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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거진 라인 4호 - S에게
    서재를쌓다 2016. 11. 29. 23:15




    그는 맨 처음 이곳에 내려 왔을 때,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기억들을 이야기했다. 나이가 많은 편도 아니었기에 서툴렀고, 그래서 가로막히는 막막한 순간이 계속됐다. 지역을 되살리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내야 되겠다는, 어떻게 보면 그리 크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진정성 있게 해나가면서 나 자신에게 가장 떳떳하기 위해선 지금의 묵호를 이해하고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지역을 잘 담아내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그는 보다 가깝게 묵호의 일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통하며 다양하게 지금의 묵호를 그려내고 있는 중이다.

    - p. 33



    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지만 그는 한창 젊었다. 무척 앳된 얼굴에 깜짝 놀라고, 그와는 다르게 묵호에서 스스로 헤쳐나갔던 많은 이야기에 더욱 크게 놀라는 시간이 계속됐다. 젊은 친구가 묵호에 내려와 이런 것들을 해나간다고 했을 때, 막상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벽에 부딪혔을지는 말을 아끼는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크게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이곳에 있는 게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으면 하지만 이곳에서 무언가를 이뤄야겠다는 큰 뜻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무언가를 이뤄야겠다는 큰 뜻은 없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니까 재미있으면 된다고, 무슨 일이든 장난 삼아가 아니라 재미 삼아 하고 싶다는 그는 묵호를 통해 재미있는 삶을 실현하고 있었다. 타자인, 젊은 친구, 예술가. 어쩌면 그는 이 지역에서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지닌 이러한 모습은 오히려 그의 가능성이고, 그가 만들어갈 묵호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 앞에 놓인 수많은 과제를 혼자 힘으로 해결해 나간 것은 아니지만 그와 함께 이 곳의 재미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재미를 알아가는 마을 사람들은 그를 필두로 꽤나 잘 이뤄온 것 같다. 밋밋하던 묵호에 알록달록 색을 그려넣고 있는 그는 이곳 사람들의 삶을 보다 다채롭게 만드는 중이다. 순간순간 서울에 가고 싶을 때도 있다고 얘기했지만, 묵호의 재미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다른 이들에게 더 큰 재미를 전해주는 지금, 이 작업보다 그에게 재밌을 작업이 또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서툴고, 느리더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묵호를 칠하고 있을 그 덕분에 묵호를 알아가고 있는 사람이 점차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그려가고 있는 묵호는 분명 변해가고 있다는 거다.

    - p. 37



    건물 안에 들어가 보면 지하에 여러 방이 나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조각조각 나뉜 공간에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주거 공간이 부족해 사는 게 열악했어도 그때 당시 이들의 삶은 풍요롭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집 한 채가 70~80만 원이던 시절. 광부의 월급은 30만 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만큼 목숨 걸고 모진 일을 하는 이들은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씀씀이가 무척 커서 이 작은 동네에 온갖 메이커 의류들이 즐비했고, 수많은 유흥업소도 성업했다는 해설사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태백이 고기로 유명한 것도 돼지고기가 묵은 때를 씻겨 내려준다는 속설 때문에 광부들이 탄광 일을 마치고 먹은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한편, 그때 당시 태백의 어린 아이들은 탄광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물 때문에 시냇물은 당연히 검은색이라고 생각했다는 웃지 못한 이야기까지. 탄광과 광부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철암은 광부가 있었기에 가능한 도시였다.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전시장은 물론, 갤러리, 그리고 역사관까지 그들의 공간에 만들어놓은 이곳은 그래서 더욱 가슴으로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잘 꾸며놓은 곳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에 의아해서 여쭤보니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고픈 마음이 가장 먼저였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태백과 광부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이 공간의 바람이 퇴색되는 것을 우려하여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해설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리는데, 광산에서 목숨을 잃은 광부들의 이름이 빼곡히 쓰여 있는 공간이 보였다. 1989년까지 태백의 광산에서 순직한 광부는 3,611명이고 지금까지는 4,100여 명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광부들의 10%가 매년 죽거나 다쳤다.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나라의 산업 역군으로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살아갔던 이들의 최후가 죽거나 혹은 살아서도 진폐증으로 고생하는 삶이라니. 우리가 너무도 쉽게 폄하하며 말하는 막장은 우리의 아들딸들을 키울 수 있던 곳이었고, 나라를 발전시켰던 곳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삶이었는지 반문하게 되지만 그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명심해야 할 건 최선을 다해 살았던 광부들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이들의 피과 땀으로 점철된 탄광의 삶을 잊지 않는 것 밖에는.

    - p.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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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원하고 싶은 잡지가 생겼다.

    덕분에 따뜻해졌다.

    덕분에 힘이 났다.

    어디든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다.

    어디든 하찮은 곳이 없다.

    이 이야기들이 나를, 우리를 살게 만든다고, 생각해 보는 시간.

    아,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기차 타고, 눈 내리는 소리 듣고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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