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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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 신경숙 작가님께서재를쌓다 2007. 9. 6. 12:04
신경숙 작가님께. 대학교 3학년때였던 거 같아요. 국문과에서 신경숙 작가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벽보를 보고는 그 날을 기억해뒀다가 강의실에 들어가 앉아 있었죠. 그 날은 친구들이 모두 다 약속이 있어서 혼자 우두커니 국문과 학생들로 꽉 찬 강의실에 앉아 있는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작가님이 도착하시질 않으셨어요. 과대표가 지금 오시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고서도 한참이였죠. 그 날의 기억이 또렷하다면 그 강의실에 있던 백여명의 학생들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어요. 그리고 작가님이 허겁지겁 들어오셨죠. 자리에 앉으시자마자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며 연거푸 사과를 하셨죠. 제게 휴대폰이 하나 있는데, 그 휴대폰을 거의 안 써요. 받지를 않고 걸때만 가끔씩 쓰는데, 로 시작하는 말씀이었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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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리본의 시절 - 존재의 뒤편으로 내려지는 일이 없기를서재를쌓다 2007. 9. 2. 16:07
분홍 리본의 시절 권여선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동네에 생긴 조그마한 주점은 통영에서 직배송한 싱싱한 해산물들을 내어놓습니다. 어느 날 주점 앞을 지나가다가 원목의 기둥 위에 커다랗게 써져 있는 '활우럭구이+생맥주, 환상적인 조합'이라는 메뉴를 보고 동생과 입맛을 다지며 들어가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바삭하게 구워지는 생선구이를 보면서 생맥주 500cc를 나란히 마셨습니다. 생선의 살점과 맥주의 조합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제법 통통해보였던 생선의 살점이 숯불 위에서 바삭하게 구워지면서 날씬해져버리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점점 줄어가는 살점을 아쉬워하며 맥주를 들이키고 있을 때, 주점의 주인이 와서 생선을 뒤집어주며 말합니다. 머리에 붙어 있는 살이 제일 맛있으니 꼭 챙겨먹어요. 나는 그만 권여선의 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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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기르다 - 고독하기 때문에 읽는다서재를쌓다 2007. 9. 1. 16:38
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내게는 소설보다도 작가의 말을 더 기다리게 만드는 작가가 있다. 아마 을 읽었을 때였을 거다. 은어가 강물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 작가의 말이 있었다. 세세한 구절들이 떠오르진 않지만, 나는 한 장 남짓의 소설가의 시같은 작가의 말을 읽고는 책을 그냥 덮어버리지 못하고 그 구절들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 뒤로 윤대녕의 예의 그 감성적인 글의 촉감들도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작가의 말을 남겼을까 기대하면서 읽게 된다. 그리고 소설을 끝나기 전에는 절대 뒤로 넘겨 먼저 읽지 않는다. 작가의 말은 소설이 끝난 다음에 읽는 것이 가장 빛나므로. 사실 이러면서도 그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내가 읽은 그의 글들은 , , 그리고 약간의 실망을 금치 못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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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즐겁게 글을 쓰는 방법서재를쌓다 2007. 8. 22. 16:00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김영사 스티븐 킹의 소설은 한 권도 읽지 못한 채 를 읽었다. 원작으로 한 영화는 몇 편 보았지만. 작법책을 한 권 읽고 싶었는데 딱딱해서 몇 페이지 넘기다 포기해버릴 책이 아니라 재밌어서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으면 싶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는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스티븐 킹이 유명한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자신의 '이력서'. 어려서부터 얼마나 글쓰기를 좋아했는지, 신문을 발행한 일이나, 끊임없이 소설을 써서 잡지에 보내 잡은 거절쪽지를 보관한 벽 한쪽의 커다란 못 이야기며, 대학졸업 후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절, 그의 든든한 지원자 아내의 존재, 교사생활동안 꾸준히 썼던 소설 이야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전까지의 에피소드들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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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 아슬아슬한 우리들의 젊은 날서재를쌓다 2007. 8. 19. 02:15
안 읽으신 분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 퍼레이드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은행나무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숙을 했다. 내 첫번째 하숙방은 학교에서 최대한 가까운 반지하 하숙방이었는데, 미처 하숙방을 구하지 못한 내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었다.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그이상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내 친구의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였는데, 우리가 같은 학교에 같은 학부에 합격했다는 걸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너무 활발해서, 그리고 너무 얌전해서 서로를 나쁘다고만 생각했던 우리가 친구가 되던 순간이었다. 친구의 하숙집에 방이 마침 하나 남아 그 곳으로 내가 들어갔다. 내 룸메이트는 약대를 다니는 4학년의 언니였다. 나는 생전 처음 다른 사람과 방을 함께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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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온천 - 차가운 몸을 녹이는 순간서재를쌓다 2007. 8. 16. 16:18
