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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이 있어 연차를 썼다. 검진을 하는동안 병원 근처 극장 시간표를 검색해봤는데, 집 근처 극장에서는 내린 <로스트 인 더스트>가 한 회 상영하는 걸 발견했다. 평이 하도 좋아서 못 본 걸 아쉬워 하고 있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신선설농탕에 들어가 떡만두설농탕 한 그릇을 먹고, 커피를 사들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왔다. 좌석 앞에 길다란 탁자가 있는 관이었다. 예매할 때 팔린 표가 없어서 혼자 보나 싶었는데, 두 명의 관객이 더 들어왔다. 영화는 무척 좋았다. 텍사스를 배경으로 은행을 털어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농장땅을 지키려는 형제와 그들을 뒤쫓는 퇴직을 코앞에 둔 베테랑 형사의 이야기이다. 풍경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도 쓸쓸했다. 영화를 보면서 예상되던 결말이 있었는데, 틀어졌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인생이란 저렇게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거였지. 음악도 좋았다. 영화에서 내내 병맥주를 마셔대는 통에 맥주가 땡겼다. 인적이 드문 조용하고 황량한 곳에서 그들은 병맥주를 무심하게 가져와 뚜껑을 손으로 돌려 입을 대고 마셔댔다. 즐겁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라, 쓸쓸하기 때문에 마시는 술이었다. 그 곳의 까슬한 모래가 담긴 듯한 술. 영화를 보고 지하에 있는 클라우드바에 가서 감자튀김과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점심시간이라 혼자서, 혹은 삼삼오오 식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맥주를 마셨다.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를 끝냈고, 좋은 문장은 수첩에 적어뒀다. 3호선을 타고 불광까지 와서 불광에서 집까지 걸었다. 추워졌다. 코끝이 시릴 정도로. 겨울이 오나 보다. 형은 나쁜 일을 하면 언젠가 죄값을 치뤄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