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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일
    모퉁이다방 2018. 2. 1. 17:04

     

     

     

     

       영화 <초행>에는 남자와 여자가 차 앞좌석에 앉아 있는 장면이 자주, 그리고 오래 나온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서울인가 경기도 어딘가의 여자의 집에 가고, 강원도에 있는 남자의 집에도 간다. 여자는 남자에게 네비게이션이 말해주는 길을 알려주고, 남자는 이 길이 정말 맞는지 여자에게 물어보곤 한다. 마지막 장면에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광화문 광장을 걷는다.

     

       Y씨의 차에 처음 탄 건 강변에서 영화를 보고 근처 역에 내려준다고 하길래. Y씨는 의정부 쪽에 있는 동생네 집에 가는 길이어서 강변역에서 헤어지는 게 맞았는데, 그냥 탔다. Y씨가 말했다. 이 차 앞자리에 처음 탄 여자야. 얼마 전에 고모를 태웠는데, 그건 뒷자리였다고 했다. 그 밤, Y씨는 결국 응암까지 데려다 줬다. 강변에서 응암까지 가는 길이 근사했다. 주위는 칠흙같이 어두운데, 도심의 불빛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Y씨가 걸그룹 노래들을 좋아해 함께 들었다. 그 뒤, 금요일밤 상암에서 심야영화를 보고 집에 갈 때, 일산으로 백숙을 먹으러 갈 때, 화성으로 배구 경기를 보러 갈 때, Y씨의 차를 탔다. 나는 <초행>의 여자처럼 내비게이션은 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Y씨는 화성으로 가는 길에 저기가 내가 살던 동네, 여기가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라고 말해줬다. 나는 가리킨 곳을 스윽 봤다. 안양은 처음이지만 낯설진 않았다. 돌아오는 길엔 그때 데려가고 싶었던 백숙집이라면서 컴컴한 호수길을 한바퀴 돌았다. 

     

       토요일이었다. 친해지는 속도가 더디어 설 연휴 지나면 마시려고 했던 술을 당겨서 마셨다. Y씨가 월요일 이야기를 했다. 매번 연락을 먼저 하는 건 Y씨 쪽이었다. 출근 잘 하고 있는지, 점심은 맛있게 먹었는지, 퇴근은 했는지, 집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그 날은 월요일이었는데 잠들기 직전까지 Y씨에게 연락 한 통이 없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기도 해서 연락을 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잠들었다. 다음 날 Y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연락을 했다. 어제 아주 늦게까지 일을 했다고, 출근은 잘 하고 있는지, 점심은 맛있게 먹었는지, 퇴근은 했는지, 집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토요일날 함께 술을 마실 때, Y씨는 사실은 그 월요일에 일이 많아 너무 힘들었고, 내 연락이 한 통도 없어 힘이 무척 빠졌다고 했다. 늦게까지 시험실에 들어가 있었고, 핸드폰 밧데리도 없었고, 거의 밤을 샐 뻔 했다고 했다. 새벽 2시가 지나 집에 들어와 핸드폰을 켰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는 월요일 새벽 2시 Y씨의 마음을 생각해봤다. 갑자기 울컥했다. 간만에 술을 마셔 그런 거라 생각을 했는데, 어디선가 마음 움직이는 소리가 딸칵하고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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