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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짱모퉁이다방 2020. 10. 9. 05:26
하얀색 페코짱 일러스트 에코백을 메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할머니를 봤다. 에코백도, 할머니도 무척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길이었는데 왠지 힘이 났다. 나도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에코백을 메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번주에는 차를 뜨거운 물에 우려내 오래 마시고 있다.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마셨던 차라는데, 붉은 덤불이라는 뜻이란다. 면역력에 좋다고. 텀블러에 담아 놓고 뜨거운 온기를 느끼며 호로록 한 모금씩 마시면 마음이 안정이 된다. 차는 정말 커피와 다른 것 같다. 커피도 좋지만 차도 좋다. 다 쓴 길쭉한 토마토 소스 병을 잘 씻어 말린 뒤 티백 하나를 넣고 냉장고에 냉침도 해두었다. 오래전 읽은 책들의 기록을 남겨두고 싶은데 어디 메모를 남겨두지 않으니 느낌들이 잘 기억나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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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긴 추신을 써야겠습니다서재를쌓다 2020. 10. 4. 07:24
한수희 작가는 책을 한 권 한 권 읽다 신뢰하게 된 작가이다. 그래서 새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서 읽겠다고 다짐한 작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다이나믹한 여행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는데, 이제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 생활의 고단함, 그럼에도 괜찮은 삶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이번 책도 따끈따끈한 상태로 구입했다. 책와 영화에 대한 작가의 긴 추신글이다. 책도 읽는 사람의 기운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지 월요일부터 시작해 금요일에 끝냈는데, 월요일에는 무던하게 읽히다가 금요일이 되니 두근거리는 구절이 꽤 많았다. -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마음속의 빛을 잃고 싶지 않아서, 영원히 청춘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어서, 나는 이런 이야기들로 내 마음의 이랑과 고랑을 가다듬는다. - 81쪽 60대 나이에 동년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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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서재를쌓다 2020. 9. 29. 19:43
나름 번화한 리파리 중심가를 벗어나 조금만 올라가면 깊은 협곡을 피해 발달한 작고 아름다운 마을들과 포도밭, 레몬나무, 드문드문 서 있는 올리브나무 그리고 사이프러스를 만날 수 있다. 화산의 폭발로 만들어진 지형은 마치 판타지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스쿠터를 타고 질주하는 순간의 달콤한 고독을 나는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스쿠터를 타고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자는 안과 밖이 통합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풍경은 폐부로 바로 밀고 들어온다. 그 순간의 풍경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 저 아래 까마득한 해안가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신중한 관광객들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숙이고 절벽을 향해 달려나갈 때, 비로소 나를 이 섬에 데려온 이유, 여기 오기 전까지 자기 자신마저 미처 깨닫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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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서재를쌓다 2020. 9. 27. 16:40
마켓 컬리를 며칠동안 들어갔다 나왔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뺐다 하다가 결국 주문했다. 내 생애 이렇게 비싼 치즈들을 그것도 다량으로 구매해 본 것은 처음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억지로'가 아니라 '좋아서' 하는 일은 어느샌가 개인의 역사가 되어 있곤 한다. '시간을 내서' 하지 않아도 그것에 자연스럽게 쌓인 시간은 어느새 책 한 권 분량이 되고도 넘친다.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마음도 없이, 이걸 이용해 뭔가를 하겠다는 야망도 없이, 그냥 좋은 것, 그저 끌리는 것. 그것이 내겐 치즈다. 대단하지 않아도, 깊은 의미 같은 건 없어도 그저 좋아하는 세계가 있어서 나는 종종 스스로 부자라고 느낀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좀 더 단단히 쥐어본다. 그렇게 내 삶을 조금 더 좋아하는 쪽으로 이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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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선모퉁이다방 2020. 9. 24. 07:38
