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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n foot
    모퉁이다방 2017. 5. 10. 22:48


       어제는 일어나자마자 세수만 하고 투표를 하러 갔다. 새벽 6시에. 두 후보 사이에서 고심을 했는데, 투표소로 걸어가는 동안 마음을 정했다. 동생은 투표소 안에서 오랫동안 서있다가 나왔다. 마지막까지 고심했다고 한다. 일찍 일어난 게 아까워 혼자 상암으로 가서 중고생들 틈에 끼여 조조영화도 보고왔다. 중고생들은 아침부터 조용하게 팝콘을 먹고, 나는 그 틈에서 훌쩍거렸다. 울고나니 개운했다. 어제 먹은 음식으로는 순대, 화덕피자, 떡볶이가 있었는데, 순대는 실패했고, 화덕피자는 맛있었지만 양이 너무 적었고, 떡볶이는 오래 전 냉동시켜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5월의 황금같은 연휴가 가버렸다. 아쉽기도 했지만, 나는 집에 있으면 너무 많이 먹어대는 인간이라 출근을 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긴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나간 절에 조용한 시간에 다녀오고 싶었는데 그걸 하지 못했다.


       어젯밤에는 기다리던 비가 왔고, 오늘 아침 집을 나서니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비록 에코백을 바꾼 탓에 지갑을 집에 두고 와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 집에 돌아왔지만, 다행히도 셔틀버스를 놓치지 않았다. 점심 때부터 생기기 시작한 악한 감정을 메신저로 동료에게 털어놓고 후회를 했고, 말조심을 해야한다 다짐했다. 그리고 아주 옛날 생각이 나 갑자기 식은 땀이 났다. 그때의 나는 너무 힘들고 괴롭고 늘 도망가고 싶었는데, 어제 본 영화의 그 아이는 어떻게 버티어 낸걸까. 생각해보면, 다들 한 고비씩 한 고비씩 넘기는 것 같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으니까.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빌고, 그 용서를 받아주고, 희망을 가져보고. 이것들의 반복인 거네. 아무튼 나는 말조심, 마음조심을 해야한다!


       칼퇴를 했고, 불광천을 걸을까, 궁금했던 그 곳을 가볼까 고민하다 좋아하는 아이스라떼를 사서 근처로 갔다. 결국 라떼를 마시며 걸을 수 있는 곳은 아니란 생각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둘러 나왔다. 그러자 생각치도 못한 출구가 나왔다. 한강 산책로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리하여 늘 걷던 길이 아니라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새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나무도 싱그럽고, 하늘도 어여쁘고, 노을도 맑더라. 표지판도 예뻤다. 달리기를 하는 외국인도, 자전거를 타는 연인들도, 낚시금지구역이라는 팻말을 옆에 두고 낚시를 하고 있는 아저씨들도 눈에 쏙쏙 들어왔다. 오늘은 새 날이니까. 이건 새 길이니까. 오늘 영어강의를 듣는데 이런 말이 나왔다. 버스, 전철, 택시 등 교통수단은 모두 다 전치사 by를 쓰는데, 걷는 것만 전치사 on이라고. on foot. 두 발을 땅 위에 단단하게 디디고 걷는 일. 잘 걷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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