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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서 완전하게
    서재를쌓다 2017. 11. 18. 10:07




        혼자 여행가 있을 때, 동생이 돌아오면 읽어보라고 했던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천둥번개도 치고, 지진도 났다. 세상은 불완전하다. 이 책으로 일상에 제법 힘을 얻었다. 읽으면서 생각한 건, 내가 나 자신을 불완전하게 생각하는 건 남들과 비교를 해서라는 것. 비교하게 될 때, 나는 내가 부족한 걸 계속 떠올리는 거다. 그렇지만 내겐 남들에게 없는 것들도 있는 걸. 불완전하다고 느낄 때마다 그것들을 끊임없이 떠올려야지.


        다 읽은 책을 세가지 색 스티커로 분류해 놓는 방법은 정말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소장할 책, 누군가에게 줄 책, 누군가를 주지도 못하겠다 그냥 버릴 책. 이렇게 세가지 색으로 책을 분류해 놓고, 처분을 한다는 것. 나는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일단 사두고 책장에 꽂아두는 사람이다. 얼마 전 폴 오스터 책을 두고 이게 내가 읽은 책인지 읽지 않은 책인지 헷갈리던 적이 있었는데, 유용한 것 같다. 해봐야지. 취미를 많이 만들 것, 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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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것 말고도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백만 가지다. 하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어떻게 하면 더 오래도록 나 자신의 힘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고, 그 결과 불필요한 것들로 향하는 에너지를 오롯이 끌어모아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 60쪽

       올해로 환갑이 된 내 어머니에게 지난 몇 년 동안 생일마다 꽃과 케이크를 선물하고, 사업을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가까이에서 보살펴준 것은 남편이나 딸들이 아닌 어머니의 여자 친구들이었다. 그걸 통해 나는 나와 내 친구들의 미래를 보았다. 인생의 가장 큰 인프라는 돈도 집도 배우자도 애인도 자식도 아닌 동성 친구들이다. 싱글이라면 더욱 그렇다.
    - 68쪽

       우리는 이런 말들에 쉽게 휘둘린다.
       '너밖에 없어, 너 없으면 안 돼, 나 너무 힘들어, 도와줘, 너 이런 거 잘하잖아, 너한테도 도움이 되는 일이야, 정말 이럴 거야?'
       하지만 세상에 나밖에 못하는 일이란 없다. 제안을 수락할 때의 고마움은 잠깐뿐이고, 어쨌거나 네가 하기로 한 이상 네 책임이라며 결과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평가한다. 그때 가서 "나는 하기 싫었는데..." 해봤자 못난 변명밖에 안 된다. 마찬가지로 제안을 거절할 때의 섭섭함도 잠깐이다. 한두 번 거절했다고 해서 영영 일이나 관계가 끊기지는 않는다. 어차피 내가 필요한 사람은 다시 연락을 해오게 되어 있다. 버거운 일을 부탁받아 내내 짜증을 내거나 신통찮은 결과물을 내는 것보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편이 추후 관계에도 훨씬 좋은 영향을 미친다.
    - 92쪽

      조조영화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난 날은 기분이 좋아서 한참동안 거리를 쏘다닌다. 졸음이 싹 달아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산책도 하고, 반쯤은 공적이고 반쯤은 사적인 관계의 사람들을 회사 앞으로 불러내 미팅을 빙자한 티타임을 갖기도 한다. 그런 날은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든다. 한동안은 정상적인 수면 사이클이 유지되어 조조영화를 보지 못한다. 예술영화관과 조조영화관은 내 일상을 이리저리 튕기로 주고받으며 굴러가게 만드는 핀볼 게임의 지렛대인 셈이다.
    - 121쪽

      '이번 생은 틀렸어.'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천하의 빅뱅도 '거울 속의 너'를 향해 '루저,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못된 양아치, 상처뿐인 머저리, 더러운 쓰레기'라고 노래를 부르는데 나 같은 시정잡배야 오죽할까. 한밤에 일어나 흑역사를 떠올리며 이불을 걷어차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사람으로 태어나 이렇게 외로워도 되나 의문이 들고, 모든 사람이 나를 비웃는 것 같고, 짧지 않은 인생에 아무것도 이뤄놓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어쩌면 이런 식으로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게 지긋지긋해서 확 혀를 깨물고도 싶다. 그럼에도 우리가 죽거나 미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영화가 있기 때문이다, 라고 감히 말해본다.
    - 124쪽