4호선 안이었다. 자유로가 막힌터라 지하철 안에 자리가 드문드문 있었다. 그 날 나는 작은 숄더백을 메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다리 위에 올려뒀다.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핸드폰 메세지가 계속 와 책을 봤다 핸드폰을 봤다 했다. 다시 책을 읽는데 아주머니가 왼쪽 팔을 만지며 혼잣말로, 그러나 내게 다 들리게 아씨 뭐라뭐라하면서 짜증을 냈다. 그제야 아차, 내 가방 끈이 팔에 닿았구나 싶었다. 사과를 할까 싶었지만 너무 기분 나쁘게 짜증을 내서 말았다. 마치 내가 일부러 그런 것처럼. 대신 끈이 안닿게 얼음상태로 있었다. 왠지 끈위치를 바꾸는 것도 싫었다. 아주머니는 씩씩거리며 주위 빈 자리를 둘러보다 (빈 자리는 많았다) 두어 정거장을 더 앉아있다 마땅한 자리가 생겼는지 내 앞을 지나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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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모퉁이다방 2020. 9. 13. 17:14
2주간의 재택근무가 끝났다. 지난 금요일에는 운동 할겸 동네 산책을 했는데 새로 생긴 삼겹살집에 사람들이 그득했다. 2주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외식도 하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사람들은 잘도 돌아다니는 구나. 출퇴근시간이 아예 없어지니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네. 동생이 추천해 줘서 를 넷플릭스에서 봤는데 귀엽고 두근두근했다. 십대들의 사랑 이야기에 아직도 가슴이 콩닥거리다니. 김민철 씨의 치즈책을 읽고 거금을 들여 치즈 네 개를 주문했고, 보경이는 이웃의 책이라며 연두색 책을 보내줬다. 상주로 내려간 서울아가씨의 이야기다. 텀블벅에서 한수희 작가님의 새 책도 구매예약했다. 어느 저녁에는 대패 삼겹살을, 어느 저녁에는 LA갈비를 구워먹었다. 동생과 친구와 랜선술자리를 갖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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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요모퉁이다방 2020. 9. 3. 19:35
쏴아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어제는 비가 오고 있었고, 오늘은 숲 속 나무들이 엄청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제는 태풍이 올라오는 중이었고, 오늘은 태풍이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태풍에 스친 바람은 얼마나 센지 나무들이 쏴아하고 대나무 소리를 냈다. 멀리서도 그게 들렸다. 속이 시원했다. 그 바람을 다 맞고 싶어 방마다 창문을 다 열어두었다가 방문 하나가 쿵하고 큰소리를 내며 닫혀 황급히 모두 닫았다. 책방 문만 남겨두고. 이번주는 재택근무 중이다. 생애 처음이다. 재택근무는. 정말이지 재택근무 체질이라고 느껴지는 일주일인데, 다음주면 다시 출근을 해야 하니 몸이 이 편안함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아침에도 원래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난다. 그러고 나면 꽤 많은 시간이 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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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요트투어여행을가다 2020. 8. 26. 19:12
가이드북을 보니 오래된 마을이 있었다. 마을 곳곳에 컬러풀한 색감을 한 장소들이 있어 걷는 재미도 있고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온단다. 오늘은 이곳으로 결정했다. 처음으로 조식을 챙겨먹었다. 수영장을 내려다보기만 했는데 곁에 두고 아침을 먹었다. 좋아하는 계란요리, 우유, 요거트, 빵을 든든히 챙겨먹었다. 씻고 단장을 하고 차를 탔다. 네비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출발. 오늘은 싸우지 말자 다짐했다. 보조석에 앉아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대박. 혹시나 싶어 남편에게 말은 하지 않고 어제 놓친 요트투어 업체에 글을 남겼는데 오늘 오면 투어를 할 수 있다고 원하면 회신을 달라는 답변이 왔다. 그럼요, 그게 얼마짜리 투어인데요. 우리는 당장 일정을 바꿨다. 빠르고도 친절한 답변이 왔다. 시간을 보니 바로 출발지로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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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하이나여행을가다 2020. 8. 24. 19:12
사건은 라하이나 거리에서 시작되었다. 라하이나 거리는 마우이의 메인 스트리트라고 한다. 왠만한 상점들은 이 곳에 다 있어 선물을 사기에도 좋고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고. 별다른 계획없이 하루에 하나씩 기억에 남을 일을 해보기로 한 우리는 전날 바다 위에서 저녁도 먹고 석양도 구경할 수 있는 선셋요트투어를 예약해뒀다. 모이는 장소가 라하이나 거리에서 차로 이십분 정도여서 라하이나 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시간에 맞춰 가기로 했다. 아침은 느즈막히 일어나 전날 마트에서 사온 라면과 남은 고기로 무려 아침 스테이크를 해먹었다. 사이좋게 먹고 길을 나섰다. 오늘도 마우이의 선명함은 이상무. 라하이나에서 주차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점심을 먹으려고 한 치즈버거인파라다이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