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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영화 썸원그레이트 스포일러로 가득한 글입니다.)
혼자 남은 토요일 밤이었다. 그냥 티비만 보기는 왠지 아쉬워 넷플릭스를 켜고 볼만한 영화가 없나 뒤적거렸다. 너무 무거운 영화 말고 조금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 "낯선 도시에 근사한 직장을 구한 저널리스트 제니. 뉴욕을 떠나야 하는데, 애인이 먼저 떠나버렸다. 실연의 상처엔 역시 친구들과 술 한잔. 뉴욕에서 마지막을 불태우리라!" 영화 소개글이었다. 너무 가볍지 않을까 싶었는데 먼저 본 사람들의 평이 나쁘지 않았다. 커튼을 닫고 쿠션을 끌어안고 소파에 앉아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괜찮은 음악들을 배경으로 이십대 친구들의 발랄한 연애사를 지켜보고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터트린 건 제니가 헤어진 남자친구를 공연장에서 만났을 때였다.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우연이었지만 제니는 남자친구가 온다는 걸 알고 작정하고 힘들게 표를 구해 찾아간 공연장이었다. 남자친구가 갑작스레 이별을 고했고 제니는 그의 이별통보를 믿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대학교부터 아주 오랜시간 사랑을 나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다툼이 있었지만 결코 헤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작정하고 찾아간 거였지만 막상 그를 마주하니 그이 쪽으로 발을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났다. 그저 멀리서 변함없는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고개를 돌렸고 제니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소리 내지 않고 입모양만으로 인사를 나눴다. 제니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며칠 전만 해도 내 사람이었는데 이제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하겠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친구를 따라 뒤풀이 장소에 간 제니는 돌아가 그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분명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고. 뒤풀이장에서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둘만의 추억장소로 간다. 분명 그도 그리로 올 거라고 확신하면서. 지하철 안에서 제니는 수첩과 펜을 꺼내 지금의 이 마음들을 모두 쓴다. 펑펑 울면서 멈추지 않고 쓴다. 그렇게 도착한 둘 만의 추억 장소. 두 사람은 재회한다. 제니는 다시 다정한 그를 만난다. 그의 체온을 느낀다. 그를 껴안고 입맞춘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다. 아, 이 부분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다정한 그이 대신 사려깊은 친구들이 그의 곁에 있었다. 여기서 자면 얼어죽어, 제니. 제니는 자신이 괜찮아질 거라는 걸 깨닫는다. 이제 더는 죽을 것 같이 술을 마시지 않을 거고, 새로운 도시 새로운 직장에서 자신의 재능을 열심히 펼칠 거다. 언덕과 바다가 있는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지. 가끔 생각나겠지만 뉴욕의 그도 애틋한 추억이 되겠지. 언젠가 'Dreaming of you'를 울지 않고 웃으며 들을 수 있겠지. 영화가 끝나고 제니가 이제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한 건 지하철에서의 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생각들과 마음들을 글로 써내려간 덕분에, 그 시간들 덕분에 제니는 괜찮아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기록을 멈추지 말하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짐한, 혼자여서 꽤 괜찮았던 토요일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