣지 않고, 조금씩 나눠서 넣어 주라고 했다. 그래야 잘 섞인단다. 버터는 전자레인지에 녹였다. 모든 재료를 순서에 따라 섞어둔 뒤 흐물흐물한 반죽을 짤주머니에 넣어 냉장고에 1시간 정도 두었다. 제법 단단해졌다. 마들렌틀에 버터를 바르고, 밀가루를 살살 뿌린 뒤 냉동실에 잠깐 넣어두고 오븐을 예열했다. 냉동실에서 꺼낸 틀에 반죽을 적당히, 80퍼센트 정도 채우고 예열된 오븐에 넣었다. 그렇게 15분 남짓을 기다렸다. 


   5분이 지나자 열어둔 베란다 문 너머로 빵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우와, 보경아, 빵냄새가 나. 오븐 안을 들여다보니 조금 전까지 반죽일 뿐이었던 그것이 제법 모양을 내며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10분이 지나자 보경이는 오븐을 열어 쇠젓가락으로 마들렌을 푹 찔러봤다. 반죽이 묻어나오지 않으면 다 된 거야. 틀에서 마들렌의 형태를 한 그것들을 멋지게 빼낸 보경이는 조금 식고 난 뒤에 냉동실에 바로 넣어두라고 했다. 그래야 먹을 때마다 갓한 것처럼 맛나게 먹을 수 있다고. 그렇게 베이킹의 세계에 나를 입문시킨 보경이는 올 때 그랬던 것 처럼 택시를 타고 산본까지 가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영종도까지 갔다. 


   그 뒤로 주말마다 무언가를 구웠다. 마들렌을 구웠고, 치즈후추쿠키를 구웠고, 스콘을 구웠다. 보경이가 주고 간 기초 책 외에 베이킹 책을 한 권 더 샀고, 머핀틀, 파운드케이크틀, 원형케이크틀도 샀다. 너무나 신기한 세계인 것이다. 정확하게 잰 재료들을 이리저리 반죽했다 냉장고에 잠시 두고 오븐에 구우면 빵 비스무리한 그것이 되는 것이. 동생에게 빵을 두 번 가져다줬는데 제2의 우스블랑이 되란다. 우스블랑은 오픈하자마자 줄을 서는 2층으로 된 빵집이다. 이번 주에는 생일축하용 밀크티 파운드케잌에 도전해 볼 거다. 두근두근거린다.

 



  1. BlogIcon wonjakga 2019.11.13 18:17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글에서 빵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갑자기 추워진 오늘 이 글이 참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 1호선은 승강장이 외부라 겨울에 너무 추웠던 기억.. 감기 조심하세요!

    •  address  modify / delete 2019.11.14 22:43 신고 BlogIcon GoldSoul

      춥긴 한데, 계속 밖이 내다보이니까 좋은 것 같아요. 정말 오늘 엄청나게 춥더라구요. 요즘 빵 굽는 게 너무 재미나요. 더 맛난 빵을 많이 구울 수 있음 좋겠어요. 헤헤- 현정씨도 감기 조심하세요. :)

  2. BlogIcon 네르 2019.11.14 13:5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랜만에 댓글을. :) 윗분 말씀대로 저도 글을 읽으며 빵냄새를 맡았네요. :)
    새로 시작한 생활 행복하시기 바라고, 뒤늦게나마 축하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