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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펀 : 천사의 비밀 - 베라 파미가의 팬이 되었지요
    극장에가다 2009. 7. 28. 22:14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온전한 베라 파미가의 팬이 됐다. 같이 본 B씨는 자기가 베라 파미가의 광팬이라면서, <두 번째 사랑>을 보고 울었잖아요, 라고 말했지만. 어이없게도 영화보는 내내 그녀가 베라 파미가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그런 사이비 팬이 아니란 말이지. 머리가 길든, 짧든, 파마를 하든, 안하든 언제나 알아 볼 수 있는 그녀의 완전한 팬이다. (B씨, 반성하세요!) 그래, 나도 B씨처럼 <두 번째 사랑>을 보고 그녀의 팬이 되었는데, 그제서야 그녀에게서 우아하고도 애잔하고도, 바라보고 있으면 마냥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눈동자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실 그 전에도 그녀가 출연하는 몇 편의 영화를 보긴 봤지만, 그 땐 나도 B씨처럼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 전체에서 풍기는 매혹적인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를 참 잘 한다.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그랬다.

        사실 이 영화는 시사회에 당첨되서, 많이 땡기진 않았지만, 공짜영화니깐 가서 보자,라는 마음이었는데. 못 보고 지나쳤으면 후회할 뻔 했다. 공포라기보다는 스릴러에 가까운 영화다. 뒷부분이 잔인하긴 하지만, 영화를 보고 하루가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눈이 소리없이 내리는 산 속의 아늑한 풍경이다. 영화의 배경이라 할 수 있는, 베라 파미가네 집은 나무가 많은 산 근처의 전원주택인데, 그 유리벽이 가득한 집 주위로 쉴 새 없이 눈이 내린다. 계절은 겨울. 여름에 겨울 영화를 보는 것, 괜찮더라.

        영화가 괜찮게 느껴졌던 순간은 거의 첫 부분이었는데, 베라 파미가에게는 잘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의 여자 아이가 있다. 아, 어찌나 예쁜지. 제발, 이 아이만 해치지 말아주세요, 라고 영화보는 내내 절로 빌게 된다. 꿈나라로 빠져들 시간이 되었을 때, 보청기를 침대 옆 스탠드 위에 올려놓고 아이가 조른다.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베라 파미가는 다른 책을 읽자고 하지만, 아이는 그 책만 읽어달라고 한다. 동생이 하늘나라의 천사가 되었다는 이야기.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사라져버린 동생이 천사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행복해하지만, 엄마에겐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뜨끔거리는 상처다. 아이가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하고, 베라 파미가가 좋아, 허락을 하는 순간. 영화에 소리가 멈춘다. 아이와 똑같은 귀를 갖게 된 관객들이다. 자막이 있으니깐, 그 동화의 내용은 알아볼 수 있다. 행복해하는 아이의 미소와 함께 따스한 선율이 흐른다. 순간, 관객과 아이는 같은 귀를 가진 거다. 그리고, 내내 내리는 눈. 소리도 없이 쌓이는 눈. 예쁜 여자 아이. 베라 파미가. 이것들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괜찮았다. 




        영화의 '공포 스릴러' 부분은 베라 파미가 가족이 사산된 아이의 상처를 잊고자, 아이를 입양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목과 팔에 융단같은 띠를 두르고, 언제나 구시대의 드레스를 입는 아이. 그림을 잘 그리고, 잘 웃고 적응력이 뛰어나서 여자 아이가 언니로 금방 잘 따랐던 아이. 영리한 아이. 욕심 많은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저 포스터의 주인공이다.  포스터는 굉장히 으스스하게 나왔는데, 실제로 영화 속에 등장하면 저 정도는 아니잖아, 느낌이 들 정도로 예쁘장하다. 아이가 예쁜 유리집에 입양되어지고, 누군가 다치고 죽게 되는 사건들이 겹치면서 영화는 결말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당연히 반전이 있다. 이 영화를 보려면, 꼭 그 반전을 모르는 채로 극장에 가야 한다. 뭐랄까. 반전을 알고 있는 나로써는, 개봉 전에 영화를 먼저 봐서 혹시나 장난기 많은 사람이 미리 스포일러를 일러주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반전을 알면 좀 재미없을 것 같다. 조심. 조심. 




         이상하게 영화를 보고 하루가 지났는데, 영화의 눈 내리는 풍경이 자꾸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그 분위기가 베라 파미가의 분위기만큼 좋았다. 집도 아늑했고, 눈도 고요했다. 평화로운 집이었다. 이런 집에서는, 이런 아이들에게는, '어떤' 상처를 견디고 이겨낸 부부에게는 지독한 시련따위 없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푹신푹신한 겨울집이었다. 영화의 잔인하고, 잔혹한 부분만 빼고. 그 부분들은 모자이크 처리하든지, 음소거해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겨울에 여름 영화 보는 것도 좋았는데, 여름에 겨울 영화 보는 것도 좋구나. 아무튼 공포 영화를 '최근'에 본 게 <여고괴담 :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한, 어이없는 B씨도 이 영화가 뒷부분이 괴롭긴 했지만, 무척 좋았다고, 몇 명에게 벌써 추천해주었다고 했으니. 꽤 괜찮은 영화인 것 같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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