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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째날, 오키나와
    여행을가다 2016. 7. 5. 16:38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일어나면 기억이 희미한 꿈 같았다.

       '아이슬란드.'

       그 이름을 발음하는 것만으로 진짜 집에서 멀리 떨어진듯한 아득함이 느껴진다.

       하루종일 지지 않던 여름의 태양 그리고 절대 떠오르지 않던 겨울의 태양, 그 하늘에 슬그머니 뜬 희미한 달과 치맛자락처럼 펄럭거리는 오로라, 북극에서 낮게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그 바람을 묵묵히 맞으며 견디고 서 있는 양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작은 언덕들과 그 위로 양탄자처럼 깔려 있는 이끼, 눈 덮인 산과 거친 바다와 검은 모래사장,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 천 개의 폭포와 호수, 아직도 끓어오르고 있는 땅, 어디론가 날아가는 기러기들, 서서히 녹아내린다는 빙하, 어디가 음절의 시작이고 끝인지 모르는 낯선 언어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과묵하고 고독해 보이는 사람들...

       이런 곳에서 나는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이 밀려 오는 고립감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나 자신을 느꼈다. 또, 내가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이끌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슬란드는 그런 나라다.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별것 없는 나라지만 사람을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계속해서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

     

    - 김동영, '내가 기억하는 가장 낯선' <그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중에서

     

     

     

     

     

     

     

     

     

     

     

     

     

     

     

     

     

     

     

     

     

       이번 여행에서 막내의 로망 하나가 실현되었다. 라운지에 간 것. 기대하고 갔던 라운지는 사실 별 게 없었다. 비행기에선 음식을 주지 않으니까, 배와 목을 채웠다. 탑승은 30분 넘게 지연되었다. 막내는 옆자리의 근사한 남자를 기대했지만, 오키나와에 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 갓난아기나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었다. 앞자리의 갓난아기는 눈을 마주치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갓난아이들은 비행기가 뜨자마자 일제히 울음을 터트렸다.

     

       원래 첫날 우리의 계획은 공항 라운지 - 오키나와 도착 - 미에바시역 - 숙소 체크인 - 슈리성 - 국제시장 구경이었다. 오후 비행기라 도착하자마자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비행기 지연 시간도 있고, 오키나와에 도착하자마자 습기가 많은 더위가 확 느껴져서 단번에 포기해버렸다. 그래, 슈리성은 내일 가자. 내일 가도 그곳엔 슈리성이 있어. 오키나와에 도착하자마자 수첩에 쓴 말은 이것.

     

    덥다.

    습기가 많다.

    후덥지근하다.

    오키나와는,

     

       숙소는 깔끔했다. 일본의 여느 호텔과 마찬가지로 공간은 좁았지만, 그다지 좁게 느껴지지 않았다. 침대 두 개, 그 사이의 조명, 책상 하나, 벽에 걸린 티비, 냉장고와 거울, 두 개의 일회용 슬리퍼, 욕조가 있는 샤워실, 수건과 칫솔, 삼푸와 린스와 샤워젤, 변기와 큰 거울과 세면대.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우리는 10층, 1008호로 배정받았다. 데스크에는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시는 여자분이 계셨다. 모노레일 승차권 자판기에도 한국어 안내가 있었다. 거리 곳곳에 한국어 안내판이 보였다. 얼마나 많은 한국사람들이 오키나와에 오는 걸까, 생각했다.

     

       배가 고파 검색을 한 끝에 라멘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사실 막내는 유명한 스테이크 집에 가고 싶어했는데, 너무 비싸서 포기하자고 했다. 그때 먹었어도 좋았을 걸, 생각이 든 건 마지막 날. 아무튼 걸어서 라멘집까지 갔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줄 서서 먹는 거 싫어하는데 맛있다니까 한번 먹어보자 싶어 줄을 섰다. 그런데 줄이 길어질수록 뭔가 아니다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랑 중국어만 들려왔기 때문에. 예감은 적중했다, 라고 해야 할까. 라멘집의 맛은 평범했다. 블로그처럼 극찬할 맛은 아니었다. 음식은 빨리 나왔고, 직원 분들은 친절했다. 그 정도였다. 우리는 맛집, 이라고 되어 있는 곳에 계속 가야할 지 고민했다. 암튼 배는 채웠다. 그리고 건배를 하고, 오키나와 첫 생맥주를 마셨다!

