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늦게 도쿄에 도착한 친구가 가장 먼저 알아챘다.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여행이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것까지도 친구는 간파했다. 커다란 공원에 도착해서 친구는 "철아,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너 혼자 여행해. 혼자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괜찮아지면 전화해"라고 등 떠밀었다. 나는 굳어진 얼굴로 나무 그늘 아래에 가서 mp3를 귀에 꽂고 수첩을 폈다. 밤나무 냄새가 너무 지독했는데 그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혼자 떨어져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점점 화를 떠나 보냈다. 두 시간쯤이 지나서야 나는 간신히 회복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와 같이 여행하기에 꽤나 부적합한 인간 부류라는 걸. 이제 진짜 여행은 혼자만 떠나야겠다고.

- 174~175쪽,  김민철 <모든 요일의 여행> 중에서




  

   츄라우미 수족관에 도착했다. 북부 버스투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가이드는 2시간 반 후에 버스에서 보자고 했다. 수족관 앞이 바다였다. 얼마 전에 본 <도리를 찾아서>의 수족관도 그랬다. 물고기들이 수족관에 잠입할 수 있었던 건 수족관 앞이 드넓은 바다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돌고래 쇼는 처음부터 보기 싫었다. 보기 싫었지만, 동생과 함께 이동해야 하니 쇼장 쪽으로 걸어갔다. 계단이 무척 많았다.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가는데 중간 즈음부터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구 솟아나기 시작했다. 계단의 끝에서 동생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 버렸다.





   막내와 나는 무척 다른 사람이다. 엄마의 배에서 자라고 태어나, 삼십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자랐지만 그렇다. 우리 둘은 그걸 잘 안다. 그렇지만 아주 비슷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것 또한 우리 둘이 잘 안다. 우리는 그동안 참 많이 싸웠다. 그리고 참 많이도 화해를 했다. 이번 여행에서, 다르기도 하고 비슷하기도 한 우리 둘은, 첫째날 아침 집에서부터 셋째날 오후 수족관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는 시간, 샤워를 하는 시간, 내가 빗과 아이라이너를 사러 잠시 나갔던 시간을 제외하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다. 막내와 나는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이 비슷할 때도 있지만, 극과 극일 때도 있어 (당연하게도) 어떤 부분에서는 서로를 인내해주었다. 그 날 계단에서 나는 온전히 나 자신만 생각했던 이기적인 아이여서, 내 얘기만 했다. 그래서 막내도 폭발을 해버렸다. 나는 막내가 이번 여행에서 많이 인내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을 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인내하고 있었는데? 너도 그랬다고? 나는 못난 언니여서 티비 속 자비로운 언니들처럼 말만 하면 다 이해하고 품어주질 못한다. 싸우고, 속상해하고, 생각해보고, 그랬을까, 그래,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나 좀 바보같았다, 이런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이해가 된다. 우리는 다툼을 멈췄다. 수족관에서는 따로 다녀보기로 했다. 서로 좋아하는 걸 마음껏 혼자서 해보기로 했다. 두 시간 후에 버스에서 보자고 했다.





   나는 돌고래 쇼를 보지 않고, 수족관 안으로 들어왔다. 이어폰을 찾아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조용하고 고요한 음악을 들으면서 많디 많은 관광객들 뒤로 천천히 걸었다. 어떤 물고기들은 그냥 지나치고, 어떤 물고기들은 한 자리에 서서 오랫동안 들여다 봤다.








  

   유투브 영상에서 보았던 커다란 수족관은 금새 나왔다. 역시나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수족관을 올려다 보다가, 좀더 앞으로 이동해서 벽에 몸을 기대고 서서 물고기들을 올려다봤다. 어쩌면 동생과 다투지 않았다면 그저 커다란 고래상어의 유영에 감탄하며 멋진 사진을 건지기 위해 쉴새없이 셔터를 눌러댔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방금 전에, 이 시간 오키나와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친하고 유일하기도 한 나의 친구인 동생과 싸웠고, 동생의 말에 상처를 입었고, 내가 상처를 주기도 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으니, 이 풍경을 아름답고 빛나는 마음으로 올려다 볼 수가 없었다. 음악을 들으며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가만히 올려다 봤다. 그때가 마침 쇼타임이라, 잠수복을 입은 사람이 수족관 안으로 들어가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수중카메라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랫동안 올려다 보니 커다란 공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만 같던 물고기들은 같은 곳을 왔다갔다 했다. 아무리 세계에서 몇 번째로 크다한들 이곳은 수족관인 것이다. 왔던 길을 반복해서 왔다 갔다하는 고래상어를 봤다. 색깔이 화려한 열대어들에게도 모험은 없었다. 왼쪽과 오른쪽, 오른쪽과 왼쪽, 위와 아래, 아래와 위만 있었다. 그들이 보는 풍경도 늘 같겠지. 그렇게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한 물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고래상어도 아니고, 화려한 빛깔의 열대어들도 아니고, 깜찍하게 자그마한 물고기 떼도 아닌. 크기도, 빛깔도, 생김새도 그저 그런, 평범한 물고기. 한번 보니 계속 보였다. 그 아이만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수족관 안을 느리게 유영하는 모습. 이 공간에서 나처럼 너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나는 이 거대한 수족관이 깨어지는 상상을 했다. 물고기들이 신나는 표정으로, 이보다 더 신날 수는 없는 헤엄을 치며 바다로 탈출을 하는 상상을 했다.





