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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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출한 여자극장에가다 2014. 1. 28. 22:04
일요일이었고, 복층에 있었다. 내가 복층에 있는 이유는 자거나, 읽거나, 보는 것. 이후로 복층에서 마음 붙이고 이어보는 드라마가 없었다.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얼마 못 보곤 했는데. 그냥 누워 있다 네이버 검색하다 우연히 봤는데, 대박! 완전 재밌다. 박희본. 얘는 누구지? 에서 시작해서 낯익은 얼굴들도 보이고, 각 회마다 다른 감독이네 그러는 사이 6화가 끝났다. 1화가 10분 남짓이라 금방 볼 수 있다. 출출한 여자의 이름은 제갈재영. 32살에 여행사에서 근무한다. 얼마 전에 거의 무명에 가까운 개그맨 남자친구랑 헤어졌다. 그에겐 단 하나의 유행어가 있었다. 그녀의 요즘 즐거움은 오직 퇴근 후 먹는 음식. 비밀번호까지 다 외워 주인이 있든 없든 번호 누르고 막 들어오는 친구 우정과의 맥주를 곁들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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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린디합을서재를쌓다 2014. 1. 27. 22:48
언니가 그랬다. 손보미 읽어봤니? 내가 아직이라고 했고, 언니가 말했다. 한번 읽어봐. 이상해. 읽어보면 아마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거야. 손보미의 첫 소설집을 읽었다. 그때 언니의 말이 생각났다. 정말 희안하게도, 신기하게도 그때 언니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서 이상하다는 말.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내 경우에는 좋은 쪽으로 저울의 바늘이 좀 더 많이 가 있다. 동생이 얼굴에 자그마한 혹이 나 수술을 했는데, 평일에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같이 갔다. 동생이 수술을 하는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했다. 아침을 못 먹은 터라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혼자 뭘 먹을 수가 없었다. 수술하는 동생에 대한 배신, 따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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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홍게여행여행을가다 2014. 1. 20. 22:04
이번 짧은 여행 후에 깨달은 것. 서울 경기를 벗어나는 여행은 적어도 하루 자고 올 것. 시간의 여유가 없으니 많이 돌아다닐 수 없었다. 해가 지니 집에 갈 시간이 걱정되고. 이 년 만에 함께 떠난 대게 여행. 대게 여행이라고 이름 붙이고 갔지만, 사실 대게는 너무 비싸 먹을 수가 없었다. 속초홍게여행, 이라고 하자. 포항을 가고 싶었는데, 이동시간이 너무 길어 속초로 갔다. 먹고, 걷고, 바다 보고, 먹고, 또 걷고. 그렇게 셋이서 일요일을 보냈다. 하루 자고 오는 거면 계획했던 휴휴암에 갔을 텐데. 하루 자고 오는 거면 낙산사에도 다녀왔을텐데. 하루 자고 오는 거면 멋이 없는 대포항에서도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네, 우리에겐 내일이 있잖아, 했을텐데. 하루 자고 오는 거면 택시 아저씨 말대로 조용하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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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호른극장에가다 2014. 1. 18. 22:14
낮잠을 자고 일어나 샤워를 했다. 갑자기 영화를 봐야겠단 생각이 들어 시간표를 부랴부랴 검색하고 지하철을 탔다. 6시 15분에 시작하는 네덜란드 영화 . 잔잔하게 마음을 적시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좀 달랐다. 굉장히 명확한데,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 영화였다. 돌아올 때는 걸어왔다. 처음엔 바람이 매서웠는데 걸다보니 따뜻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찾아본 영화 관련 기사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누군가를 꼭 껴안아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영화에는 이미 삶에 찌들어 더이상 변화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자신을 가두고 있던 것을 깨뜨리고 나오는 순간의 아름다움이 뭉클하게 담긴다." (씨네21) "불편한 유머코드-이상한 매력-왠지 모를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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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포크무대를보다 2014. 1. 18. 21:24
