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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러브레터
    극장에가다 2016. 10. 24. 23:47





       오늘 갑자기 너무나도 답답해져 서둘러 이어폰을 찾았다. 핸드폰에 꽂고 멜론 플레이어를 실행시켰다. '러브레터 OST'라고 입력했다. 플레이. '그의 미소'라는 곡이 시작됐다. 영화의 첫 장면, 오타루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그곳에서 샤르르르르 미끌어져 내려왔다. 눈이 가득한 오타루 시내로.


       가을바람도 제대로 불지 않던 시월의 어느 저녁에, 눈이 가득한 오타루에 다녀왔다. 우연히 <러브레터> 극장상영을 하는 제주항공 행사를 보고, 응모했는데 당첨이 되었다. 이틀 전 쯤에 발표가 났는데, '<러브레터>를 극장에서 다시 본다'라는 생각만으로 설레였다. 그렇게 많이 본 영화인데, 극장에서 다시 본다고 설레다니. 영화가 시작되고도, 그 설레임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막 자랑하고 싶어지는 거다. 엇, 저기! 앗, 저기 나 가봤어요! 저기저기, 내가 아는 곳! 내가 아는 풍경은 한여름의 풍경이지만, 눈으로 뒤덮힌 그곳의 풍경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나는 마지막까지 설레여하며 영화를 봤다. 외울 정도로 여러 번 봤지만 한번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활발한 후지이 이츠키와 조용한 와타나베 히로코가 꿈인듯 생시인듯 영화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와타나베 히로코는 자신을 꼭닮은 후지이 이츠키를 본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스치고, 한쪽 구석에서 인파가 몰려들고, 후지이 이츠키가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것 같아 자전거를 세운 채 뒤를 돌아보는 그 장면. 그 장면이 이번 여름 내가 우표를 샀던 그 우체국 앞에서 찍은 장면이었다. 다리가 아파 걸을 수 없는 친구는 자전거를 빌렸고, 자전거에 능숙하지 못한 나는 도보로 오타루를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는 여행에서 처음으로 떨어졌다. 나는 오타루 생맥주를 한잔 마시고, 운하를 걸었다. 운하에는 몇년 전에 토토로 마그네틱을 팔았던 아저씨가 여전히 장사를 하고 계셨다. 친구가 좋아하는 캐릭터 사진을 보여줬다. 이것 있습니까? 아저씨는 있다면서 보여줬고, 나는 동전을 꺼냈다. 아저씨가 몇년 전과 똑같이 글씨를 새길 수 있다고 했고, 나는 친구의 이름을 종이에 적었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오년 쯤 전에 온 적이 있습니다, 토토로를 샀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두말할 것도 없이 기뻐해주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려는데, 길을 헤맸고, 마침 우체국이 있어 겸사겸사 들어갔다. 스탬프가 있습니까? 한국으로 보냅니다, 라고 더듬더듬 이야기 하며 우표를 샀고,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 가게 이름을 보여주며,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남자분은 모르겠다고 했고, 여자분이 아! 하면서 지도를 보면서 위치를 설명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헤매다 식당을 찾았고, 식당에서 초밥과 튀김을 동시에 먹고 싶어하는 나를 두고 주인 할머니는 난감해했다. 오늘은 세트 메뉴가 없다고. 그렇지만 내가 계속 고민을 하자, 골똘히 생각하다 두 음식 다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초밥을 만들던 할아버지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고, 한국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집이 한국책에 소개되었다고 말했고, 할머니는 알고 있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식사 때가 지나 한적한 식당이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에 친구와 만나 걷다가 <러브레터>에 나와서 가보기로 했던 언덕길을 포기하고, 오르골과 정각마다 연기를 내뿜는 증기 시계탑을 보러 갔다. 해가 늬엿늬엿 지고 있는데, 시계탑에서 연기가 뿌웅- 소리를 내며 솟아 올랐다. 우리는 그걸 좋아라 벤치가 앉아 올려다봤다. 그리고 역으로 가는 길에 냄새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해산물을 즉석에서 구워주는 곳에서 조개와 소라 하나씩 시켜놓고 맥주 한잔씩 했다.


       영화를 보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은 올해 여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영화가 끝나고 이동진이 나와서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아주' 빠르게 해줬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건 테마여행을 하라면서 자신이 언젠가 꼭 하고 싶은 어떤 여행 계획을 이야기해준 거였다. 이동진은 더블린에 6월 16일 전에 도착해서 16일 하룻동안 여행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꿈이라고 했다.  제임스 조이스 소설 <율리시스>처럼, 주인공이 지났던 길 그대로 걸어보는 것. 그러면서 남들이 다 하는 것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라고 했다. 누군가와도 좋지만, 혼자서도 꼭 떠나보라고. 마지막에 인상깊은 질문을 한 사람에게 삿포로 왕복 항공권을 줬는데, 이동진에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받아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신은 여행을 가서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융화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여행을 꿈꾸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이유가 있는가?


       언젠가 눈이 아주 많이 내린 1월에, 축제도 없어 고요할 1월에, 조용히 가서 오래되고 저렴하지만 깔끔한 료칸에서 노트북으로 <러브레터>를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고요한 밤에 영화를 다 보고 료칸 문을 열고 나서는 새벽 길은 얼마나 특별할까. 그 길, 소복하게 쌓인 눈에 내 어그부츠가 푸-욱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덧, 사진은 이동진이 러브레터 촬영지를 찾아 떠난 여행길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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