   바다거북관은 자그만했다. 외부의 공간을 살짝 둘러보고 지하의 공간으로 내려왔다. 공간이 작고, 사람들도 거의 없어서 바다거북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족관 바로 앞에 있는 턱에 앉아 헤엄치는 거북을 가까이서 그리고 비슷한 눈높이에서 바라봤다. 나는 거기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편안했다. 예전에 메도루마 슌의 소설을 읽고 어둑어둑해진 남쪽바닷가에 앉아 선선해진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다거북의 어렴풋한 움직임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 곳에서 그 소원의 1할 정도 이룰 셈이다. 몸에 이끼가 가득한 바다거북을 따라 걸어보기도 하고, 가만히 그들의 느릿한 움직임을 들여다보다 보니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 앉았다. 내가 잘못한 거였어. 그 말을 왜 꺼내 가지고. 진심으로 사과할 마음이 생겼다. 이 바다거북은 몇살이나 되었을까. 어떤 생을 살아왔을까. 어떤 생을 살아갈까. 수족관에 갇힌 건 매한가지인데, 이상하게 바다거북의 삶은 궁금했다. 꼭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입구에서 동생을 만났다. 비가 조금 내리기 시작했다. 쭈빗쭈빗거리며 잘 보았냐고 물었다. 응, 재밌게 보냈어, 동생이 말했다. 언니는? 나도 좋았어, 라고 말했다. 서먹서먹하게 버스를 탔고, 이동하는 동안도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은 불편했다. 투어의 다음 장소는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파인애플 농장이었다. 가이드는 시식도 해보면서 구경을 잘 하고 나오라고 했다. 이 곳에서 처음의 만좌모와 두 번째의 코우리 대교보다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우리는 서먹하게 파인애플 농장을 걸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파인애플 나무였다. 저기 파인애플 나무 옆에서 사진 찍을래? 아니야, 괜찮아. 언니 찍을래? 아니야, 괜찮아. 이 작은 파인애플 농장을 구경시켜주는 차가 있었다. 네 명 정도 탈 수 있는데, 자동으로 움직이는 차였다. 파인애플 차 탈래? (유료였다) 아니, 돈 아까워. 그래, 타지 말자. 우리는 파인애플 나무과 파인애플 나무 사이를 걸었다. 온통 파인애플 뿐인 파인애플 농장. 도대체 여기서 뭘 하라는 걸까? 시간이 많이 남아 입구 쪽에 커피를 파는 곳이 있었던 걸 기억해 내고, 그리로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커피가게는 없고 이상한 상점들이 즐비한 건물에 도착했다. 파인애플 농장 안에는 파인애플 상점 모양을 한 면세점이 있었다. 아, 이제야 이해가 됐다. 이 곳은 이를테면 선택관광을 하는 곳이었다. 관광객들의 지갑이 열려야 하는 곳. 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곳. 우리는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시식만 했다. 파인애플로 정말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더라. 주스, 빵, 와인 등등. 나하에서 샀던 오리온 맥주 티셔츠도 발견했다. 아, 여기가 더 싸네. 진짜네. 몇백원 정도니까 괜찮아. 응. 여권 보여주면 할인도 될텐데, 아쉽긴 하다. 응. 말린 파인애플도 있었다. 이거 사갈까? 엄마가 좋아할텐데. 그런데 좀 비싸다. 그런데 엄마는 우리 오키나와 온 거 모르는데. 그래, 비밀이니까 사지 말자. 말린 파인애플은 그대로 진열대 위에 올려졌다. 그렇게 우리는 파인애플 농장에서 화해를 했다.





   김민철의 저 글 뒤는 그렇지만 다음 여행을 혼자 갈 순 없었다고, 신혼여행을 혼자 갈 수 없지 않냐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나도 여행의 끝에 생각했다. 혼자 하는 여행도 좋지만, 늘 혼자 다니고 싶진 않다고. 더 많은 사람과, 더 다양한 여행을 하고 싶다고. 누군가 함께 가자고 하면 망설이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떠나자고. <모든 요일의 여행>의 김민철처럼, 그 사람이 맥주기행을 함께 떠날 수 있는 맥주를 좋아하는 남자면 더더욱 좋고. 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