     

       막내는 구글지도를 보고 헤매지 않고 잘 다녔다. 잘 헤매는 내게 적합한 여행친구였다. 골목과 골목을 걸으며, 한적한 나하 시내 구경을 하고, 류보 백화점에 가서 프랑프랑과 무인양품 구경을 했다. 무인양품은 뭔가 색다른 게 많을 줄 알았는데, 서울이랑 비슷했다. 가지고 온 펜이 잘 나오지 않아, 하나 사야지 했는데 결국 여행이 끝날 때까지 사질 못했다. 오키나와스러운 걸로 하나 사 두었으면 기념도 되었을텐데. 동생은 미키 그릇을 발견하고 너무나 귀엽다며 고민에 고민을 했고, 첫날부터 짐을 늘릴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냥 나왔다. (결국 잊지 못했고, 마지막날 샀다!)

     

       그리고 국제거리의 포장마차 거리까지 걸었다. 이것도 블로그에서 발견한 건데, 블로그 사진이 꽤 운치 있었다. 그곳에서 오늘의 마무리 맥주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 거리가 참으로 먼 것이다. 결코 헤매지 않았지만, 참으로 먼 것이다. 걷기 시작한 게 아까워 걷고, 또 걸었는데, 걷다보니 또 걸을만 해졌다. 해가 진 뒤라 적당히 선선한 바람도 불었고,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도 보였고, 갖고 싶은 기념품들을 잔뜩 파는 가게도 보였다. 텀블러 구경을 하러 스타벅스에도 들어 갔다. 번화가라 그런지 밤의 풍경이 그다지 이국적인 느낌이 들고 않고, 친숙했다.

     

       마침내 포장마차거리 도착! 생각보다 아담했다. 꼬치구이가 먹고 싶었는데, 그 가게에 손님이 많아서 (아마도 맛집이었겠지) 어느 한가해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물었다. 꼬치구이 있습니까? 우리 가게에는 없는데, 파는 가게가 있다며 안내해 주었다. 바깥자리에 앉기엔 너무 더워서 안쪽의 바 자리에 앉았는데, 안주가 너무나 비싼 것이다. 포장마차라 싼 줄 알았는데. 배도 부르고 해서 흑돼지구이 꼬치 하나와 생맥주 한 잔, 하이볼 한 잔을 시켰다. 흠. 꼬치구이를 굽는다고 가게 안에 커다란 숯판이 있었다. 그곳에서 어마어마한 열기가 나오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도 약하고, 결정적으로 하이볼과 맥주가 밍밍했다.  맥주잔은 차갑게 유지하려고 그러는지, 스텐잔이었는데 거품이 삼분의 일이었다. 흑- 흑돼지구이는 맛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딱 고것만 먹고 나왔다. 우리 맞은편에 귀여운 여자아이 둘이 나란히 앉아 맥주도 마시고 사케도 마시고 있었는데, 둘이서는 얘기를 거의 안 하고 가게 직원이랑 얘기를 많이 하더라. 수요일의 술자리. 저 두 여자아이는 어떤 사이이고, 지금은 어떤 술자리일까 상상해봤다. 그리고 니네는 여기 덥지 않니, 물어보고 싶었다. 하하.

     

       술집에서 나와서 포장마차거리 사진을 찍는데, 전통복장을 한 키가 크고 잘 생긴 남자 분이 우릴 보더니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처음에 우린 괜찮다고 했는데, 계속 찍으라고 했다. 그래서 찍었다. 홍등이 잘 보이는 배경을 골라 다정하게 서서 브이를 했다. 남자분은 기분 좋게 웃으면서 한국인이냐며, 한국어 한마디를 하더니,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시따.

     

       숙소까지 걸었다. 포장마차거리에서 숙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걷기 딱 괜찮았다. 이 더위에 적응이 조금 되기도 했나 보다. 돌아오는 길에 숙소 근처에 소소하고 조용한 가게들이 보였다. 이런 곳에 갈걸 후회했다. 우리는 이제 맛집 검색은 그만하자고 다짐했다. 줄 서서 먹지도 말자고 다짐했다. 숙소 주변은 한적했다. 패밀리 마트에 들러 맥주와 하이볼과 안주를 사서 들어왔다. 잔뜩 마시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두 캔밖에 못 마시고 잠들었다. 나머지 맥주는 결국 캐리어에 담겨 다음 숙소까지 우리와 함께 했다. 하이볼은 결국 캐리어에 담겨 서울집까지 우리를 따라 왔다. 동생은 씻고 거의 바로 잠들고,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티비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다 이를 닦고 잠들었다. 자다가 새벽에 깜짝 놀라 잠을 깼는데, 커튼을 열어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너무나 근사해서, 한참을 내려다보다 가지고 온 책을 펼쳤다. 몇 줄 읽지도 못하고 금새 잠들었다. 다시 일어나보니 날이 완전히 밝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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