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휴 시작 전 수요일, 6시 되자마자 컴퓨터를 끄고 집을 나섰다. 세 군데 극장 중에 고민을 하다 제일 가까운 곳을 택했는데 도착해보니 조금 한적한 곳에 위치한 작년에 오픈한 새 극장이었다. 얼마만의 극장인가. 남편은 극장에 왔으니 팝콘을 꼭 먹자고 했다. 코로나로 상영관 내에서는 음료만 마실 수 있다고 해 반반팝콘을 사들고 홀 구석에 나란히 앉아 조용히 팝콘을 해치웠다. 칠리 소세지도 해치웠다. 탄산도 해치웠다. 그리고 기대했던 <소울>을 봤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당연하게도 캄캄한 밤이었다. 우리 동네 근처에 제법 큰 호수가 있는데 풍경이 근사하다. 페달을 굴리며 느릿느릿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레일바이크도 있다. 호수 둘레를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산책길도 있고. 맛난 커피집도 한 군데 알고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근사하다. 벚꽃 나무도 꽤 있다. 연꽃이 가득한 습지도 있다. 호수공원을 지나 집으로 오는데, 캄캄해서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보인다해도 겨울이라 아무 것도 없는데 갑자기 가슴이 막 뛰었다. 곧 봄이 올 거다. 벚꽃이 환하게 필 거고 습지도 연꽃으로 가득 찰 거다. 바람도 따스해질 거다. <소울>의 어떤 장면처럼 그저 걷고 그저 눈부셔하고 그저 감동할 수 있는 봄이 오는 것이다. 영화에선 가을이었지만 내게 다가오는 건 봄. 태어나 처음으로 봄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설렜다.
<싱어게인> 이정권이 그랬다. 이 프로그램에 도전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정말 잘한 일 같다고. 만일 그냥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작년 한 해를 뒤돌아봤을 때 기억나는 일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그의 마지막 경연곡 '바람'에 이런 가사가 있다. "바람이 되어 그대와 숨을 쉬고 구름이 되어 그대 곁을 맴돌고 비가 되어 그대 어깨를 적시고." <소울>은 그대 곁에 있는 바람과 구름과 비와 같은 영화였다. 마음을 열어야 느낄 수 있는 그런 바람과 구름과 비. 마음을 열면 정말이지 흠뻑 젖을 수 있는 바람과 구름과 비. 연휴도 끝나고 재택근무도 끝났다. 이제 어떤 불꽃을 지니고 이 세상에 왔는지 궁금한 뱃속 꼬맹이와 조심조심 출퇴근을 해보야지. 봄이 되면 벚꽃길을 꼭 걸어야지. 바람과 구름과 비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