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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도 걸어도
    극장에가다 2015. 9. 24. 23:38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월요일에 친구와 명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창가에 서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더니, 갑자기 배가 이렇게 나왔어, 하고 배를 가리켰다. 정말 친구의 배는 지난 주보다 몰라보게 나와 있었다. 우리는 커피쉐이크와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역시 CGV. 광고가 10분동안 이어졌다. 이럴 거면 7시 40분 시작이라고 했어야지. 나란히 앉아 광고를 보고 있는데, 친구가 말했다. 광고소리에 아가가 발을 찼다고. 나는 친구의 배에 얼른 손을 올렸는데, 수줍음이 많은 녀석인가 내게는 들려주질 않았다. 나는 <걸어도 걸어도>를 아주 슬프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의외로 재미난 구석이 많은 영화였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 만큼 슬프지 않았다. 내가 변한 건지, 영화가 변한 건지. 영화가 변했을 리가 없으니 내가 변했겠지. 나이를 먹는 건 이런 건가 보다. 그날의 영화와 오늘의 영화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 그래도 여전히 눈물은 났다.

     

       우리의 계획은 영화를 보고 성시경 맛집으로 소개된 을지로 순대국집에 가서 순대국을 먹는 거였는데, 그래서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택시까지 탔는데, 순대국집은 셔터가 깔끔하게 내려져 있었다. 사실 오늘의 주는 영화보다 순대국이었는데. 아쉬워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걸었다. 을지로 입구에서 친구가 버스를 타니 일단 걷다가 괜찮은 밥집이 나오면 먹고 또 걸어가자고 했다. 친구는 임산부 일일교실 같은 곳에 나가볼 생각이라고 했다. 의외로 재미있대, 라고 친구가 말했다. 그러다 순대국집을 발견했다. 십상치 않은 포스의 가게라 맛집이라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10시 마감이란다. 10시 10분 전이었다. 그래서 순대는 없단다. 아, 우리는 오늘 정말 순대를 먹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감자국을 먹었다. 맛있게 먹고 나와 을지로 입구 쪽으로 걸었다. 친구가 말했다. 애기 이름을 지어봤어.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 될 가능성이 많지만 친구도 이름을 지어봤다고 했다. 서우. 남자아이지만 친구는 중성적인 이름이 좋단다. 상서로울 서에 비 우. 친구는 겨울에 출산 예정인데 겨울에 오는 비를 생각했단다. 겨울에 비가 온다는 건 곧 봄이 다가올 거라는 뜻이니까, 라고 친구가 말했다. 신비로운 겨울의 비.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친구가 지은 이름의 따듯한 기운에 대해 생각했다.

     

        화장실에 한번 들르고 정류장에 도착했다. 친구의 버스가 바로 온다. 자리도 넉넉하게 있다. 안전벨트 꼭 하고 있어, 라고 말하니 친구가 다음 번에 만날 때는 배가 더 많이 나와 있을 거야, 라며 손을 흔든다. 친구는 점점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 다음 번에는 아가와 정식으로 인사를 해봐야겠다. 그러면 내게도 발을 한번쯤 힘차게 차 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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