매진이 된 뒤에 공연 소식을 알았다. 혹시나 해서 대기 댓글을 남겨뒀는데, 하루 전에 연락이 왔다. 원래는 J씨의 청첩장을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었는데, 정말 보고 싶었던 공연이어서 양해를 구했다. 요즘 계속 듣고 있는 음반이 강아솔 2집과 이아립 4집. 둘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어서 기대했던 공연. 금요일 밤, 홍대의 한 공연장에 혼자 앉아 그녀들의 노래를 차례차례 들었다. 강아솔-시와-이아립-합동무대 순서였다. 강아솔은 노래는 솔직하고 잔잔한데 멘트들은 귀여웠다. 시와는 표정으로 행복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무대였다. 이아립은 정말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이번 4집의 노래들은 질리지가 않는다. 그런데 역시 나레이션의 오글거림은 적응이 안 된다. 흐- 흠. 강아솔의 노래들이 특히 좋았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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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서재를쌓다 2014. 1. 16. 20:15
사실 표지에 반했다. 잘 지은 밥에 명란젓 한 쪽. 진짜 맛있어 보인다. 제목도 . 재미나게 읽었다. 여행 에세이를 읽고 싶은데, 읽다 보면 실망스러운 책이 많았다. 사진만 너무 많거나, 감성적이기만 한 책. 뭔가 정보와 감성이 섞인 여행책을 읽고 싶었는데, 이 책은 재미났다. 일본 규슈의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쓴 책인데, 그 음식들의 역사를 함께 살펴본다. 이 음식이 어찌하여 일본 땅에 뿌리내려 사랑을 받고 있는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그 음식의 맛집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추천사에서 요리사 박찬일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일본행 비행기를 버스처럼 타고 다니느라 집 몇 채를 날려 먹었다는 소문도, 그를 앞세우고 가면 오직 손으로 모든 걸 말하는 쇼쿠닌들을 친구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는 관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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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만의 진실서재를쌓다 2014. 1. 16. 19:10
어제 나는 홍대 벨로주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친구가 김형경 작가와의 만남에 당첨되었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갔다. 시작 시간에 거의 촉박해 도착했더니 앞자리가 비었다며 앞자리에 앉겠냐고 했다. 친구가 신나했다. 친구는 김형경을 정말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부담스러웠지만 앞자리 제일 중앙자리에 앉았다. 사실 그냥 그런 거였다. 친구가 가자고 해서 갔고, 앞자리에 앉자고 해서 앉은 것. 나는 끝나고 뭘 먹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시원한 생맥주를 먹는 게 좋겠지. 뜨끈한 국물도 좋을텐데. 이런 생각 뿐이었다. 제일 앞자리의 중앙 자리가 부담스러웠다. 7시 40분에 시작한 행사는 9시 30분 정도에 끝났다. 두 시간 여 진행된 행사. 임경선이 함께 나왔고, 초대된 여러 독자들의 고민들을 듣고 두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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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서재를쌓다 2014. 1. 11. 22:30
'2013년 11월의 우리, 김연수'라는 연두색 싸인이 있는 책. 다른 곳에서 먼저 읽었던 소설은 읽지 않았다. 깊은 밤 기린의 말,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 면목동에 살 때 파주 회사까지 1시간 여를 전철을 타야 했다. 출근할 때 1시간, 퇴근할 때 1시간. 그 시간이 아까워 열심히 책을 읽었다. 물론 잠이 모자라 졸고,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하는 시간들이 더 많긴 했지만 그래도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을 읽는 장소로 전철이 최고였다. 집중이 최고로 잘됐다. 응암동으로 이사를 하고 전철을 타는 시간이 10여 분으로 줄었다. 단편 하나를 읽기에도 짧은 시간이고, 금새 합정역에 도착하니 책 읽는 시간이 줄었다. 요즘 책이 잘 읽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