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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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서재를쌓다 2015. 3. 29. 20:14
에드가 말했다. "고대의 그리스인들은 죽으면 우리의 영혼이 여행을 떠난다고 믿었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려면 삼천년이 걸리는데 돌아왔을 때 자신의 몸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남아 있어야 영혼이 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래서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그 정도로 보존에 신경을 쓰진 않아요." 염색체도, 미토콘드리아도 없는. "삼천년이라, 그리고 돌아온다고요." 그녀가 말했다. "그들에 따르자면 그렇죠." 그가 빈잔을 내려놓고 이제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니나가 말했다. 그리고 서둘러서 물어보았다. "영혼같은 걸 믿나요?" 그는 손으로 식탁을 누르며 잠시 서 있었다. 작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젓더니 그는 "그래요." 라고 대답했다. - p.210 '위안'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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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극장에가다 2015. 3. 18. 22:40
을 봤다. 이 영화를 를 보기 전에 봤으면 좋았을 걸. 가 너무 강력해서 을 보고는 다른 사람들의 평처럼 그렇게 커다란 어떤 것이 느껴지질 않았다. 나는 원래 천만 영화도 초반에 보지 않으면 보지 않는 편이다. 이상하게 남들이 그렇게 많이 보고 좋다하는 영화는 보기가 싫다. 보기도 전에 나도 좋아해야 할 것 같은 강제적인 느낌도 들고, 보고 정말 좋았는데 정말 좋은 그 느낌이 왠지 휩쓸리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래서 놓친 영화들이 꽤 있다. 은 아카데미에서 상도 탔고, 평도 워낙들 좋으니 이미 영화를 보기 전부터 천만 영화를 천만의 한국인이 본 뒤에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니 영화는 무조건 개봉주에 봐야함. 뭐 사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마음에 쏙 들었으면, 완전 좋은 영화, 내 인생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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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병든 자서재를쌓다 2015. 3. 16. 07:21
시인은 인도에 갔다. 시인의 꿈이었다. 인도에 가는 일이. 시인은 인도에 가서 보고, 생각하고, 보고, 생각했다. 지난 일들에 대해 생각했고, 지금의 일들도 생각했고, 때로는 앞으로의 일들도 생각했다. 시인은 돌아왔고, 얼마 뒤 다시 인도에 왔다. 시인은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한 해 만에 다시 인도에 왔다." 김연수의 추천글을 읽고, 출간되었을 때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인데, 어느 날 다른 책들과 함께 주문해 놓고는 가만히 책장에 꽂아두었었다. 2015년 겨울 어느 날, 가만히 꽂혀 있는 하얀 책등을 보게 됐고, 읽을 때라고 생각했다. 기승전결의 여행기를 계속 읽다가, 기승전결이 없는 시인의 여행기를 읽고 있으니 처음에는 어지러웠다. 무슨 풍경인지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러다 삼분의 일 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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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5 가을과 겨울 사이의 일들모퉁이다방 2015. 3. 14. 20:26
오늘 아침에 미용실에 간다고 집을 나섰는데 완전 봄날씨였다. 이제 정말 봄인가 보다. 공기가 달라졌다. 마침 화이트 데이라 경리단 길에는 꽃을 든 커플들이 득실득실. 봄이 되어, 지난 가을과 겨울 사진을 들춰보았다. 지난 가을과 겨울에는 사진을 많이 찍질 못했다. 봄에는 놀러도 가고, 사진도 많이 찍어야겠다. 일본 여행 다녀와서 친구와 만나 마셨던 낮술. 동생은 이 날 저녁, 베트남으로 떠났다. 가을에 서촌도 걸었다. 곧게 물든 가을 저녁 하늘. 퇴근길. 다른 각도의 퇴근길.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 간 날. 특이했던 라떼 잔. 일리 커피. 집 아래에 있는 맛있는 베트남 쌀국수 집에서 갑작스런 월남쌈. 양 많아서 남겼다. 추워지니 커피맛도 좋았다. 가을에 엄마가 왔다. 장어 먹고 싶다고 해서 동네 맛집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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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극장에가다 2015. 3. 14. 01:07
금요일. 퇴근을 하고, 막히는 자유로에서 한참을 머문 후 월드컵경기장에서 내렸다. 보려고. 이번주가 이 영화 개봉주라는 걸 이동진 블로그에 들어간 뒤 알았다. 티비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고 개봉하면 봐야지 했었는데, 오늘 점심시간에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이동진의 극찬과 함께 별 다섯개가 있었다. 별 다섯개라니. 그 정도야? 당장 봐야겠다 싶었다. 영화 시작 시간을 모른 채 극장에 갔는데, 극장에 도착하니 영화 시작 15분 전이었다. 늘 5관의 작은 상영관에서 하는 영화를 주로 보는데, 는 무려 1관이었다. 1관은 무지 큰 관이다. 관객들도 많았다. 나는 앞에서 세번째 줄에 앉았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준 장면은 이 영화의 대략 3분의 2되는 지점의 장면이었다. 흠. 이 영화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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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냐모퉁이다방 2015. 3. 12. 22:19
올해도 새 다이어리에 25개의 이루고 싶은 일을 생각해 빙고칸에 채워뒀다. 그 중 하나가 라자냐 만들기. 왜 라자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는데, 올해는 요리를 좀 더 많이 하자는 의미였던 것 같다. 사먹는 걸 줄이고,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자는 결심. 이번 주에 영화 를 끊어서 매일매일 조금씩 봤는데, 거기에 하나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재료를 따고 손질하고 다듬어서 지지고 볶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하나의 요리를 먹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이는지 지켜본 셈인데, 이상하게 그게 귀찮아보이기 보다 당연하게 느껴졌다. 하얗고 키가 큰 단발머리 여자아이가 볼이 빨개진 채로 빵을 굽고, 잼을 만들고, 오리를 죽이고, 고구마를 말리는데, 그 몸의 움직임과 과장되지 않은 먹방 장면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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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서재를쌓다 2015. 3. 7. 10:13
지난 크리스마스 밤, 잠실의 공연장에 있었다. 옥주현이 출연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뮤지컬을 보러 갔다. 동생이 표가 생겨 따라간 거였고, 별 기대는 없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무엇보다 루이 16세가 궁금해졌다. 프랑스에 혁명이 일어나고 왕권이 짓밟힌 상황에서 그(들)의 도주 계획이 실패하고, 감금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일과를 마친 루이 16세는 자신의 초라한 의자 위에 앉아 노래했다. 그냥 평범한 대장장이로 태어났으면 좋았다고, 자신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고 싶었다고.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도 좋았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참수당할 때. 그녀는 의연하게 단수대로 올라갔다. 더이상의 노래나 대사는 없었다. 단수대에 누워 목을 대었고, 무대는 짧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붉게 물들었다. 어쨌든 '그'가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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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모퉁이다방 2015. 3. 4. 21:26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마산에 있었다. 엄마가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자궁의 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검사를 하니 혹의 위치가 혈관 바로 옆에 있어 위험할 수 있단다. 엄마는 수술 직전에 그 사실을 알았다. 내가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하니 그게 잘 되지 않는다고, 니가 내가 되어도 그럴 것이라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빠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보호자 빨리 들어오라고 하는 바람에 가운을 입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엄마는 누워 있었고, 주위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서 있었다. 의사는 화면을 보여줬다. 커다란 혹이 화면 가득 꽉 차 있었다. 지금 이걸 제거할 겁미더. 위치가 아주 안 좋아요. 위험할 수 있는데, 한번 제거해보겠습미더.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대기실에서 피곤해 보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