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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
    모퉁이다방 2015. 3. 4. 21:26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마산에 있었다. 엄마가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자궁의 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검사를 하니 혹의 위치가 혈관 바로 옆에 있어 위험할 수 있단다. 엄마는 수술 직전에 그 사실을 알았다. 내가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하니 그게 잘 되지 않는다고, 니가 내가 되어도 그럴 것이라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빠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보호자 빨리 들어오라고 하는 바람에 가운을 입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엄마는 누워 있었고, 주위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서 있었다. 의사는 화면을 보여줬다. 커다란 혹이 화면 가득 꽉 차 있었다. 지금 이걸 제거할 겁미더. 위치가 아주 안 좋아요. 위험할 수 있는데, 한번 제거해보겠습미더.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대기실에서 피곤해 보이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딸이 서른 세살에 결혼해 이제 서른 넷인데 임신 오개월 째란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들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딸이란다. 노산이라 걱정이라고 하시길래, 요즘은 노산에도 애 잘 낳더라고 걱정마시라 했다. 아가씨는 나이가 어떻게 됐미꺼, 하시길래 딸보다 나이가 많다고 했다. 아이고야, 하신다. 결혼은 했습미꺼, 하시길래 안 했다고 했다. 또 아이고야, 하신다. 아주머니는 결혼을 빨리 해야 될낀데, 하시면서 자신에게도 결혼 안 한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대예. 빨리 결혼해야 되는데. 검사를 마친, 아들을 임신한 줄 알았던 임신 오개월의 딸이 나왔고, 아주머니는 어머니 수술 잘 될 낍미더, 하면서 대기실을 떠났다.  

       

       엄마의 수술은 잘 끝났다. 작은 혹이 두 개 더 있었는데 그것까지 말끔하게 제거했다고 의사는 호탕하게 말했다. 아줌마 수술은 좀 힘들었습미더. 엄마는 오인실에 입원했는데, 엄마의 옆으로 자궁 근종 수술을 한 아주머니가 있었고, 건너편에는 아이를 낳은 산모가 있었다. 어려보였는데, 내가 있는 동안 남편이 한번 와서 미역국을 데워주고 갔고, 시어머니이신 것 같은 분이 한번 왔다 갔다. 간호사가 자주 움직여야 아프지 않다고 하는데, 잘 움직이질 않았다. 커튼을 쳐놓고 계속 누워만 있는 것 같았다. 부축하는 걸 도와줘도 고맙다는 인사도 못할 정도로 아파했다. 저녁에 전체불을 꺼도 되냐고 물으니 네, 하면서 개인등을 켰다. 그 자리 커튼만 환해졌다. 엄마 침대 옆에 보조 침대를 꺼내 놓고 자고 있었는데, 엄마가 깨웠다. 새벽 세 시였다. 새벽에 아이를 낳은 산모가 병실로 들어왔는데, 남편과 간호사 뿐이라 산모를 옮기는 데 손이 더 필요했다. 나는 비몽사몽 일어나 수술용 침대에서 병실 침대로 옮겨지는 산모의 다리를 잡았다. 새 산모의 남편은 밤새 곁에 있었다. 아침이 되자 친정 어머니인지 시어머니인지 가족들이 왔다. 오전이 되자 한 무리의 친구들도 왔다. 옆옆 산모의 커튼이 화요일에는 더 단단히 닫혀 있었다.

     

       그러니까, 화요일 303호 병실에는 네 명의 환자가 있었다. 두 사람의 자궁은 제 기능을 다하고 쇠락해 가는 중이었고, 두 사람의 자궁은 막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킨 참이었다. 나는 마침 생리 중이었다. 그 곳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기분이 묘했다. 한 때 내게 전부였던 곳. 수개월 동안 헤엄치면서 밥 먹고, 놀면서 '나'를 만들어가던 곳. 엄마의 그 곳이 이제는 병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빈 침대가 있어 그 곳에서 자도 되는데도, 엄마 옆에 누워 잤다. 정확하게는 엄마 아래. 불편한 지도 몰랐다. 푹 잤다.

     

       월요일에는 아빠랑 밥을 두 번 먹고, 화요일에는 혼자 밥을 한 번 먹었다. 화요일 아침, 커피를 뽑아 마시려고 1층에 내려가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길을 건넜다. 어제 아빠랑 같이 밥을 먹었던 식당에 가서 가자미 미역국을 먹으려고 했다. 무정한 식당은 한 명은 안된다고 했다. 빗속을 헤매다 운동화는 젖고 으슬으슬 추워진다는 느낌이 들 즈음 장어국밥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장어국밥 한 그릇에 오천원. 주인 할아버지는 물을 올려다주며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내 고향을 말했다. 할아버지는 방긋 웃으며, 동향이라고 반가워 하셨다. 장어국밥은 그리 진하진 않았지만 따뜻했다. 메뉴판을 보고 있으니 도쿄의 장어덮밥집 생각이 났다. 여기도 존 레논이 한 번 와 주었으면 존 레논도 즐겨먹은 장어구이집이 되는 건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국밥을 먹었다. 맞은 편 벽에 커다란 동양화가 걸려 있었는데, 학이 많았다. 국밥을 먹으며 한 마리, 한 마리 세어보니 모두 열 일곱 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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