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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째날 오후, 오키나와
    여행을가다 2016. 7. 10. 21:27






    남쪽 카페에서 할 수 있는 일.

    물이 빠진 바다를 앞에 두고 물이 가득찬 바다를 상상하는 일.

    저 멀리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는 일.

    이국에서 또다른 이국의 음악을 듣는 일.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일.

    한 시간에 한대씩 있는 39번 버스를 놓치지 않는 일.

    물이 가득한 풍경의 엽서를 사는 일.

    정이현의 문장을 읽고 마음이 움직이는 일.












       해가 질 무렵엔 느릿느릿 뒷산에 올랐다. 푸시 산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여행자들은 그곳을 그냥 산, 혹은 뒷산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등산화를 신거나 등산복 비슷한 것을 입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반바지에 바닥 얇은 샌들을 질질 끌고 올랐다. 산 정상에 도착한다고 뭐 특별한 것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다. 소문대로 해 지는 풍경이 꽤 아름다웠지만 그렇다고 다시는 못 볼 아주 특별한 광경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보다 더 볼만한 것은 거기까지 기어올라와 삼삼오오 모여앉아 그 풍경을 보고 있는 여행자들의 모습이었다. 우리끼리는 서로 알았다. 맹렬히 원해서가 아니라 딱히 다른 할 일이 없기에 여기 모였다는 것을. 지는 해를 등지고 바위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일어날 때 무언가 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조그맣지만 투명한 소리였다. 인생에 남아 있는 모든 휴가들을 이곳에서 보내도 좋겠다고 비로소 생각했다.

    정이현, '두고 온 것' <그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선명하고 뚜렷한 남쪽의 구름을 따라 가는 길. 아사히비시역에서 내려 버스안내소에서 미이바루비치 가는 버스를 어디에서 탈 수 있는지 물었다. 39번 버스를 타고 1시간여 가면 된다. 버스 안에서 '돌아가는 버스는 어디에서 탑니까?'를 연습했다. 블로그에서는 꽤 걸어야 한다고 했는데, 얼마 걷지 않아 카페가 나타났다. 사실 동생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오후에는 물이 빠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물이 가득 차 있는 풍경보다 해가 지는 풍경이 더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여름. 해가 아주 늦게 졌고, 그러다가 아주 캄캄할 때 버스를 타야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안고 카페를 나섰다. 한적한 바닷마을 길을 걸어 '돌아가는 버스 타는 곳'에 도착했다. 조금 기다리니 기사님이 에어컨이 빵빵한 버스문을 열어줬다. 카메라 메모리가 꽉 차 지우려고 보니 1년 전 포르투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왜 돌아가는 길은 찾아가는 길보다 훨씬 빠른 걸까. 버스의 요금판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버스 안에서 우리는 각각 앉아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김윤아와 주윤하, 이소라와 알 그린의 노래를 연이어 들었다. 길가의 가게들에 불이 켜지고 기다리던 노을이 졌다. 메도루마 슌의 신간소식이 핸드폰 알림으로 왔고, 내게서 하루치의 땀냄새가 났다. 커다란 솜사탕 같은 몽글몽글한 구름 뒤로 해가 지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해를 품은 구름이 천천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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