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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들 :)
    모퉁이다방 2011. 9. 10. 00:17
       
        어제는 Y언니를 만나 치킨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언니가 대구포도 시켜줬다. 우리는 영화친구다. 극장에서 일하면서 만났고, 영화 관련 일을 함께 했으며, 이제는 또 비슷한 직종에.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영화를 함께 보았는지 생각해봤다. 대학로에서, 을지로에서, 광화문에서, 명동에서, 그리고 부천과 제천에서. 올해 봄에 함께 전주영화제 가기로 했는데 숙소 때문에 실패하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가을의 부산영화제. 올해 매년 노래만 불러대던 부산영화제에 간다. 둘다 부산영화제는 처음이다. 함께 밤을 보내는 두번째 영화제. 부산에 가면 회를 꼭 먹어요, 하니 언니가 밀면도 먹자, 한다. 영화는 딱 한 편만 봐요, 하니 언니가 좋다고 한다. 가을을 위해 매달 3만원씩 모아왔다. 이제 케이티엑스 예약만 무사히 마치면 준비완료. 여름의 제천만큼 가을의 부산도 좋겠지. 언니는 원래 애기 입맛이었는데 나이 들면서 어른 입맛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뼈다귀탕도 좋아하고, 곱창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됐다. 주량도 늘었다. 늙어가는 건 어쩌면 괜찮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겐 문자친구도 있다. 나의 문자친구는 요즘 주로 숲에서 문자를 보낸다. 그녀의 문자에는 늘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여름의 숲에서 그녀는 이런 문자들을 보내주었다.



    이건 땀흘리는 고사리라고,



    이건 괭이손 사마구라고,



    이런 믿을 수 없이 화려한 나비 사진도 보내주었다.

    모두다 그녀가 머무는 여름의 숲에서 보내온 사진들.



    이건 여우주머니



    이건 산초나무 잎


     

       나는 이런 사진들을 주로 사무실에서 받았다. 그녀의 숲은 그녀의 집 뒷산에 있다. 파주로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보석같은 뒷산을 발견해냈는지. 이름도 모르고 지나갈 식물들인데 덕분에 한번씩 이름을 불러보고 익혀본다. 

        나는 그녀와 문자를 주고 받으며 그녀가 토요일의 소포를 제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사간 그녀의 집에서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이 한 눈에 보인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여름에 팥을 삶고 (그녀의 레시피대로 나도 여름의 팥을 삶았지만 대실패 ㅠ), 평일의 수목원을 다니며, 햇빛알레르기가 있다. 어느날 밤 11시 50분에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고, 어느날 오후 2시 8분에 바람소리를 들었다. 내가 북해도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언젠가 오로라를 보러 알래스카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조금 쓸쓸했단다. 

       "이집에서 마지막 밤입니다. 많은 얘기들이 있던 곳이었어오. 짐을 챙기다챙기다 결국 포기하고 누웠어요. 조금 전엔 고등학교때 미술실 건물 헐 때 주워온 건물잔해를 찾았다는. 이제 조금은 그만 모아야할 것 같아요. 쌓이니 넘 무거워요. 늙었다. 괜스레 말 걸어 봅니다. 참 전 파주로 가요. 07/08 오전 12:56"

       나는 답답하고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그녀의 숲을 상상한다. 아침의 숲. 이슬을 머금은 숲. 그녀에게만 눈에 띄는 것들. 그녀로 인해 다시 불려지는 것들.



       이런 귀여운 사진도 보내준다. 그녀의 고양이. 이름은 보노. 피부병 때문에 저렇게 깜직하게 해 놓았단다. 나는 과일 싸는 포장지인 줄 알고 귀여워 죽겠다고 했는데; 이 사진 진짜 귀엽다. 계속 보게 된다니까. 


       추석이니까, 보름달이 곧 뜰테니까 고마운 것들, 좋은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연휴기간 가져보기로 한다. 부정적인 기운 가득한 나는 곧 불평불만 투성이 될 테지만. 이번 주말은 그래보기로 한다. 좋은 사람들만 생각하면서. 모두들 기분 좋은 한가위 보내시길요. :) 

    - 추석이 지나면 할 일 : 홍상수 새영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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