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Media2.0 일본 노천 온천에 대한 환상이 있다. 코 끝에 닿는 바람이 지독하게 차가운 겨울 날, 산이 있고 나무들이 보이는 노천 온천으로 들어가 차가운 몸을 따뜻한 물에 녹이는 순간. 아, 이 순간 정말 행복하다, 라고 느끼는 순간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거다. 아니면 초저녁, 밤하늘의 별이 하나 둘씩 반짝이기 시작해도 좋을 거 같다. 생각만해도 행복해지는 그 기분. 이 보고 싶었던 이유는 순전히 이 일본 노천 온천에 대한 환상때문이었다. 물론 요시다 슈이치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했고. 아직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밖에 읽지 못했는데, 그의 사소하고 스쳐가는 듯한, 고요하고 가끔은 서글픈, 덤덤한 공기의 이야기들이 좋다. 어제 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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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 이런 세상이라서 미안해서재를쌓다 2007. 8. 12. 20:54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냉장고로 가서 물통을 꺼내 커다란 물컵에 가득 따라서 벌컥벌컥 마셨다. 일요일 저녁의 집 안이 너무 조용한 것만 같아 라디오를 켰다. 그리고는 어젯밤에 널어놓은 빨래를 하나씩 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보니 밖이 주홍빛이다. 아니, 정확한 색을 대지 못하는 오묘한 빛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빛이 그렇다. 그러다 갑자기 1분동안 세차게 비가 내린다. 황석영 선생님을 한번 뵌 적이 있다. 학교에서 강연회가 있었는데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세세하게 기억 나진 않지만, 나는 그가 참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키도 컸고, 체격도 컸다. 목소리도 컸고, 웃음도 컸고, 그가 하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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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피델리티 - 귀가 즐거운 소설서재를쌓다 2007. 8. 10. 14:22
하이 피델리티 닉 혼비 지음, 오득주 옮김/Media2.0 나는 그 아이랑 헤어진 후 어떻게 할 지를 몰랐다. 그래서 술을 마셨고, 매일 울어댔고, 내 생활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때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같은 하숙집에 있었던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며 내 넋두리를 하는 거였다. 그럴리야 없어. 니가 더 잘 알잖아. 얼마나 나한테 잘해줬던 아이였는데. 한순간 이렇게 모질게 변해버릴 순 없는거다. 친구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여줬고 술잔을 내밀어줬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항상 비가 왔다. 그 여름, 내가 흘린 눈물만큼 많은 비가 왔다. 가끔 그 아이한테 전화를 했다. 그 아이는 받지 않거나, 받게 되면 화를 냈고, 나는 그런 그 아이가 너무 믿어지지 않아서 전화기에 대고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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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 이광두, 이광두 어디간거야?서재를쌓다 2007. 8. 4. 03:00
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휴머니스트 몇달 전, 푸른숲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공지영 작가와 함께한 상해 대담 기사에 곧 위화의 새 소설이 한국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식이 없어서 언제쯤 출간되느냐고. 푸른숲에서는 이번 책은 출판사 휴머니스트 사장님에 대한 우정의 표시로 그곳에서 7월 안에 출판될 거라는 답변을 받았다. 올해 봄, 나는 위화의 새 이야기가 너무 그리웠고 8월이 오기 전에 다 읽어버렸다. 책장이 너무나 빨리 넘어져서 다 읽어버렸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위화는 내게 봄과 여름의 경계선을 닮은 작가다.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된 계기가 된 연극 '허삼관 매혈기'도 그때 만났고, 연극이 너무 좋아서 원작을 찾아 읽었고, 그 원작이 너무 좋아서 다른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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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 모두들 잘 살고 있습니까?서재를쌓다 2007. 7. 30. 00:13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릴리 프랭키의 를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이가 든 후에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느 정도의 눈물샘을 자극하겠다는 작정인거다. 더군다나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소설이였고. 그래서 이번 릴리 프랭키의 새 책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망설였다. 실제로는 이전에 집필했던 단편들이고 에서 너무 눈물을 빼버려서 이번 책에서 왠지 실망할 것만 같았다. 책을 읽고 난 후, 반반이였던 것 같다. 괜찮았다에 반, 역시 에서 너무 많이 기대했었구나 반. 는 6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대마농가의 신부'에서는 도쿄의 여자 다에코가 대마를 생산하는 어느 농촌의 대부호 기이치로와 선을 보는 이야기다.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