       데이비드 러셀 감독은 굳이 따지면 정상의 범주에 들지만 살짝 미친 인물들을 매력적으로 묘사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가 자신의 페르소나인 제니퍼 로렌스와 브래들리 쿠퍼를 공동 주연으로 기용한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닝북>(2012)은 사이코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로맨틱 코미디의 설정 안에 던져 놓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관찰한 작품이다. 남자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눈이 뒤집혀 사고를 치는 바람에 아내와 직장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여자는 남편의 죽음 이후 괴로움을 잊지 위해 회사 내 모든 직원과 섹스를 했다. 현실에서라면 그들의 행동은 추문이 되어 평생 악랄하게 그들을 따라다닐 것이고, 매 순간의 행보를 망쳐놓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조금은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좌절하거나 징징대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를 발견해낸다.
    - 126쪽

      몇 번의 경험 끝에 나는 '긴 여행은 혼자, 짧은 여행은 함께'라는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누군가와 숙식을 함께한다는 건 그 자체로 그 사람을 향하는 하나의 여행이다. 어떤 여행에 집중할 것인가에 따라 우리의 선택은 달라져야 한다. 만일 나의 여정에만 오롯이 집중하고 싶다면 여기 또 하나의 여행을 추가해 혼선을 빚을 필요가 없다. 물론 긴 여행을 홀로 하는 것은 지독하게 외로운 일이다. 때로는 '이 아름다운 것을 혼자 봐야 하다니!' 통탄할 때도 있고, 끼리끼리 다니며 서로 사진 찍어주고 수다 떠는 여행자들을 처량하게 바라보며 친구들을 그리워할 때도 있다. 낯선 도시에서 카페에 모여 앉아 웃으며 식사하는 무리를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한 게 여러 번이다. 쳇, 서울 가면 나도 친구 있다 뭐, 그런 유치한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다음에 누군가와 함께 여행한다면 그때는 더 참고, 더 기뻐하고, 더 의욕을 부려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지, 다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긴 여행을 함께할 수 있을 만큼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이 꼭 맞고, 나의 변덕과 우유부단함과 무기력을 제어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을 발견한 적이 있다면, 그게 여자건 남자건 외계인이건, 아마 나는 이미 그와 결혼해서 이 책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가 싫다'와 '여행이 좋다' 중 나에게는 후자가 더 강렬한 동기이므로 혼자 하는 여행은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느 선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행에는 눈썹도 짐이야."
       맞다. 그리고 관계는 눈썹보다 훨씬 큰 짐이다.
    - 157쪽

    ... 나는 왠지 내 것도 아닌 그 가난이 슬펐다. ...
    - 169쪽

    ... 하지만 둘러보는 것과 머무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큰 차이다. 헤어져봐야 소중함을 아는 연인처럼 서울에는 떠나봐야 보이는 매력이 있다.
    - 223쪽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대개 '하다'와 '되다'를 혼동하는 데서 온다. 어느 독립영화감독을 인터뷰할 때다. 보통은 영화를 하고 싶으면 시험 쳐서 영화과 진학부터 하던데 당신은 무슨 배짱으로 덜컥 월세 보증금 빼서 영화부터 찍었냐고 물었다.
       "그 사람들은 영화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거겠죠. 하고 싶으면 어떤 식으로든 하면 됩니다. 그런데 되고 싶어 하니까 문제인 거예요. 성공한 누군가를 동경하면서요. 당장 내가 가진 걸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도 한심해요. 그들이 가진 것도 그리 대단할 게 없거든요. 좀 잃으면 어때, 인생에 '안전빵'이 어디 있습니까? 정말 이건 안전한 길이다 생각해도 얼마든지 망할 수 있어요. 그럴 바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게 낫죠."
       이것은 내가 잡지기자로 일하며 얻은 말 중 가장 유용한 삶의 지혜다. 그때 나는 아직 누가 밥을 서른 번 씹어먹으라면 열다섯 번쯤은 씹는 척하는 예의 바른 청년이었으며, '거절하는 법'을 배우려고 안달하는 애송이였는데, 이 말이 나를 착한 아이의 길에서 0.1밀리미터 정도 더 벗어나게 해주었고, 조금 더 자유롭게 해주었다. 거창한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당장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 우리를 불만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교통편은 그것뿐이다.
    - 268~269쪽

       이제 와 이런 말해서 미안하지만 사실 당신이 혼자 밥을 먹든 말든, 혼자 놀든 말든, 평생 혼자 살든지 올림픽이 해마다 새 사람과 결혼을 하든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당신이 당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즉 정신적으로 충분히 혼자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비교할 이유도, 두리번거릴 이유도 없다. 남들이 아파트에 산다고 빚내서 아파트를 살 필요도 없고, 한두번 망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주저할 이유도 없고, 애당초 내게는 불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단지 그렇게 사는 누군가가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부러워할 까닭도 없다.
    - 270~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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