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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달 뒤
    모퉁이다방 2019. 6. 25. 21:56





       작년 팔월에는 울릉도를 여행했었다. 아침 일찍 강릉에서 출발해 세 시간 가까이 배를 타고 울릉도에 도착했다. 걱정했던 멀미는 없었다. 도착하는 순간부터 비현실적인 쨍-한 느낌이 있었다. 하늘은 새파랬고, 나무들은 짙은 녹색 그대로, 해도 짱짱했다. 무더웠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불면 땀이 한순간 훅-하고 식었다. 바다색깔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자체가 원시적인 느낌이었다. 울릉도에서 하룻밤만 잘 계획이었다. 첫째 날은 해안도로를 한바퀴 돌기로 했다. 섬을 완전히 연결해 줄 마지막 구간의 도로가 공사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끝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해물이 잔뜩 나오는 짬뽕을 먹고 나와 커다란 지도를 보고 있는데, 주차비를 정산해주던 아저씨가 어떤 코스로 돌거냐고 물어봤다. 그냥 한 바퀴 쭉 돌려구요. 아저씨는 천천히 돌면서 멈춰서고 싶은 곳에 멈춰서서 구경하라고 했다. 그리고 렌트카를 빌렸으니 관음도에는 꼭 가라고 했다. 해안도로의 끄트머리에 있다고. 아저씨의 말대로 천천히 움직였다. 근사해 보이는 곳에 차를 대고 멈춰서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바닥의 구멍 틈으로 파도가 뿜어져 나오던 거북바위를 구경했고, 거의 일직선으로 올라가던 모노레일도 탔다. 등대까지 숲길을 자박자박 걷기도 했다. 아기자기한 커다란 하늘색 기둥이 있어 가보았더니 해중전망대였다. 입장권을 내고 아래로 들어가 바닷속을 구경했다. 창 너머 물고기가 많았고, 지하의 전망대는 시원하고 습했다. 


       그렇게 도로를 돌다보니 끄트머리에 도달했다. 관음도. 아저씨가 차가 있으면 꼭 가봐야 한다고 한 곳. 그 때 너무 지쳤었다. 아침부터 움직였고, 울릉도의 해는 날 것 그대로라 땀도 엄청 흘렸다. 이제 그만 돌아가 맛난 밥을 먹고, 땀을 씻어내고, 시원한 맥주를 한 잔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저씨가 비싼 돈 들여 렌트했으면 관음도는 가봐야 한댔으니까. 그래서 갔는데, 차가 있으면 가면 좋은 곳이라 했으니까 우리는 당연히 차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차를 입구에 대고 다리를 건너 가는 거였다. 해가 지기 전 오후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입장 마감시간이 있었는데, 1시간 정도 남았더라. 망설이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가보기로 했다.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리 입구까지 올라갔다. 다리를 건너고 보니 어마어마한 높이의 계단이 있었다. 단과 단 사이도 높고, 층고 자체도 엄청 높았다. 정말 더운데. 그리고 너무 지쳤는데. 절망하는 그 애를 두고 내가 먼저 힘을 냈다. 쪼리를 신고 있었는데 남아있는 힘을 잔뜩 내서 폴짝폴짝 올라갔다. 내가 단번에 올라가니 그 애도 힘을 내서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힘들다는 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중간쯤 와서 풍경을 보고 쉬고, 또 힘을 내서 나머지 계단을 올라왔다. 그렇게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었다. 사람들도 없어 더더욱. 이 원시 그대로의 섬, 그 안의 또다른 자그만 섬에 우리 둘이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느낌. 그게 조금은 황량하고 조금은 외롭지만, 어쩐지 안심이 되기도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작은 섬을 오르내리며 한 바퀴 또 돌았다. 바람이 불었고, 그동안의 땀을 훅-하고 식혀 주었고, 이제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간에 기대 한참을 내려다 봤다. 바다와 하늘과 풀들. 바위들, 섬들. 우리가 온 길이자 다시 갈 길. 이번에는 갈 수 없는 길. 막힌 곳 없이 뻥 뚫린 작은 섬이라 다 볼 수 있었다. 내가 볼 수 있는 한 모두 다. 두 달 뒤에 관음도에 같이 갔던 그 애랑, 엄청난 계단을 함께 오르고, 그곳의 바람에 땀을 함께 식혔던 그 애랑, 결혼을 하게 됐다. 우리의 결혼생활이 그 관음도 같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조금은 황량하고 조금은 외롭지만, 어쩐지 안심이 되는. 딱 그 정도였음 좋겠다. 돌아오는 길에는 한 번 멈춰섰는데, 거기서 노을을 봤다. 아주 근사한 노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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