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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셋째날 오전, 오키나와
    여행을가다 2016. 7. 31. 22:38


      끼니를 때워야 해서 호텔 밖으로 나가니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모스버거가 있었다. 서글서글한 아가씨가 주문을 받았다. 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아가씨의 일상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번은 홋카이도 오타루의 KFC에서 너무나 권태로운 표정의 점원을 본 적이 있다. 오르골, 운하, 영화 <러브레터>의 대사 "오겡키데스카"로 유명한 동네에 찾아오는 얼빠진 관광객들에 지친 터프한 오타루 처녀. 빨리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날 생각만 하겠지. 자기 마을의 스시가 세계에서 제일 맛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구마모토 모스버거의 아가씨는 씩씩했다. 이 아가씨는 무슨 마음으로 시내 중심가가 아닌 낡은 구마모토 역의 모스버거에 지원했을까. 일은 즐겁게 하고 있을까. 여기서 친구는 사귀었을까. 아르바이트비로 무엇을 살까. 외국인 손님을 만나는 건 신나는 일일까.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여행을 할 때 기분이 나아지는 타이밍은 대부분 친절한 점원을 만날 때다. 혼자 다니니 그럴 때밖에 사람을 접할 일이 없다.

    - 오지은, '미스터 규슈를 만나러' <그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중에서







      셋째날에는 버스 투어를 예약해뒀다. 오키나와는 길다란 섬이고, 남부, 중부, 북부로 나뉜다.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대부분 렌트를 해서 이동을 하는데, 우리는 뚜벅이니까 북부로 가려면 버스투어를 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북부에는 근사한 유투브 영상으로 유명한 츄라우미 수족관이 있다. 일어나자마자 비가 오는지 확인했다. 비가 오면 구경하기가 힘들텐데. 간밤에 비가 온 것 같았다. 버스투어 후에 중부의 숙소로 이동할 거라 짐도 챙겼다. 첫날 가득 사 두고 피곤해서 다 마시지 못한 오리온 맥주와 하이볼 캔도 캐리어에 챙겼다. 사요나라, 레드 플래닛.  





       버스를 타는 곳은 오모로마치역. 첫날 캐리어를 끌고 찾아왔던 길의 반대방향으로 캐리어를 끌고 갔다. 오모로마치역은 미에바시역에서 세 정거장. 유이 레일을 타고, 출근을 하고 등교를 하는 나하 사람들을 내려다 봤다. 막내는 평소에 아침을 먹질 않아서 편의점에 들러 1인분의 아침을 샀다. 연어 삼각김밥이랑 따뜻한 커피 한 잔. 약속한 장소에 가니 버스가 미리 도착해 있었다. 키가 큰 (아마도) 재일교포 가이드 분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일본인 운전기사 분이 짐을 실어 주셨다. 동생은 이동하는 동안에는 잠을 잘 거라고 했는데, 가이드의 이야기가 재밌어서 잠들지 않았다. 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널찍하게 앉아도 된다고 해서 각자 2인석을 차지했다. 가이드 분의 입담이 좋았다. 자기는 원래 일일투어는 잘 나오질 않는데, 지금이 비수기의 끝자락이라 나오게 됐다고 했다. 오키나와 일일투어에는 대부분 젊은 여자들이 많단다. 남자들은 버스투어는 거의 하질 않고, 꼭 렌트를 한다고 했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도 렌트를 꼭 하니, 투어는 거의 다 젊은 여자들이 신청한단다. 정말 그렇더라. 그 날의 투어 인원도 거의 다가 예쁘게 꽃단장한 젊은 여자들이었다.


