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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담 - 아, 이 영화 정말 좋구나
    극장에가다 2007. 8. 1. 03:19
       개봉 하루 전날 시사회를 통해 봤다. 보는내내 '아, 이 영화 정말 좋구나'라고 생각했다. 지독하게 슬프고 무서운 영화. 올해 본 공포영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영화. 기담.


        첫번째 이야기. <기담>은 1942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땅이지만 일본이 지배했던 때. 한국인이지만 일본 이름을 써야했던 기묘한 때. 한국이지만 일본이기도 한 말도 안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서글픈 그 때.

        의과공부를 하는 한 남자가 있고, 그는 곧 얼굴도 모르는 원장의 딸과 결혼을 해야하는 상황이고, 병원에 들어온 동반자살을 한 여고생 시체를 사랑하게 된다.

        첫번째 이야기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다. 강 아래로 시체가 얼어붙어 있고 그 위로 나풀나풀 떨어지는 꽃잎 씬이나. 마주보고 앉아있는 두 사람 너머로 보이는 봄, 여름, 가을을 그린 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표현되는 결혼생활의 모습. 눈물이 왈칵 떨어지기보다 가슴이 먼저 시리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이야기와 장면들이다.

       
        두번째 이야기.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씬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본 공포영화 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귀신이였고, 가장 신선했던 귀신이였다. 영화를 보고 감독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이런 글이 있었다.

    지아가 아사코 엄마를 연기하는 장면이 무섭더라.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아사코 엄마가 흰 옷에 피 칠갑을 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런데 지아를 본 순간, 딱 마음에 들어서 이분이 하면 다른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언을 중얼거리게 하자!” 방향을 바꿔 아사코 엄마가 방언을 중얼거리면서 앉는 걸로 장면을 고치고, 배우에게 부탁했다. 지아는 좋다고 했는데, 왜일까, 촬영하는 날 전까진 연기하는 모습을 안 보여주겠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별반 기대를 안 했는데, 와, 진짜 장난 아니었다. 우리는 좀 지독한 인간들이라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 나오면 되레 낄낄거린다. 그런데 지아가 하는 장면 보고 너무 무서워서 못 그랬다. 스태프들도 너무 무서워해서 한 번 더 찍자고 하니 아우성을 치는 거다.

       정말 이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영화보면서 청룡열차 탈 때처럼 여기저기서 비명들을 질러댔다. 그것때문에 모두들 울다 웃는 격이 됐지만. 두번째 이야기는 정말 무서웠다가 따뜻해지는 이야기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혼자 살아남은 여자아이가 등장하는데, 엄마가 귀신으로 자신의 곁을 맴돌며 힘들게 한다.

       영화 속에서 거의 벚꽃이 내리거나 눈이 내린다. 이 장면들은 정말 아름다워서 이 영화가 공포영화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 장면들에 취하게 된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눈밭 위에 마주한 엄마와 나, 이 장면은 첫번째 이야기 벚꽃이 날리는 가운데 마주앉은 남자와 여자와 비슷하다. 아름다운 것이 위에서부터 내려질 때 운명의 그 또는 그녀를 마주하고, 그것이 공포로 다가와서 더욱 슬픈 이야기들.


        세번째 이야기. 부부가 있다.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두 사람.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경성에서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림자, 빛을 통해 만들어지는 영상이 얼마나 예쁜지 세번째 이야기에서 보여준다. 가로등 아래 벤치에 어깨를 기대고 앉아 있는 남녀의 스노우볼이 빛을 통하고 창호지 문에 만들어지는 영상은 정말 아름답더라. 그리고 죽은 직전과 직후의 몸무게를 재어보면 죽은 후의 몸무게가 덜 나가는 건 영혼이 존재한다는 거라고. 영혼이 없다는 거, 너무 쓸쓸하지 않냐는 대사는 정말 보고 있는 나를 쓸쓸하게 만들어버렸다.  



        공포영화를 보고 이렇게 좋았던 느낌은 정말 오래간만이여서 너무 좋다는 말만 반복했다. <기담>은 슬프고 무섭다. 그래서 마치 청룡열차를 타는 것과 같은 느낌이였다. 청룡열차를 타게 되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순간의 공포스런 느낌이 너무나 두렵다. 그런 순간들이 곳곳에 존재하는 그런 영화. 열차를 타면서부터 생각하는 내려가는 공포. 게다가 옆에 함께 탄 사람은 무슨 이유에선지 사랑하지만 내일이면 헤어져야 할 사람인 거다. 이별을 앞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타는 청룡열차.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슬픈, 그렇기에 이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하는 느낌.
       
        세편의 이야기를 동시에 그것도 짧은 상영시간 안에 담고 있어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정말 기묘하게도 슬픈 공포영화다 그리고 지독하게 아름답다. 극장을 나서면서 한번 더 보고싶어졌다고까지 얘기해 버릴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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