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가끔 익숙한 냄새가 날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럴때마다 조금씩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을 닮은 사람을 본다거나, 우리가 함께 같던 장소에서보다 그 순간에 느껴지는 추억은 뭐랄까 좀 더 진하다. 좀 더 깊다. 그럴때는 정말 그 사람이 보고싶어진다.
익숙한 느낌, 익숙한 체취, 익숙한 시간. 두번째 사랑은 몸이 기억하는 사랑이다. 이야기라인은 진부하고 신파적인데, 그것을 담아내는 감성의 장면들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이를 간절하게 가지길 원하는 소피와 돈이 필요해서 비즈니스 차원의 관계를 맺기 시작하던 지하, 두 남녀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단순한 스토리에 투영되는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들.
제일 좋았던 건 둘이 관계를 맺을 때마다 파고들던 오후의 햇빛이었다. 부적절한 사이기 때문에 낮에 관계를 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 사이에 비춰지던 오후의 햇살의 느낌이 정말 좋았다. 나중에 정말 사랑하게 되었을 때 살랑거리던 그 커튼 뒤의 햇살의 촉감. 지금 생각해보면 앤드류의 집에서는 왠지 어둡고 답답한 느낌이였는데, 그 저택에 비해서 너무나 초라했던 지하의 집이 훨씬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던 건 순전히 그 오후의 햇살때문이었다.
그리고 여러 사물과 행동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 복숭아를 먹으면서 처음 지하를 기다리는 소피, 소피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그녀를 기다리며 샀던 지하의 복숭아. 가슴앞에 손을 모으고 '그냥' 하는 거라 했던 앤드류의 기도, 자주 가는 길목에 돌을 하나씩 쌓으며 소원을 빌고 그것을 지나가며 볼 때마다 생각한다는 지하의 기도. 마지막 장면의 갇혀버린 물고기를 바다에 놓아주던 소피. 그리고 영화 처음에 가장 나중에 남았던 제목의 '두번째'와 영화 마지막 가장 나중에 남았던 '사랑'. 이 사소하고도 강렬한 장면들이 영화 보는 내내 가슴에 자꾸 와서 닿았다.
아, 그리고 베라 파미가를 다시 보게 됐다. 러닝 스케어드와 디파티드에서 그저 평범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두번째 사랑에서 외모 자체도 아름다웠고 사소한 감정 하나하나를 표현하는 눈빛과 표정이 정말 좋았다. 팬이 될테다. 하정우는 딱 그 역할에 어울리는 영어를 구사하고, 연기도 특별히 못하지도 특별히 잘하지도 못한 것 같다. 뭔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연기는 아니였던 듯. 그리고 앤드류. 이 남편의 캐릭터에 대한 분노를 영화 보는 내내 식히느라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소피와 지하를 뺀 모든 캐릭터들이 전후 설명이 부족했고 너무 평면적이였다. 앤드류에게도 아이문제가 아닌 다른 심각한 심적인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젠들한 겉모양에 비해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람이였으니까.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기억해서 몸으로 이어지는 사랑도 있지만, 이렇게 몸이 기억해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사랑은 왠지 더 아플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사랑처럼 불륜이(이렇게 표현하고 싶진 않은데) 아닌 자유로운 연애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오후 네 시즈음에 이루어지는 몸의 사랑. 마음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몸이 네 시를 기억하고 반응하는 사랑. 그래서 세 시부터 행복해지거나 따가워지는 따끔거리는 몸의 사랑. 그래서 영화같은, 나는 왠지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사랑. 언젠가 내게도 소피같은 두번째 '사랑'이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