       버스는 나하에서 출발해서 중부의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사람들을 더 태우고, 북부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 분은 오키나와라는 지역에 대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줬는데, 유익했다. 다른 사람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야기를 듣기 전과 후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이곳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정말이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일본어 학원을 다닐 때 오키나와 여자분과 가끔 메신저와 전화로 소통을 하는 분이 계셨는데, 전해들은 그 여자 분의 사정이 가이드 분이 설명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전반적인 특성과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 그런 거였구나, 싶었다. 일단 오키나와 중부로 접어들면서 집들이 굉장히 띄엄띄엄하고 넓게 위치해 있었는데, 그 동네가 모두 미군기지였다. 나하에는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는데, 미군기지가 있는 지역에 들어서니 참으로 여유로워지더라. 미군기지 안은 물가가 굉장히 싸다고 했다. 그래서 미군들이 오키나와에 들어오면 왠만하면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한단다. 무엇보다 싸고, 기지 안이 미국과 다름없는 시설들이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안에서 초중고대학교까지 모두 다닐 수 있단다. 미국 본국에서 따는 것과 똑같은 학위라, 치맛바람이 센 일본엄마들은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기지 안의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애쓰기도 한단다. 류큐왕국이었던 시절부터 일본에 속하게 되고, 전쟁으로 미국에 속하게 되고, 다시 일본이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서도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비만율이 일본에서 최고이고, 대부분이 느긋한 성격이고, 일본 본토에서 오키나와에 투자를 잘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들었다. 건물들의 외벽에 장식을 거의 하지 않는 이유도. 태풍이 잦으니까 근사하게 꾸며놔도 강한 태풍 한 번이면 모두다 벗겨지니까 그렇단다. 이혼율도 높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비율도 높다고 했다. 여러번 이혼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오키나와에 등록된 차가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대부분의 집에 차가 있고, 관광산업이 발달해 렌트차가 많기 때문이란다. 제일 인상깊었던 말은 이것. 오키나와 사람들은 바다를 뛰어드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바라보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 '느긋하게, 천천히 흘러가는 곳.' 나는 오키나와를 그렇게 이해했다.







       버스 투어의 첫번째 장소는 만좌모. <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에 나왔던 곳이란다. 바람이 무척 센 곳이고, 북부의 관광지에서 떨어져 있고, 보이는 것처럼 코끼릴 닮은 바위가 있는 풀밭일 뿐이라 원래는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아니었단다. 그런데 드라마에 나온 이후로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어마어마하다고. 이 날도 엄청난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저 코끼리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빽빽하게 서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 머물렀는데 그곳 화장실에 우리 투어 사람들 중 한 분이 지갑을 놓고 오는 바람에 우리는 수족관 티켓을 싸게 살 수 있는 아주 작디 작은 휴게소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가이드 분은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라 다시 가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냥 일본이었다면 대부분 찾을 수 있단다. 아무튼 가이드의 예상대로 지갑은 없었고, 30분 이상 별다를 게 없는 휴게소에 더 머물렀던 우리는 너무나도 더웠던 것이다.






      문제의 휴게소. 수족관 티켓을 싸게 샀고, 발 빠르게 달려나가 도시락을 샀다. 궁금했던 오키나와 사람들이 자주 먹는다는 건강야채 고야 반찬이 있는 도시락으로 샀다. 푸짐했는데, 가격도 저렴했다. 대만족! 지갑분실 모녀를 기다리는 동안 비가 왔고, 또 금새 그쳤다. 잠시 시원해졌다가, 금방 더워졌다.







       두번째 장소는 코우리 대교. 섬을 연결하는 다리다. 코우리 해변의 바다 색깔이 이뻤다. 속이 훤히 보여서 사람들이 얕은 바다라고 생각하고 수영을 하는데, 조심해야 된다고 했다. 생각보다 수심이 깊다고. 동생은 이 곳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와 보니 무척 좋다고 신나했다. 가이드 분이 해변까지 나와서 사진을 찍어주셨는데, 우리에게는 둘이 옷 맞춰 입고 나왔냐고 물었다. 신이 나서 발을 바닷물에 적셨다가 달라붙은 모래를 씻어내느라고 애썼다. 이 곳에서도 꽤 짧게 머물렀다.





       원래는 수족관에서 돌고래쇼를 보면서 도시락을 먹으라고 했는데, 지갑분실 사건 때문에 휴게소에서 시간을 꽤 지체하는 바람에 버스 안에서 이동하면서 먹어도 된다고 했다. 동생과 나란히 앉아, 허겁지겁 먹었다. 너무나 배가 고팠던 것이다. 고야는 생각보다 쓰지 않았다. 후식으로 휴게소 마트에서 산 수박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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