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렛미인 -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극장에가다 2009. 8. 1. 23:11



        드디어 <렛미인>을 봤다.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보길 잘했다.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 이 영화는 아름답고, 슬퍼서 혼자서 방 안에서 보면 안 되겠더라. 영화를 보기 전에 누군가와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과자도 나눠 먹고, 그리고 앞뒤로 극장에 앉아 영화를 나눠 보고, 함께 짧은 거리라도 걸어야 하는 영화였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크레딧이 오르고 슬픈 테마 음악이 흐르는 순간, 다시 영화가 시작되는 그런 영화였다. 마음이 마냥 먹먹해지는 영화였다. 아프고, 아파서 '영화보다 더 좋다더라'는 원작소설을 집에 와 당장 주문하게 되는 영화였다. 어제 영화를 보고, 오늘 책이 도착했다. 어제 영화를 보고, 오늘 늦잠을 잤는데, 영화와 같은 꿈을 꿨다. 나는 꿈 속에서 오스칼이었다. 아무도 나랑 놀아주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도망쳤고, 친구였던 이들이 나를 따돌렸다. 꿈 속에서는 영화에서처럼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그래서 눈이 쌓이지도 않았지만, 춥고 또 추웠다. 마음이 시리고 아파서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나 이것이 꿈이라는 걸 안 순간에도, 마음이 아팠다. 

        영화의 처음, 칠흙같이 까만 화면 위로 하얗고 미세한 눈이 내린다. 북유럽에서는 커다란 밤알같이 굵은 눈송이가 내릴 줄 알았는데, 쌀알같이 작고 가벼운 눈이었다. 눈이 내리고, 그 눈이 쌓여있는 동안, 한 아이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이유도 모르는 채 맞고, 왕따를 당한다. 그리고 한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고 그의 피로 연명을 한다. 모두 작고 가벼운 눈이 내리고, 쌓이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이다. 첫 번째 아이는, 오스칼. 눈처럼 하얀 아이다. 열 두 살의 소년. 북유럽에서는 콧물을 달고 다니는 아이도 이렇게 귀여울까. 오스칼은 사람이 그리운 아이. 아빠 냄새가 그리운 아이. 친구가 필요한 아이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맞고 다니지만, 집에 와서는 엄마에게 그냥 길을 가다 넘어졌다고 한다. 두 번째 아이는 이엘리. 열 두 살의 소녀. 실은 이백살도 넘었다. 하지만 늘 열 두살인 아이. 뱀파이어다. 사탕 한 조각이라도 먹으면 토하게 되는 아이. 사람의 피로만 연명할 수 있는 아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울어버리는 아이. 어쩌다 이 아이는 뱀파이어가 되었을까. 눈이 아주 커다랗고 예쁜, 핏기없는 가여운 아이다.

       외롭고 쓸쓸한 두 아이가 하얀 눈 밭의 작은 정글짐 위에서 만난다. 둘은 머뭇거리며 친구가 되고, 서로에게 의지한다. 손가락의 두드림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는 법을 배운다. 손가락을 톡톡 몇 번을 두드리고, 길게 몇 번을 그어주면 S.W.E.E.T라는 단어가 벽을 타고 전해진다. 두 아이는 이웃이다. 엘리가 오스카의 옆 집으로 이사를 왔다. 서로 체온을 나누고, 음악을 함께 듣는 사이. 오스칼이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자, 너도 함께 공격을 하라고, 있는 힘껏 공격을 하라고, 그래도 안 되면 자신이 혼내주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아이, 이엘리. 그리고 그 덕분에 용기를 얻는 오스칼. 함께 눈길을 걷고, 손을 맞잡는 사이. 사탕을 먹을 수 없지만 오스칼이 권하니깐 먹고 꺼억꺼억 토해내는 아이, 이엘리. 들어오라는 말을 들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이엘리의 말에 끝까지 그 말을 하고 있지 않다가, 이엘리의 온 몸에서 피를 뿜어져 나오는 걸 보고서야 들어오라는 말을 하고는 그 피까지 꼭 안아주는 아이, 오스칼. 두 사람은 친구다. 그야말로, 둘 밖에 없는 친구.

        영화가 끝나고 자꾸 마음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살고 있는 동네를 떠나야겠다는 이엘리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오스칼이, 방으로 들어와 선반 위에 모아놓은 작은 모형 비행기 등의 문들을 죄다 닫아버리는 장면. 그러니까 그 말은 언젠가 오스칼이 그 비행기들의 작은 문들을 죄다 열어놓았던 때가 있었다는 거다. 모형 비행기의 문들은 처음에는 다 닫혀 있는 법이니까. 나는 그 문들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하나씩 열 때의 오스칼의 표정을 상상해봤다. 분명 속옷까지 벗고 있었을 때였을 거다. 기분이 무척 좋았겠지.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을 거다. 오스칼은 기분이 좋을 때 그러니까. 아이는 싱글벙글 웃음 띤 얼굴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주 귀여웠을 거다) 비행기며, 차의 문이란 문을 천천히 하나씩 열기 시작했을 거다. 그리고 그건 분명히, 이엘리를 만난 후였을 거다.

        이제 책을 읽어야지. 책은 꽤 두꺼운 두께고, 2권짜리다. 이 두꺼운 분량 안에 오스칼과 이엘리의 이야기, 오스칼의 엄마와 이엘리의 아빠 이야기, 그리고 술집에 모여있던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죄다 들어있다는 거지. 덕분에 8월에는 북유럽을 여행할 수 있겠다. 눈도 실컷 볼 수 있겠다. 아, 어쩜 지난 겨울에 나는 이런 영화를 놓쳐버렸던 걸까. 오늘 밤은 이백살이 된 열 두살 이엘리의 꿈을 꾸게 될까. 어젯밤의 꿈을 정말이지 너무나 슬퍼서. 다시는 그런 꿈, 꾸고 싶지 않다. 그러고 보니, 오늘 8월이 됐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